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연간 수출이 7000억 달러를 넘어서면서 건국 이래 처음으로 일본을 따라잡는다"
이런 꿈같은 일이 올해 벌어질 것 같다고 지난 6월 산업경제 10분 첫 번째 시간에 말씀을 드렸었는데요. 올해가 저물어가는 12월 중순을 맞아서 상황을 점검해 보겠습니다. 아쉽게도 꿈 같은 일은 사실상 멀어져 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수출은 사상 최고치를 향해서 달리고 있는데요. 전기차 캐즘(일시적인 수요 부진)과 엔화 가치 급등같은 돌발변수가 일본을 향해 웃어주면서 일본의 수출이 예상보다 선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다 윤석열 대통령의 뜬금없는 비상계엄 선포와 이어지는 탄핵정국으로 인해 수출 사상 최고치 기록 역시 점점 멀어지는 모습입니다.
먼저 지난달 수출 부터 보시겠는데요. 자동차 등 주력 수출품 부진에 파업과 악천후의 영향으로 지난달 수출이 전년 같은 기간에 비해 1.4% 증가하는 데 그쳤습니다. 우리나라의 최대 수출 품목인 반도체는 30% 늘며 11월 기준 역대 최대를 기록했습니다.
그러나 나머지 주력 품목의 수출이 줄줄이 감소한 여파로 연간 수출 목표치(7000억 달러) 달성이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습니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지난 1일 발표한 ‘11월 수출입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수출액은 563억 5000만 달러를 기록했습니다. 전년 동월 대비 14개월 연속 플러스 흐름을 이어갔지만, 증가율은 1.4%에 그쳤습니다. 월별 수출 증가율은 올 7월 13.5%로 정점을 기록한 뒤, 8월 10.9%, 9월 7.1%, 10월 4.6%로 감소하다가 지난달 1%대로 주저앉았습니다.
수출 증가율이 둔화한 것은 주력 산업의 실적이 악화했기 때문입니다. 15대 수출 주력 품목 중 반도체(30.8%), 컴퓨터(122.3%), 선박(70.8%), 바이오헬스(19.6%), 철강(1.3%) 등 5개만 지난달 수출이 늘었습니다.
반면, 수출 2위 품목인 자동차는 13.6% 급감했습니다. 자동차부품(-8.0%), 디스플레이(-22.0%), 일반기계(-18.9%), 석유제품(-18.7%), 가전(-13.9%), 2차전지(-26.3%) 등도 감소폭이 컸습니다. 10월만 해도 15개 품목 중 10개의 수출이 증가했습니다.
지역별로도 ‘쌍두마차’ 격인 중국과 미국으로의 수출이 전년 대비 각각 0.6%, 5.1% 줄었습니다. 대중 수출은 112억 8000만 달러로 5개월 연속 110억 달러 이상을 달성했습니다. 대미 수출은 103억 9000만 달러로 역대 2위를 기록했으나, 상승 흐름이 끊겼습니다.
한국의 수출 증가세가 올 4분기 들어 확연히 꺾이면서, 사상 첫 승을 기대했던 ‘수출 한·일전’의 승패도 일본 쪽으로 기울었습니다. 한국 수출의 발목을 잡은 전기차 캐즘이 일본에는 호재로 작용했으며, 환율마저 일본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산업통상자원부와 일본 재무성에 따르면 올해 1~10월 일본과 한국의 누적 수출액은 각각 5829억 달러와 5658억 달러로 집계됐습니다. 5월 24억 달러까지 좁혀졌던 두 나라의 수출 격차가 10월 들어 171억 달러까지 벌어졌습니다.
올해 한국과 일본의 수출액이 월평균 각각 500억 달러와 600억 달러 안팎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남은 두 달 동안 역전은 사실상 힘들어졌다는 분석이 나왔습니다.
