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원들 '49.9억어치' 주식 팔아치우더니…개미들 '분노' [종목+]

입력 2024-12-19 06:30
수정 2024-12-19 07:38

의료 인공지능(AI) 기업 루닛 임원들의 지분 매각이 도마 위에 올랐다. 일부 임원들이 49억9900만원 상당 주식을 매도하면서 블록딜(시간 외 대량매매) 사전 공시를 피하기 위해 꼼수를 부렸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다. 주가도 하루 만에 10% 이상 하락했다. 회사는 임원의 독자적 판단에 따랐다는 입장이지만, 이를 바라보는 투자자들의 시선은 곱지 않다.

19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전날 루닛 임원 6명과 주요 주주 1명, 총 7명은 이날 장 개장 전 블록딜 방식으로 보유한 주식을 일부 매도했다. 7명이 보유한 총 38만334주가 주당 7만7934원에 매각됐다. 처분단가는 16일 종가 대비 7% 낮다. 총 매각 규모는 296억원 수준이다. 미국계 롱펀드(장기투자펀드) 운용사가 지분을 매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현성 상무이사, 박승균 상무이사, 유동근 상무이사, 팽경현 상무이사, 이정인 이사 등 5명은 각각 보통주 6만4156주를 7만7934원에 팔았다. 1인당 매도금액은 49억9993만3704원으로 추산된다. 단 1주만 더 팔았다면 50억원을 넘어서게 돼 사전공시 대상이 된다. 이 때문에 시장에선 이번 블록딜에 대해 '꼼수'라는 평가가 나온다.

블록딜 사전 공시를 피하기 위해 1인당 매도 금액을 50억원 미만으로 설정했다는 주장이다. 블록딜 공시제도는 상장사 내부자의 대량 매도로 주가가 급락해 투자자가 피해를 보는 것을 막기 위해 도입됐다. 지분 10% 이상 주요 주주와 회사 경영진, 전략적투자자(SI)는 지분 1% 이상 또는 50억원 이상을 거래할 때 거래 가격과 수량, 기간을 최소 30일 전에 공시해야 한다.

시장의 의혹에 대해 루닛 관계자는 "각 임원진의 독자적 판단에 따른 사안"이라며 말을 아꼈다. 추가 블록딜 가능성에 대해선 현재 관련 계획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임원의 대규모 지분 매도 여파에 루닛 주가는 전날보다 10.26% 하락한 7만5200원에 마감했다. 통상 임원의 주식 매도는 주가 '고점' 신호로 읽힌다. 기업의 내부 사정을 잘 알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달 초 3만원대였던 루닛의 주가는 기관의 매수세에 힘입어 8만선을 뚫었다. 아스트라제네카(AZ)와 인공지능(AI) 분야에서 협력하기로 결정했다는 소식도 투자심리에 긍정적인 영향을 줬다.

하지만 블록딜 소식이 전해진 날 기관은 201억원어치를 순매도했다. 그 결과, 코스닥 시장 기관 순매도 1위에 올랐다. 외국인 투자자도 86억원 매도 우위를 보였다. 개인 투자자만이 279억원을 사들이며 이들의 물량을 받아냈다.

개인투자자 사이 투자심리가 악화하자 회사는 해명에 나섰다. 루닛 관계자는 "작년 회사가 진행했던 주주배정 유상증자에 참여하기 위해 임원이 고금리 대출을 받았다"며 "이번 블록딜은 대출금 상환을 위한 조치였다"고 밝혔다. 또 "해당 임원들은 현재 회사의 사업부별 책임자로서 성실히 근무하고 있다. (블록딜은) 회사 성장성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회사는 투자자의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백승욱 이사회 의장과, 서범석 대표가 루닛 주식을 장내 매수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전날 7747주를 사들였다. 백 의장과 서 대표가 각각 4억9902만원, 9973만원을 투입했고, 총 매입 규모는 6억원 수준이다. 회사 관계자는 "백 의장과 서 대표가 회사의 성장이 지속될 것이란 강한 믿음에 주식 매입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주식 매입도 자기자금이 아닌 차입금으로 이뤄져 진정성이 의심받는 모양새다. 백 의장과 서 대표는 자사주를 매입하기 위해 앞서 빌린 돈을 활용했다. 지난 10월 이들은 25만7008주, 4만8808주를 담보로 각각 189억원, 33억원을 빌렸다. 이자율은 연 15%에 달한다. 차입처는 미국계 펀드 카가마 패밀리 인베스트먼트(KAGAMA Family Investments, LP)다. 임원들의 자사주를 매입한 롱펀드와는 다른 곳으로 알려졌다.

진영기 한경닷컴 기자 young7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