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사가 대부업자로 전락하고 있습니다.”
카드업계 고위 관계자는 지난 17일 정부의 다섯 번째 카드 수수료율 개편 방안이 나온 뒤 이렇게 말했다. 개편 방안은 내년 2월부터 연 매출 30억원 이하 가맹점 305만 곳의 신용카드 수수료율을 최대 0.1%포인트 낮추는 것을 핵심으로 한다. 잇따른 카드 수수료 인하로 카드사가 본업인 신용판매에서 수익을 내지 못하고 현금서비스, 카드론 등 대출에 열을 올려야 하는 상황에 대한 자조 섞인 토로였다.
한국은 2013년부터 정부가 사실상 카드 수수료율을 정해주고 있다. 처음에는 영세·소상공인의 부담을 덜어주자는 좋은 의도로 시작됐다. 혜택을 보는 대상도 연 매출 2억원 이하 가맹점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정책 취지는 퇴색했다. 대상은 연 매출 30억원 이하 가맹점으로 대폭 확대됐다. 정책 수혜를 입는 가맹점만 97%에 달한다. 수수료율은 최저 1.8%에서 0.4%로 4분의 1 이하로 축소됐다. 신용카드 매출 세액공제 혜택까지 더해지면서 가맹점은 신용카드 결제를 받을수록 오히려 수백만원의 돈을 버는 기현상이 나타났다.
눈에 보이지 않는 사회적 비용도 막대하다. 카드사는 신용판매에서 별다른 혁신의 유인을 찾지 못하고 있다. 혁신을 통한 비용 절감은 고스란히 수수료 인하 요인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지난 10여 년간 국내 카드사의 고용 인원도 반토막 났다. 상위 3개 카드사의 직원 수는 2013년 상반기 8589명에서 올해 상반기 4072명으로 쪼그라들었다. 디지털 전환에 따른 불가피한 면도 있지만, 본업에서 경쟁력을 높일 수 없으니 고용을 소극적으로 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정부의 지나친 개입이 좋은 일자리를 없앴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는 이유다.
그렇다고 카드 수수료율 인하가 개별 가맹점의 운영 상황을 크게 개선할 정도로 혜택이 대단한 것도 아니다. 이번 개편안으로 연 매출 2억원 가맹점이 카드 수수료로 아끼는 비용은 연간 20만원이다. 매출이 클수록 더 많은 혜택이 돌아가는 건 이 제도의 모순이다. 연 매출 20억원 가맹점이 얻는 혜택은 연간 120만원에 달한다.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카드 수수료 책정에 정부가 개입한 호주도 2003년 이러한 제도를 시행했다가 2006년 중단했다. 사회적 비용이 큰 데 비해 효과는 미미해서다.
정부는 이번에 카드사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카드 수수료율 산정 기간을 3년에서 6년으로 늘렸다. 기간만 늘리는 게 능사가 아니다. 정책 효과와 부작용을 제대로 평가하고, 필요하다면 폐지도 고려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