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허브' 런던의 몰락…기업들 英증시 탈출

입력 2024-12-16 17:36
수정 2024-12-16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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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증시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악의 시기를 보내고 있다. 올해 런던 증시에서 빠져나간 기업은 2009년 이후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내년 1월 취임해 ‘아메리카 퍼스트’(미국 우선주의) 정책을 시행하면 런던 대탈출이 가속화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 IPO 15년 만에 최저15일(현지시간) 런던증권거래소그룹(LSEG)에 따르면 올해 런던 증시에서 상장폐지되거나 해외 거래소에 이전 상장한 기업은 총 88개, 신규 상장 기업은 18개다. 2009년 이후 최대 기업 순유출이다. 기업공개(IPO)도 부진해 신규 상장 건수가 15년 만에 최저치를 찍을 것이라고 파이낸셜타임스(FT)는 내다봤다.

기업가치 230억파운드(약 41조7000억원) 규모의 장비렌트 기업 애시테드는 지난주 미국 뉴욕증권거래소(NYSE)로 이전 상장 계획을 발표했다. 런던 증시에 상장한 지 3년 만이다. 390억파운드(약 70조7000억원) 규모의 온라인 도박 사이트 운영사 플러터와 550억파운드(약 99조7000억원) 규모의 건축 자재 기업 CRH는 각각 지난 5월, 지난해 9월 뉴욕 증시에 상장했다. FT가 선정한 100개 기업 지수인 FTSE100 중 2020년부터 런던에서 빠져나가 해외에서 상장한 기업은 총 6개다. 이들의 시장 가치는 2800억파운드(약 507조4000억원)로, 전체 지수 규모의 14%에 달한다.

증시 매력도를 높이려는 영국 정부의 규제 해소 노력도 시장 이탈을 막지 못하고 있다.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는 2020년 코로나19 백신을 긴급 조달한 사례를 본떠 규제혁신사무소(IRO)를 설치했다. 영국 증권 중개업체 필헌트의 찰스 홀 리서치책임자는 “영국 시장이 점점 세계화되는 시장에서 성공하려면 육성과 지원이 필요하다”며 “그렇지 않으면 더 많은 기업이 떠날 것”이라고 경고했다. ○ “트럼프 취임 시 탈출 가속화”영국 기업이 이탈하는 주요 이유로는 북미 시장 사업의 높은 성장성과 풍부한 투자 자금 등이 꼽힌다. 애시테드와 2022년 뉴욕 증시로 이전한 배관장비 유통업체 퍼거슨엔터프라이즈는 영업이익의 각각 98%, 99%를 미국에서 냈다. FTSE100에 속한 기업 중 미국에서 매출의 절반 이상을 거두는 곳은 9개다.

런던의 한 은행 임원은 “내년에 빠르게 성장하는 기업이 더 많이 미국으로 이전 상장할 것”이라며 “미국은 이제 다른 어느 곳보다 자본 시장이 크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미국에서 더 나은 거래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FT는 미국 동종 기업 그룹 대비 밸류에이션, 미국 매출 비중, 북미 투자자 비율 등을 분석한 결과 유럽 증권거래소 중 런던 증시 기업이 미국으로 이탈할 위험이 크다고 분석했다. 이전 가능성이 높은 기업으로는 세계 최대 광산 업체 중 하나인 리오틴토, 담배 제조사 아메리칸토바코 등이 거론된다. 최근 행동주의 헤지펀드 헬리서캐피털은 호주·영국에 동시 상장된 리오틴토에 런던 증시 상장을 철회하라고 촉구했다.

FTSE100 소속 한 기업의 최고경영자(CEO)는 FT에 “트럼프 당선인의 ‘아메리카 퍼스트’로 기업들이 상장 폐지 계획을 앞당길 수 있다”고 전망했다. 골드만삭스는 지난 13일 “더 많은 영국 기업이 미국으로 이전 상장을 고려하고 있으며 영국과 미국의 밸류에이션 격차가 더 커졌다”고 평가했다.

LSEG는 “영국 시장은 현재까지 자본 조달액 기준으로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크며 세계에서 가장 역동적인 개혁을 목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FTSE100지수는 올해 7.33%, 미국 S&P500지수는 26.86% 상승했다.

김인엽 기자 insid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