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 터널’을 가까스로 통과한 국내 증시가 또다시 하락세를 그리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되자 고환율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보호무역주의, 경쟁력을 잃은 삼성전자 등 기존 악재가 부각됐다. 상장사의 내년 실적 추정치까지 하향 조정되고 있어 단기간 내 반등은 어려울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호재 소멸에…2거래일 연속 하락17일 코스피지수는 전 거래일보다 1.29% 하락한 2456.81에 마감했다. 2차 탄핵안 가결 직후인 지난 16일(-0.22%)에 이어 이틀 연속 하락세다. 1차 탄핵안 표결이 무산된 뒤 9일 급락(-2.78%)한 코스피지수는 2차 탄핵안 가결에 대한 기대로 이후 4거래일간 5.7% 상승했다. ‘탄핵 가결’이라는 호재가 선반영된 것이다.
탄핵이 가결되자 증시를 떠받치던 기관투자가도 국내 주식을 매도하기 시작했다. 정치적 불확실성 해소 후 증시 상승을 이어갈 호재가 마땅치 않았다는 분석이 나온다. 기관은 지난 2거래일간 유가증권시장에서 1094억원어치를 순매도했다. 9~13일 1조351억원 규모를 순매수한 것과 대조적이다.
탄핵 정국이 일단락되자 트럼프 당선인의 보호무역주의 정책과 고환율 등 기존 리스크가 다시 두드러졌다. 이날 증시에서 코스피지수를 끌어내린 건 2차전지와 제약·바이오 관련주였다. 전날 트럼프 당선인이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의 전기자동차 보조금을 폐지하고 배터리 소재에 글로벌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공언하자 관련주가 일제히 급락했다. 삼성SDI는 6.08% 떨어졌고, LG에너지솔루션은 3.89% 하락했다. 포스코퓨처엠(-8.24%), 에코프로비엠(-7.8%) 등 배터리 소재 업체의 하락폭은 더 컸다.
제약·바이오주도 이날 ‘트럼프 리스크’를 피해가지 못했다. 미국 내 약가 인하를 추진하겠다는 트럼프 당선인의 발언에 양국 제약주가 동반 하락했다. 이날 유가증권시장에서 유한양행은 4.73% 떨어지고 삼성바이오로직스는 2.5% 밀렸다. 美 반도체 훈풍 피해간 삼성전자나흘째 달러당 1430원대에 머무르고 있는 원·달러 환율도 증시 발목을 잡았다. 대한항공(-6.9%), 진에어(-13.5%), 제주항공(-12.1%) 등 항공주는 이달 들어 급락세를 보이고 있다. 항공기 리스비, 유류비 등 달러 관련 비용이 높은 항공 업종은 대표적 고환율 피해주다.
고환율 수혜를 보는 수출주는 반등에 실패했다. 대표적 ‘고환율 수혜주’로 꼽히는 현대자동차는 16일 1.86% 하락한 데 이어 이날도 2.13% 떨어졌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기업 실적 전망이 좋지 않기 때문에 환율 상승이 악재로만 반영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반기 이후 국내 증시의 ‘리스크’로 전락한 삼성전자에 외국인 매도세가 이어지는 것도 부담이다. 이달 들어 삼성전자 주식을 1조4691억원어치 순매도한 외국인은 이날도 2328억원어치를 팔았다. 이날 SK하이닉스가 미국발 ‘인공지능(AI) 반도체 훈풍’으로 2.62% 올랐고, 삼성전자는 2.52% 급락했다. 이경민 대신증권 연구원은 “삼성전자 4분기 실적 우려가 지속돼 미국 반도체 훈풍이 유입되지 못하고 하락을 이어갔다”고 말했다.
결국 기업 실적 전망치가 반전돼야 코스피지수도 반등할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한 자산운용사 주식운용본부장은 “정치적 호재와 악재는 결국 시장에 큰 영향을 주지 못하는 부차적 요소”라며 “내년 실적이 긍정적인 업종이 거의 없어 반등 모멘텀을 찾기 어렵다”고 우려했다.
박한신 기자 p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