올해 5월까지 한국의 누적 수출액은 일본을 24억 달러까지 추격했습니다. 8월까지도 누적 수출액 차이가 70억 달러를 유지하면서, 하반기 대역전을 기대하게 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전기차와 2차전지 수출에 브레이크를 건 전기차 캐즘이 일본 수출에는 가속 페달 역할을 했습니다.
전기차 수요가 줄어든 대신 일본차가 강점을 지닌 하이브리드카의 수출이 크게 늘었기 때문입니다. 도요타자동차의 올 상반기 세계 판매량은 517만 대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으며, 하이브리드카의 판매 호조가 전체 실적을 견인한 것으로 분석됐습니다.
엔화 가치가 하반기 상승한 것도 일본의 수출을 늘리는 데 기여했습니다. 지난 7월 158.1엔까지 떨어졌던 달러당 엔화 가치는 일본의 기준금리 인상과 외환시장 개입 영향으로 9월 143.7엔까지 치솟았습니다. 엔화 가치가 오르면 수출 가격 경쟁력은 떨어지지만, 달러로 표시되는 전체 수출액은 늘어나는 효과가 있습니다.
수출 한·일전 첫 승은 힘들어졌지만, 올해 수출 격차는 역대 최소치를 기록할 것이 확실시됩니다. 한국의 수출이 역대 최대치를 기록한 2022년에도 두 나라의 격차는 633억 달러에 달했습니다.
올해 1~11월 누계 수출액은 6222억 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8.3% 늘었습니다. 올해 수출액은 작년(6322억 달러) 기록을 넘어설 것이 확실시됩니다. 하지만 역대 월간 최대 수출액이 635억 달러(2022년 3월)인 점 등을 고려하면, 올해 목표치인 7000억 달러 달성은 힘들 것이란 예상이 지배적입니다.
올해 목표치 달성이 어려워진 데는 다양한 요인이 영향을 미쳤습니다. 산업부는 세계적으로 전기차 수요가 감소하면서 전기차와 2차전지 수출이 각각 50억~60억 달러, 120억~150억 달러 줄어든 것으로 분석했습니다.
배럴당 80달러 수준이던 국제 유가가 70달러대 초반으로 떨어지면서 9~10월 석유제품 수출이 50억 달러 감소했습니다. 현대트랜시스와 한국GM의 파업으로 자동차 수출도 10억 달러 이상 줄었습니다.
여기에 계엄과 탄핵 정국으로 막판 스퍼트를 기대했던 12월 수출이 꺾이면서 2022년 기록한 사상 최고치(6836억 달러)마저 넘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습니다. 말씀드린대로 2022년 사상 최고치에 614억 달러가 부족합니다.
4분기 들어 수출 증가율이 크게 꺾인 건 사실입니다. 수출이 1년 전 같은 달에 비해 14개월 연속 늘었지만, 15개월째를 장담하기 힘든 추세였습니다. 하지만 12월은 충분히 반등을 기대할 만하다는 분석이 많았습니다. 일반적으로 12월은 세계적으로 연말 소비가 증가하고, 기업이 연간 실적 관리에 나서기 때문에 수출이 크게 늘어나는 달이기 때문입니다.
정부와 산업계의 이 같은 기대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으로 꺾이게 됐습니다. 민주노총이 '탄핵 파업'에 나서면서 수출 감소가 불가피하게 됐기 때문입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지난 5일부터 약 일주일간 벌어진 철도노조의 파업까지 겹치면서 물류 시스템마저 차질을 빚었습니다.
산업부 관계자는 "12월 수출 증가율을 반등시키기 위해 모든 정책을 동원할 계획"이라면서도 "정국 혼란과 파업으로 14개월 연속 수출 증가율이 마감되지 않을까 걱정하는 상황이 됐다"고 밝혔습니다. 안덕근 산업부 장관은 “연말까지 수출을 최대한 늘리기 위해 수출 기업에 대한 맞춤형 진출 전략을 제시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정영효 기자 hu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