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 계엄 이후 한국은행이 시중 유동성 공급을 위해 151조원에 이르는 자금을 썼다는 비판에 대해 한은이 "제도의 작동 방식에 대한 오해"라며 진화에 나섰다. 실제 공급된 자금은 15조원 정도이며, 이 역시 자동으로 회수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용훈 한은 금융시장국장은 16일 한은 블로그에 'RP매입을 통한 시장안정화 조치 이해하기'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이같이 설명했다.
RP매매에서 'RP'는 '환매조건부증권(Repurchase agreement)'을 뜻한다. 일정 기간동안 자금을 공급하거나 흡수하기 위해 사용되는 거래방식이다. 일시적으로 유동성이 부족한 상황에서는 금융기관 등이 보유한 적격증권을 환매를 조건으로 매입한다. 일정 기간이 지나면 자동적으로 금융기관이 다시 이를 사들이는 거래다. 반대로 유동성이 과잉 공급된 경우엔 RP매각을 통해 유동성을 흡수한다.
이번 계엄 사태 이후 한은은 임시 금융통화위원회를 열고 RP매입을 통한 유동성 공급을 무제한으로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RP거래 대상 증권의 종류를 확대하고, 참여 기관도 늘리는 방식으로 최대한 공급하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이후 한은이 매입한 RP규모는 14조1000억원 정도다. 지난 4일 10조8000억원 규모의 14일물 매입을 했고, 6일엔 3조3000억원 규모가 공급됐다. 그런데 첫 RP매입이 시행되자마자 이를 두고 10조8000억원을 14일간 공급했으니 총 규모가 151조원에 달하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나왔다.
최 국장은 "시장안정화 조치로서의 RP매입은 매입기간을 고려한 누적규모보다는 실제 RP매입액을 기준으로 유동성 공급 규모를 판단하는 것이 맞다"며 "은행에서 1억원을 한달간 대출받았다고 30억원을 차입했다고 보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설명했다.
또 해당 기간이 지나면 자동으로 환매가 되는 거래라는 점도 강조했다. 14일물의 의미는 한은이 사들인 증권을 14일 후 해당금융기관이 다시 사간다는 의미다.
최 국장은 "RP매입은 단기금융시장에서 자금수요자들이 조달금리 상승으로 자금조달의 어려움을 겪는 일을 막기 위한 마중물 역할을 한다"며 "본원통화의 규모를 항구적으로 증가시키지 않기 때문에 일시적 유동성 공급이 물가상승 압력으로 작용할 가능성은 제한적"이라고 강조했다.
한은의 '무제한 RP매입' 선언은 그 자체로 시장 안정화에 기여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두차례의 비정례 RP매입 후 단기금융시장은 평소 수준에서 작동하고 있으며, 콜금리와 RP금리 수준도 기준금리를 크게 벗어나지 않고 있다.
최 국장은 "한은이 계엄사태 직후 RP매입 등 과감한 시장안정화 조치를 취한 것은 예상치 못한 사태로 시장불안이 확산될 우려가 있는 상황에서는 초기에 보다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시장 안정에 더 효과적이라고 판단하였기 때문"이라며 "앞으로도 시장내 불안감이나 금융시장 가격변수의 변동성이 과도하다고 판단될 경우에는 RP매입은 물론 활용 가능한 추가 조치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시장을 안정시기키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강진규 기자 jos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