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치 사라졌던 949일…대통령에게 '정치'란 없었다

입력 2024-12-15 18:08
수정 2024-12-15 19:15
윤석열 대통령이 2년7개월 동안 보인 모습은 ‘정치하지 않는 대통령’으로 요약된다. 대화와 타협이라는 정치적 해법으로 정국을 이끌기보다 귀를 닫은 채 대통령 권한에 의존했다. 과반 의석을 가진 야당의 대표뿐 아니라 당내 비윤(비윤석열)계 인사도 배척해 지지 기반을 스스로 축소했다. 그 결과 지지율은 취임 두 달 만에 20%대로 무너졌고, 국정 운영 동력은 임기 초부터 크게 훼손됐다.

지난 4월 총선에 패배하면서 주요 정책은 22대 국회 들어서도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한 채 좌초됐다. 야당의 입법 폭주와 탄핵 남발에 정치적 해법이 아니라 반헌법적 계엄 선포라는 카드를 꺼내 직무정지에 이른 것도 ‘정치하지 않는 대통령’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건이다.

비윤계 배척…선거연합 해체윤 대통령은 정치 입문 8개월 만에 대선 승리를 거머쥐며 대통령직에 올랐다. 2013년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발언으로 스타가 된 그는 ‘강골 검사’로 쌓은 ‘공정과 상식’이라는 상징 자본을 통해 문재인 정부에 실망한 유권자를 사로잡았다.

윤 대통령은 임기 초 파격 행보를 보였다. 집무실을 청와대에서 용산으로 옮기고, 도어스테핑(약식 기자회견)을 도입했다. 취임 열흘 만에 한·미 정상회담을 열며 한·미 동맹 강화에 공을 들였다. 그 결과 6월 지방선거에서 광역단체장 17곳 중 13곳을 가져오는 승리를 거머쥐었다.

하지만 취임 두 달 만인 7월 지지율이 20%대로 추락하며 정부는 흔들리기 시작했다. 친윤(친윤석열)계 중심으로 당시 당 대표인 이준석 의원을 징계·퇴출한 사건이 계기였다. 이 의원 퇴출은 대선 당시 윤 대통령에게 표를 던진 2030세대 남성 지지층의 이탈을 가속화했다. 대선과 지방선거 승리를 이끈 ‘선거연합(2030세대+6070세대)’을 깬 것이다.

여권 핵심 관계자는 “통상 선거연합보다 통치연합이 커야 정권이 유지가 되는데 이번 정부는 반대로 갔다”며 “지난해 3월 전당대회 과정에서 안철수 나경원 의원 등 비윤계 인사를 배척한 것도 지지 기반을 축소했다”고 했다. 총선 참패로 정치적 입지 상실이후에도 핵심 지지층을 등 돌리게 하는 사건이 연이어 터졌다. 2023년 7월 해병대원 순직 사고는 군을, 같은 해 8월 과학계 연구개발(R&D) 예산 삭감 논란은 과학계를 외면하게 했다. 지난 2월 발표한 2025학년도 의대 정원 확대 정책은 의료계 지지자 이탈은 물론 대통령의 ‘불통’ 이미지를 강화하는 계기가 됐다.

지난해 11월 ‘김건희 여사 명품백 수수’ 의혹 보도는 정부를 벼랑 끝으로 몰고 갔다.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 서울양평고속도로 노선 변경 논란 등 이른바 ‘김건희 여사 리스크’는 2023년 10월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 이어 4월 총선까지 최대 악재로 작용했다. 이번 정부에서 장관을 지낸 한 인사는 “김 여사 문제가 불거졌을 때 대국민 사과부터 법적 처벌 등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이 정무적 판단인데 법적으로 잘못한 게 없다는 인식이 화를 키웠다”고 말했다.

4·10 총선 대패로 윤 대통령 입지는 급격히 좁아졌다. 그럼에도 야당 대표와 한 차례만 대화하고, 야당이 강행 처리한 법안에 대해 총 25차례 거부권을 쓰며 강대강 대치를 이어갔다. 그 결과 노동·교육·의료·연금 등 4대 개혁과 저출산 문제 해결 등 ‘4+1 개혁’은 흐지부지됐다. 결국 윤 대통령은 입법과 상관없는 외교·안보 분야에 집중하며 한·일 관계 정상화, 한·미·일 동맹 강화, 체코 원전 수출 등의 성과를 올렸다. 윤 대통령과 가까운 인사는 “독재자인 북한 김정은과도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회담하는 것이 정치인데, 윤 대통령은 정치력을 전혀 발휘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양길성 기자 vertig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