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가 자체 개발 중인 자율주행용 반도체 생산을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에 맡기는 방안을 추진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삼성전자가 그동안 테슬라, 모빌아이, 암바렐라 등 세계적인 자율주행용 반도체 개발사의 칩을 성공적으로 양산한 걸 현대차가 높이 평가한 데 따른 것이다.
17일 산업계에 따르면 현대차는 삼성전자의 자동차용 반도체 생산라인인 5나노미터(㎚·1㎚=10억분의 1m) 기반 ‘SF5A’ 공정에 자율주행용 반도체 양산을 타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테슬라가 주도한 자동차 기업의 자율주행칩 독자 개발 움직임은 최근 업계 전반으로 확산하고 있다. 자동차가 자율주행, 인포테인먼트 등 최첨단 편의 기능을 갖춘 ‘소프트웨어 기반 차량(SDV)’으로 진화하면서 두뇌 역할을 하는 반도체의 중요성이 점점 커지고 있어서다. 자동차를 가장 잘 아는 완성차 기업이 직접 반도체를 설계·개발해야 성능을 극대화할 수 있다는 판단도 깔려 있다. 현대차도 마찬가지다. 지난해부터 반도체 개발 조직을 강화하고 있다. 업계에선 2026~2027년에 자체 칩을 장착한 차를 내놓을 것으로 예상한다.
관건은 칩 생산을 어디에 맡기느냐다. 자동차 기업은 반도체 공장이 없기 때문에 칩을 주문대로 만들어주는 파운드리 기업에 생산을 맡겨야 한다. 주요 후보가 대만 TSMC와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다.
현대차가 삼성을 우선 순위에 놓은 것은 삼성전자가 여러 자동차 기업과의 협업을 통해 다양한 칩을 생산한 경험을 갖고 있어서다. 삼성 5㎚ 파운드리는 자율주행칩 개발사가 최첨단 칩 생산을 맡길 때 가장 먼저 고려하는 공정으로 꼽힌다. 작년에는 테슬라가 차세대 자율주행칩 ‘하드웨어(HW) 5.0’을 이 공정에서 생산하기로 결정했다. 미국의 자율주행 반도체 전문 개발사 암바렐라도 삼성 5㎚ 공정을 통해 자율주행칩 ‘CV3-AD685’를 만들고 있다. 인텔 계열 자율주행칩 설계업체 모빌아이와의 협업도 진행 중이다.
삼성·현대차의 자율주행칩 파운드리 협력이 최종 성사되면 두 회사 모두에 ‘윈윈’이 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현대차는 삼성전자와 협업해 대만이 아니라 한국에서 안정적인 자율주행용 반도체 공급망을 구축할 수 있다.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 측면에서도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가 해외 경쟁사보다 더 뛰어나다는 이점이 있다. 삼성전자는 2030년 290억달러(약 41조원) 규모로 성장할 자율주행 칩 시장에서 대형 고객을 확보한다는 점에서 호재다. 현대차와의 협업을 발판 삼아 또 다른 대규모 물량을 수주할 가능성도 생겼다.
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