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밀유출 우려 '증언법' 통과·'반도체·AI법' 뒷전으로…속타는 재계

입력 2024-12-14 21:58
수정 2024-12-16 12:23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 소추안이 14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가운데 재계에서 여야 간 이견이 없는 이른바 '무쟁점 법안'의 조속한 처리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앞서 지난 12일 빅터 차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 석좌는 온라인 대담 '캐피털 케이블'에서 "트럼프 전직 참모들을 만났는데 그들은 트럼프 취임 첫 100일이 아니라 첫 100시간에 한국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수많은 일이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면서 "주한미군, 관세, 반도체 법과도 관련이 있을 수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모리스 창 TSMC 창업자는 최근 대만 타이베이에서 열린 자서전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한국의 정치적 혼란이 삼성전자 경영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밝힌 바 있다.

산업계 현안이 산적한 상황에서 탄핵 정국으로 인해 주요 현안이 뒷전으로 밀려나고 있다.

반도체·AI 패권 전쟁 '골든타임' 놓칠라…"무쟁점 법안이라도 빨리 처리해야"

재계에 따르면 대한상공회의소가 지난 10월 제22대 국회 첫 정기국회의 본격적인 법안 심사를 앞두고 건의한 경제 분야 입법 과제 23개 중 여야 모두가 공통으로 법안을 발의했으나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법안은 총 12개다.

반도체 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반도체 기업에 보조금을 지급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반도체 특별법이 대표적이다.

현재 국내 반도체 관련 인센티브 규모는 세액공제를 포함해도 1조2000억원 수준으로, 일본의 10분의 1, 미국의 5분의 1 수준에 그친다.

각국이 반도체 산업 패권을 놓고 첨예한 경쟁을 벌이는 가운데 여야도 22대 국회 들어 나란히 반도체 특별법을 발의하며 반도체 산업을 지원해야 한다는 데에 뜻을 모았다.

다만 여당의 주 52시간 예외 조항을 두고 여야 간 시각차를 보이면서 소관 상임위의 문턱조차 넘지 못한 상태다.

인공지능(AI) 전환을 전폭 지원해 줄 무쟁점 법안인 AI 기본법 통과도 시급하다. 현재 국회에서 심사 중인 AI 기본법은 AI를 도입·활용하고자 하는 기업에 대한 컨설팅 지원, 중소기업에 대한 AI 기술 도입·활용 자금 지원 등 AI 산업을 육성·지원하는 내용이 골자다.

이와 함께 보조금 재원 마련을 위한 첨단전략산업 기금법안과 국가 핵심기술 유출에 대한 형벌을 강화하는 형법 개정안도 첨단산업 투자지원 강화를 위한 무쟁점 법안으로 꼽힌다.

재계에서는 첨단산업 전력 수요를 뒷받침하는 국가기간전력망을 조속히 확충하기 위한 국가기간전력망 확충 특별법 통과도 시급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대한상의가 지난 11월 발표한 '산업계 전력수요 대응을 위한 전력공급 최적화 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20년간 전력 수요는 98% 증가했으나 송전설비는 26% 증가하는 데에 그쳤고 최근 송전설비 건설도 5∼6년 이상 지연되고 있다.

국회에 계류 중인 해상풍력특별법 제정안, 신재생에너지법 개정안, 수소법 개정안, 고준위 특별법 제정안 등도 여야 간 이견이 거의 없는 무쟁점 법안으로 처리가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숙련 외국인 근로자의 체류기간 연장을 기존 2년에서 3년으로 확대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외국인고용법 개정안도 여전히 국회에 계류 중이다.

지역 내 기업투자 유치가 지방소멸 위기를 해결할 열쇠라는 공감대가 확산하는 가운데 기획발전특구 내 파격적인 규제 완화, 세제 혜택, 인프라 지원 등이 가능하도록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지역균형투자촉진 특별법안의 조속한 통과도 절실한 상황이다.




"트럼프 취임 100시간 내 韓 타격 이슈 쏟아낼 것"…4대 그룹, 美 달려가

내년 1월 미국에서 도널드 트럼프 신정부가 출범하면 관세 부과, 인플레이션법(IRA) 폐지 등 불확실성이 확대될 것이란 전망 속에 한국 산업계 전반에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탄핵 국면으로 사실상 '무정부 상태'가 되면서 국가의 협조나 국가 간 협상이 필요한 사업분야에서 정부 공백으로 차질이 빚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한국경제인협회는 미국 측과의 소통 창구 마련을 위해 '민간 외교관' 역할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한경협은 지난 10일(현지 시간) 미국상공회의소와 함께 미국 워싱턴DC 미국상공회의소에서 제35차 한미재계회의 총회를 개최하고 양국 간 무역 장벽을 제거하고 안정적인 비즈니스 환경을 조성해야한다는 내용을 담은 공동선언문을 채택했다.

한미재계회의에는 한국 측에서는 류 회장을 비롯해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이장한 종근당 회장, 성래은 영원무역 부회장, 조현상 HS효성 부회장, LG화학 신학철 부회장, 삼성전자 윤영조 부사장, 현대자동차 김동욱 부사장,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마이클 스미스 미국법인 대표, 폴 들라니 SK아메리카 부사장 등이 참석했다.

한경협은 이번 한미재계외의에 회장단 일부와 4대 그룹을 포함해 역대 최대 규모의 민간사절단을 파견했다. 이들은 미국 전현직 상·하원 의원과 면담 등 주요 인사들과의 만남을 통해 한국 경제계의 의견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정 공백 틈타 '증언법' 통과…반도체 등 기밀 유출 우려

최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국회에서의 증언·감정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증언·감정법)도 경제계에 타격을 줄 것이란 평가다.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발의한 국회 증언법이 지난 11월 28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법안에는 개인정보 보호와 영업비밀 보호를 이유로 서류 제출과 증인 출석을 거부할 수 없고, 해외 출장과 질병 시에도 화상 연결 등을 통해 국회에 원격 출석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당초 이 법은 기업 기밀 유출과 경영 활동 제약이 불가피해 대통령 거부권 행사가 예상됐지만, 탄핵 정국으로 거부권 행사가 사실상 무산되면서 법은 국무회의를 통과하면 이르면 내년 3월부터 시행될 것으로 보인다.

국회의원의 요구만으로 재계 총수들을 국회로 부르거나 심지어 동행 명령까지 가능하다는 점에서 헌법상 과잉 금지 및 사생활 침해 금지 원칙, 개인정보보호법이 정한 개인정보자기결정권을 침해할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재계는 또한 국회의원이 요구할 경우 영업기밀에 해당하는 자료를 무조건 제출해야 한다는 점에서 반도체, 2차전지, 디스플레이 등 기술 민감도가 높은 첨단산업의 기밀 유출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안옥희 기자 ahnoh0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