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반도체산업이 부활에 속도를 내고 있다. 세계 3위 낸드플래시 업체 키옥시아는 18일 기업공개(IPO)를 통해 인공지능(AI)용 반도체 투자금을 확보했고,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기업 라피더스는 2027년 최첨단 2나노미터(㎚·1㎚=10억분의 1m) 양산을 준비하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일본 반도체 기업의 공격적인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키옥시아는 이날 일본 도쿄증시에 상장했다. 이날 주가는 공모가(1455엔) 대비 10.4% 오른 1606엔에 마감했다. 시가총액은 7843억엔(약 7조3000억원)으로 늘었다. 키옥시아는 IPO 과정에서 구주 매출을 통해 약 1200억엔에 달하는 자금을 확보했다.
키옥시아 상장은 일본 반도체산업의 재건을 알리는 신호탄으로 평가된다. 키옥시아는 도시바 메모리반도체 사업이 독립해 2017년 4월 출범한 낸드 제조사다. 2018년 베인캐피탈 컨소시엄에 인수된 뒤 키옥시아로 사명을 바꿨다. 당시 인수 가격은 2조엔(약 22조원)이었다.
키옥시아는 2020년과 2021년 IPO를 추진했지만 코로나19 확산으로 불발됐다. 이후 IPO 대신 세계 4위 낸드 업체 미국 웨스턴디지털과의 합병으로 기업 가치를 올리려 했지만, 주요 투자자인 SK하이닉스가 반대해 무산됐다. SK하이닉스는 베인 컨소시엄에 약 3조9000억원을 투자해 지분 15%(상장 전)를 간접 보유하고 있다.
키옥시아가 IPO 재도전에 성공한 건 AI 반도체 경쟁에서 뒤처질 수 없다는 절박함 때문이다. 키옥시아는 공모로 조달한 자금 대부분을 기업용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eSSD) 등 AI 반도체 시설에 투자할 계획이다.
일본 반도체산업 재건 움직임은 파운드리 시장에서도 확인된다. 대표적인 사례가 라피더스다. 이 회사는 키옥시아, 도요타, 소니, 소프트뱅크 등 일본 대기업 8곳이 뭉쳐 2022년 10월 설립했다. 2021년 ‘반도체 부활’을 선언한 일본 정부는 라피더스에 약 8조5000억원의 보조금을 투입했다.
2027년 최첨단 2㎚ 제품 양산을 목표로 하고 있다. 미국 IBM 등 최첨단 반도체 공정 기술을 보유한 기업과의 협업에 적극적이다. 일본 정부는 라피더스에 2000억엔(약 2조원)을 추가 지원하기로 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 업체는 일본의 행보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일본의 반도체 소부장(소재·부품·장비) 인프라가 강력하기 때문에 eSSD, AI 반도체 파운드리 등 고부가가치 사업에 즉각적인 위협이 될 수 있어서다.
SK하이닉스의 키옥시아 지분을 어떻게 활용할지에도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SK하이닉스는 베인캐피탈 주도의 한·미·일 컨소시엄에 3조9000억원을 투자해 키옥시아 지분(상장 전 기준) 15%를 간접적으로 보유했다. 여기에 최대 15%를 추가로 인수할 수 있는 전환사채(CB)도 갖고 있다.
박의명 기자 uimy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