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16일 당 대표직에서 공식 사퇴했다. 지난 7월 23일 전당대회에서 63%의 지지를 받아 당 대표로 선출된 지 146일 만이다. 한 대표는 탄핵 찬성으로 선회한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며 ‘부정선거론자’ 등 극단적 세력과 선을 그어야 보수의 미래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지자들에게 “포기하지 않겠다”며 향후 대권 도전 등 정치 행보를 이어갈 가능성도 시사했다.○“탄핵보다 나은 길 못 찾아”한 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최고위원 사퇴로 최고위원회가 붕괴돼 더 이상 당 대표로서 정상적 임무 수행이 불가능해졌다”며 “당 대표직을 내려놓는다”고 밝혔다. 지난 14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직후 “대표직을 계속 수행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지 이틀 만에 선회한 것이다.
한 대표는 “비상계엄 사태로 고통받은 모든 국민께 진심으로 죄송하고, 탄핵으로 마음 아프신 지지자 분들께 매우 죄송하다”며 “(국민과 지지자의) 그런 마음을 생각하면서 탄핵이 아니라 이 나라의 더 나은 길을 찾아보려고 백방으로 노력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모두 제가 부족한 탓”이라고 했다. 이어 “국민의힘은 3일 밤 당 대표와 의원들이 국민과 함께 제일 먼저 앞장서서 우리 당이 배출한 대통령의 계엄을 막아냈다. 헌법과 민주주의를 지킨 것”이라며 “그것이 진짜 보수의 정신이고 제가 사랑하는 국민의힘의 정신”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윤 대통령이 최근 대국민 담화에서 제기한 ‘부정선거 의혹’ 등에 대해서는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우리가 극단주의자에 동조하거나 그들이 상업적으로 생산하는 공포에 잠식당한다면 보수의 미래가 없을 것”이라며 “그날 계엄을 해제하지 못했다면 다음날 거리로 나온 시민과 군인 간 유혈 사태가 벌어졌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 “군대를 동원한 계엄을 옹호한 것처럼 오해받는 건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해낸 위대한 나라와 국민, 보수정신을, 우리 당의 빛나는 성취를 배신하는 것”이라며 “지지자를 생각하면 고통스럽지만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대권 행보 나설 가능성도한 대표가 당 대표직을 내려놓으면서 유력한 차기 대권 후보로서의 행보에 제동이 걸렸다는 분석도 나온다. 국민의힘은 이날 한 대표 사퇴에 따라 권성동(원내대표) 당 대표 대행체제로 전환됐다. 권 대표와 조만간 임명되는 비상대책위원장이 내년 조기 대선까지 키를 쥘 가능성이 높다. 대통령 탄핵에 대한 책임론으로 물러난 한 대표를 곧장 다시 정치 무대로 불러들일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게 정치권 평가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을 찬성한 유승민 전 의원과 마찬가지로 ‘배신의 정치’라는 프레임을 극복해야 하는 과제도 남았다.
하지만 한 대표 측은 아직까지 내년 대선 출마 가능성도 열어둔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이날 기자회견 이후 지지자들을 만나 “저를 지키려고 하지 말라. 제가 여러분을 지키겠다”며 “포기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사실상 정치를 계속하겠다는 뜻을 내비친 것으로 해석됐다. 더불어민주당과 이재명 대표를 향한 공세도 이어갔다. 그는 “계엄이 잘못이라고 해서 민주당과 이 대표의 폭주가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며 “이 대표 재판 타이머는 멈추지 않고 가고 있다. 얼마 안 남았다”고 했다.
내년 조기 대선이 치러지기 전 이 대표가 받고 있는 공직선거법 위반 재판에서 벌금형 100만원 이상의 형이 확정되면 피선거권은 박탈된다. 대선 전 윤 대통령 탄핵소추안의 헌법재판소 심판 결과에 따라 한 대표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질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정소람 기자 ra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