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공개 삼성 XR기기…"실시간 길 안내, 영어 메뉴판 자동 번역"

입력 2024-12-13 17:54
수정 2024-12-14 02:30

눈앞에 띄워진 내비게이션대로 따라가니 어느새 목적지다. 음식점 간판으로 눈을 돌리면 평점과 방문 후기가 줄줄이 나온다. 언어 장벽도 없다. 클릭 한 번에 영어 메뉴판이 순식간에 한글로 바뀐다.

삼성전자와 구글이 내년에 선보일 확장현실(XR) 기기를 13일 공개했다. 헤드셋 형태인 이 기기를 장착하면 동영상, 내비게이션 등 스마트폰에 있는 기능을 눈앞에서 바로 볼 수 있다.

이날 삼성과 구글이 미국 뉴욕 구글 캠퍼스에서 공개한 XR 기기(코드명: 프로젝트 무한·사진)의 가장 큰 특징은 테크 분야 최강자들이 협업해 개발했다는 점이다. 세계에서 전자제품을 가장 잘 만드는 삼성전자와 스마트폰 운영체제(OS) 1위인 구글,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분야 ‘지존’ 퀄컴이 작년 2월부터 손을 맞잡았다. 이 기기에는 구글이 개발한 XR OS ‘안드로이드 XR’과 퀄컴이 설계한 AP가 적용됐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신제품에 텍스트는 물론 이미지, 오디오 등을 각각의 상황에 맞게 구현하는 멀티모달 인공지능(AI)을 적용할 계획”이라며 “스마트폰으로 느낄 수 없는 새로운 경험을 소비자에게 선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은 구체적인 사양과 가격은 내년에 공개한다고 밝혔다.삼성, 구글·퀄컴과 XR 파트너십…22개월 만에 '프로젝트 무한' 공개
삼성 "시공간 초월한 초몰입 경험"…점유율 74% 메타 독주 깰지 관심확장현실(XR) 시장의 최강자는 페이스북으로 잘 알려진 미국 메타다. 세계 XR 기기 시장의 74%를 점유할 정도다. 경쟁 업체보다 훨씬 이른 2019년에 뛰어든 데다 저렴한 기기 가격(499달러)을 갖춘 덕분이다. 이유가 하나 더 있다. 구글 아마존 애플 삼성전자 등 라이벌 기업들이 뒤늦게 진출했거나 아직 뛰어들지 않은 것이다.

XR 시장 참전을 놓고 오랜 기간 저울질하던 삼성전자가 구글, 퀄컴과 손잡고 내년에 제품을 출시하기로 한 건 조만간 시장이 활짝 열릴 것이란 판단에 따른 것이다. ○안드로이드 최강끼리 뭉쳤다
삼성전자가 13일 XR 기기 ‘프로젝트 무한’(코드명)을 공개한 건 지난해 2월 구글, 퀄컴과 공동 개발에 들어간 지 1년10개월 만에 제품을 사실상 완성했기 때문이다. 세 회사의 동맹은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통신칩 분야의 세계 최고 기업들이 뭉쳤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구글은 2013년 증강현실(AR) ‘구글 글라스’를 출시했지만 곧 판매를 중단하고 XR 시장에서 철수했다. 자체 하드웨어로 진출한 2013년과 달리 이번에는 가장 강점이 있는 소프트웨어에 집중하고 하드웨어(삼성)와 반도체(퀄컴)는 업계 선두 주자에 맡기기로 했다.

내년 출시될 XR 기기에는 세 기업의 장점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하드웨어를 담당하는 삼성전자는 XR용 초소형 디스플레이 올레도스(OLEDoS·올레드 인 실리콘)를 통해 초몰입 경험을 극대화했다. 퀄컴은 XR 전용 칩 ‘스냅드래곤 XR2플러스’를 통해 기기 사용 환경을 최적화했다.

구글의 생성형 인공지능(AI)인 제미나이는 사용자의 ‘밀착 비서’로서 사용 상황과 맥락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맞춤형 응답을 제공한다. 동영상 플랫폼 1위인 구글 유튜브를 통해서는 XR 전용 콘텐츠를 감상할 수 있다. 구글 지도로 길을 안내하는 기능, 스포츠 경기를 볼 때 각종 통계를 보여주는 기능도 들어갔다. ○관건은 가격과 전용 콘텐츠글로벌 XR 시장은 2024년 244억달러(약 35조원)에서 2029년 848억달러(약 121조원)로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 시장을 선점한 곳은 메타, 애플, 그리고 중국 기업들이다.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지난 2분기 기준 글로벌 XR 시장에서 메타가 점유율 74%(출하량 기준)로 선두를 달렸다. 그 뒤를 중국 바이트댄스의 자회사 피코(8%), 중국 DPVR(4%), 애플(3%), 소니(3%) 등이 이었다.

안드로이드 진영의 성패는 가격과 전용 콘텐츠에서 결정될 것으로 전망된다. 2월 애플이 선보인 비전프로는 3499달러(약 500만원)라는 높은 가격 때문에 판매량이 기대에 못 미쳤다. 메타 퀘스트3는 가격(499달러)이 경쟁 제품 대비 훨씬 저렴하지만 전용 콘텐츠가 부족하다는 평가가 많다.

애플은 진입장벽을 낮추기 위해 ‘보급형’ 비전프로를 개발하고 있다. 최원준 삼성전자 MX(모바일경험)사업부 개발실장은 블룸버그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고객이 부담을 느낄 수 있는 가격대를 놓고 많은 논의를 하고 있다”며 비전프로보다 낮은 가격대로 제품을 출시할 가능성을 열어뒀다.

이날 구글은 메타와 애플을 추격하기 위해 킬러앱과 전용 콘텐츠를 대폭 늘리겠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안드로이드XR에서 개발자가 XR용 게임과 앱을 쉽게 개발할 수 있도록 지원할 방침이다. 최근 기준 애플 앱스토어에서 비전프로 전용으로 개발된 앱은 2500개에 달한다.

삼성전자의 새 XR 기기는 다음달 미국 새너제이에서 열리는 ‘갤럭시S25 언팩’에서 공개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삼성의 XR 기기에는 유튜브 구글지도 등 구글 앱은 물론 지난 1월 삼성전자 AI폰 갤럭시S24 시리즈에 적용된 ‘서클 투 서치’ 기능도 최적화돼 들어간다.

박의명 기자/실리콘밸리=송영찬 특파원 uimy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