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동부 영토를 러시아에 점령당한 상태로 휴전을 받아들일 가능성을 시사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를 중심으로 유럽 각국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물밑에서 우크라이나 종전 협상을 시작할 채비를 하고 있다.○종전 물밑 협상 ‘급물살’
18일(현지시간) 외신에 따르면 젤렌스키 대통령은 전날 공개된 프랑스 일간 르파리지앵과의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와 크림반도 지역은 사실상 러시아의 통제하에 있고 우리는 이 지역을 되찾을 힘이 없다”고 말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미국 대선 전까지 러시아의 영토 점령을 인정하지 않고 버텼고, 최근까지 협상 전제 조건으로 NATO 가입을 요구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협상 테이블에 앉도록 국제사회의 외교적 압력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며 한발 물러섰다.
트럼프 당선인이 취임 후 군사 지원을 중단하겠다고 했고, 최근 갤럽 여론조사에서 우크라이나 국민 응답자의 52%가 휴전을 지지하는 등 협상 압력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협상에 참여하지 않으면 논의에서 배제될 수 있다는 위기감도 작용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세계의 어떤 지도자에게도 우크라이나를 배제하고 푸틴과 협상할 권리는 없다”고 강조했다.
이날 젤렌스키 대통령은 유럽연합(EU) 정상회의 참석차 방문한 벨기에 브뤼셀에서 “유럽이 분열되지 않고 공동의 입장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어 마르크 뤼터 NATO 사무총장 주재로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 등 주요국 정상과 회동했다. 종전을 주장하는 트럼프 당선인 취임을 앞두고 대책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종전 논의는 급물살을 탈 전망이다. 트럼프 당선인이 지명한 키스 켈로그 우크라이나전 종결협상 특사가 내년 초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와 유럽 각국을 방문할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당선인은 지난 16일 기자회견에서도 우크라이나 전쟁을 “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끔찍한 대학살”이라며 전쟁을 끝내겠다고 공언했다.○유리한 상황 즐기는 푸틴푸틴 대통령은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트럼프 당선인이 영토 점령을 인정한 채 휴전을 논의하고 있어 급할 게 하나도 없다는 태도다. 트럼프 당선인은 이달 7일 프랑스 파리 엘리제궁에서 젤렌스키 대통령,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3자 회동을 하고 “우크라이나의 NATO 가입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쐐기를 박았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트럼프 당선인은 미군이 아닌 유럽의 군대가 전후 우크라이나의 방어와 휴전 감시 등의 역할을 맡아야 한다는 주장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푸틴 대통령은 16일 “러시아군은 전선 전체에 걸쳐 전략적 주도권을 확실히 유지하고 있다”며 전쟁에 박차를 가하겠다고 밝혔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영토를 20% 가까이 점령한 상태다.
유럽 각국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뤼터 사무총장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평화 협상은 떠도는 소문”이라고 일축하며 “지금 할 일은 우크라이나가 푸틴의 승리를 저지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현일 기자 hiunea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