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엔텍, 조선기자재에 '제조 AI' 입힌다

입력 2024-12-17 18:32
수정 2024-12-18 00:41

“200여 개 협력사와 손잡고 제조 공정 분야 인공지능(AI) 모델을 구축하겠습니다.”

김동건 동화엔텍 대표는 지난 16일 부산 강서구 화전공장을 방문한 양재생 부산상공회의소 회장과 부산시 관계자들 앞에서 “지역 소멸, 숙련공 감소, 중국 기술 추격 등 삼각 파도에 대응하기 위해 AI 기술 도입이 시급하다”며 이같이 말했다.

부산 상공업계와 부산시가 동화엔텍을 주축으로 제조 공정 AI 활용 방안 모색에 나섰다. 중소기업이 집중된 지역 주력 산업인 조선기자재업계에도 이 같은 수요가 갈수록 늘고 있다. 양 회장이 이날 상의 기업 지원 전문가와 부산시 정책협력관까지 대동해 동화엔텍을 찾은 이유다. 김 대표는 “프로젝트별로 크기와 기능 등이 다른 조선기자재의 제조 공정 특성을 살릴 맞춤형 AI 기술을 개발하고 고도화하는 게 시급하다”고 설명했다.

동화엔텍은 1980년 설립된 이후 열교환기 제조 분야에서 앞선 기술력을 축적해 왔다. 열교환기에서 쌓은 지식과 노하우는 초저온(영하 163도), 초고압(700바·bar) 기술 개발로 이어졌다. 동화엔텍의 ‘고압(HP·High Presure) 액화천연가스(LNG) 기화기’는 글로벌 시장의 90% 이상을 점유하고 있다. 계열사인 동화뉴텍도 자연 증발한 초저온 상태의 LNG를 압축해 재사용하는 가스 압축기를 국내 최초로 개발했다. 수소충전소에서 사용하는 초고압용 열교환기를 상용화한 사례는 국내 기업 중 유일하다. 철판에 유로를 식각한 뒤 철판을 쌓아 고온(1300도)으로 압축하는 기술이다. 1000배 압력을 견딜 수 있는 열교환기로, 국내 수소충전소 시장의 80%를 장악했다.

제조 분야에서 상당한 기술력을 쌓았지만 공급망 전체를 아우르는 제조 AI 도입이 미래 경쟁력 확보를 위한 필수 과제라는 게 동화엔텍의 판단이다. 동화엔텍은 10여 개의 AI 프로젝트 과제를 제조 AI 전문기업 아임토리와 공동으로 수행하고 있다. 스마트폰 카메라로 제품을 찍으면 AI가 도면에 반영된 치수와 제품의 실제 크기를 곧바로 비교해 검사 리포트를 작성한다. 갈수록 줄어드는 용접 숙련공 문제를 해결할 열쇠가 로봇이 될 수도 있다. 숙련공은 용접에 집중하고, 숙련공이 반복적으로 수행하는 잡무는 로봇이 해결하는 새로운 분업 시스템이다. 자동화 용접 장비의 전류와 전압을 측정해 이상 신호에 따른 용접 품질을 예측하는 것도 AI 몫이다.

동화엔텍은 이 가운데 일부 프로젝트를 선정해 집중 투자할 예정이다. 김 대표는 “사람 눈에 의존하던 미세 공정 검사 문제를 AI가 해결할 수 있다”며 “협력사인 제강업체에서 보내온 외강의 품질부터 완제품 품질까지 균일하게 관리할 수 있어 조선기자재산업을 위한 새로운 제조 AI 생태계를 구축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부산상의는 AI 투자가 중소기업이 도전하지 못하던 영역이라는 점에서 부산시와 정부의 도움이 절실하다고 했다. 양 회장은 “조선기자재는 조선산업과는 또 다른 제조 방식과 기술 개발 양상을 갖춘 독자 산업군”이라며 “부산시와 협력해 조선기자재용 제조 AI 모델을 마련하는 데 협력할 것”이라고 했다.

부산=민건태 기자 mink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