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에도 포근…초보도 여유 새로운 日 골프성지, 이바라키

입력 2024-12-19 19:08
수정 2024-12-20 02:50

지난 3일 일본 이바라키현 오미타마시. 인구 약 5만의 소도시인 이곳의 공항 활주로 주변에 한 무리의 사람들이 망원 카메라를 들고 서쪽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한동안 국내선만 다니던 공항에 국제선 여객기가 취항한다는 소식을 듣고 몰려온 항공 ‘오타쿠(마니아)’들이었다. 잠시 뒤 한국 저비용항공사(LCC) 에어로케이 여객기가 활주로에 내렸다. 청주공항에서 출발한 한국인 관광객들이 출입국장으로 나오자 기다리던 오이가와 가즈히코 이바라키현 지사와 시마다 고우조 오미타마시장 등 지역 관계자들이 반갑게 이들을 맞이했다. 오이가와 지사는 한국어로 “한국 관광객 여러분을 환영합니다”라고 인사했다.

이바라키현의 핵심 관광자원은 114곳에 달하는 골프장. 물이 좋고 기후가 온화해 전통적인 농업 도시였던 이곳은 일본 내 잔디 생산량 1위를 기록할 정도로 양질의 잔디가 유명한 곳이다. 이 지역 골프장들은 국내 절반 수준의 그린피와 뛰어난 코스 관리 상태를 자랑하며 한국 관광객 유치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백돌이’도 여유로운 플레이
이바라키현 골프장 가운데 10대 명문 구장으로 손꼽히는 올드오차드골프클럽에서 이달 초 골프 경기를 체험했다. 영하로 내려간 서울 기온을 생각하고 준비해간 방한복이 당황스러울 정도로 골프장 곳곳은 붉게 물든 단풍나무와 노란 은행나무로 가득했다. 이바라키현은 한국 남해와 비슷한 위도의 태평양 해안이어서 겨울에 눈이 많이 내리지 않고,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는 일도 많지 않다.

올드오차드골프클럽의 경기는 캐디 없이 진행했다. 첫 홀은 긴장한 탓인지 드라이버 샷부터 무너졌다. ‘멀리건’(무벌타로 한 번 더 치는 것)을 허락해준 너그러운 동반자들 덕에 세 번째 시도 끝에 경기를 시작했다. 물론 골프가 안 되는 100만 가지 이유 중 하나도 있었다. 골프장에서 빌린 클럽이어서 적응하는 데 시간이 필요했다.



평소 버릇처럼 급하게 플레이한 뒤 다음 홀로 카트를 몰아갈 때마다 태블릿 화면에 빨간색 표시가 켜지며 경고음이 울렸다. ‘앞차와의 간격이 좁다’는 것. 아무리 느긋하게 하려고 해도 안 되던 스윙이 이곳에선 자연스럽게 느려졌다. ‘전투 골프’에 익숙했던 백돌이에게 드디어 골프장의 아름다운 풍경이 눈에 들어왔고, 앞 팀의 경기 모습까지 감상하는 여유도 찾아왔다. 전반 홀을 도는 데 3시간 가까이 걸렸고, 점심을 먹으며 1시간가량 쉰 뒤 후반 홀까지 마치자 오후 3시가 됐다. 골프에 집중, ‘자신과의 싸움’
골프장의 클럽하우스는 한국의 골프장처럼 화려하진 않다. 하지만 이바라키현 골프장들은 본질에 충실하다. 올드오차드골프클럽 페어웨이·티박스의 양잔디 관리 상태와 퍼팅 그린의 고르기는 국내 고급 회원제 골프장을 뛰어넘는 수준이었다. 코스가 전반적으로 길고 넓었는데, 보기보다 공략이 쉽지 않았다. 이 구장은 미국의 골프 코스 전문가 짐 파지오가 설계했다고. 그는 “생각하는 게임을 한 골퍼만이 본인 최대의 가능성에 도달할 수 있다”는 철학을 설계에 반영했다고 한다.

캐디가 불러주는 모범 정답 없이 지형과 장애물을 살피며 공략법을 스스로 생각하면서 플레이하는 경험이 진한 인상으로 남았다. 스코어 기록지가 끼워진 가죽 케이스를 들고 매홀 점수를 적어가며 플레이하는 것도 매력이었다. 다만 퍼팅 그린 위에서의 플레이는 악몽이었다. 캐디 도움 없이 그린 경사도와 굴곡을 파악하는 게 쉽지 않았다. 게다가 이 구장은 퍼팅 그린에서의 플레이가 어렵기로 유명한 곳. 수치스러운 점수를 기록했다. 후반 홀 어딘가에 웨지 클럽 하나를 두고 왔다는 사실도 뒤늦게 발견했다. (경기가 끝나고 골프장 측에서 찾아줬다.)

평일인 이날 그린피는 점심값을 포함해 1인당 1만엔(약 9만3000원) 정도였다. 카트피와 캐디피도 없고, 맥주값이나 추가 음식값 정도만 추가 부담하면 된다. 음료와 간식 가격도 일반적인 음식점과 비슷한 수준이다. 함께 둘러본 미토시 인근 58년 전통의 미토골프클럽은 점심값이 포함된 그린피가 5900엔 수준에 불과했다. 미토골프클럽 역시 프로 선수권 대회가 개최되는 수준 높은 구장이다. 한국의 매서운 추위를 피해 겨울 골프 여행을 떠나고 싶다면 무더운 동남아시아보다 이바라키현을 찾는 편이 여러모로 현명한 선택 아닐까.

이바라키=이현일 기자 hiunea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