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180년 전 부결된 美 대통령 권한대행 탄핵

입력 2024-12-13 17:35
수정 2024-12-14 01:00
1841년 4월 윌리엄 해리슨 미국 대통령이 취임 한 달 만에 폐렴으로 사망해 미국이 발칵 뒤집혔다. 현직 대통령 사망이 처음인 데다 헌법에 대통령직 승계와 대통령 권한대행 관련 조항이 없어 혼란이 극심했다.

당시 부통령이던 존 타일러는 권력서열 2위로 대통령의 법적 권한을 모두 행사할 수 있다고 주장했지만 의회는 “다음 대선 때까지 제한적 권한대행 역할만 해야 한다”고 맞섰다. 타일러가 의회에서 통과된 관세법에 거부권을 행사하자 갈등은 최고조에 달했다. 곧바로 하원은 타일러를 몰아내는 탄핵안 표결에 들어갔다. 결과적으로 부결됐지만 선거로 선출되지 않은 대통령 권한대행에 대한 전무후무한 탄핵안 추진이었다.

미국에서 사라진 역사가 180여 년 만에 한국에서 재현할지 모르겠다. 14일 국회에서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되면 헌법에 따라 한덕수 국무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이 되는데 더불어민주당이 한 총리까지 탄핵 명단에 올려놓고 있어서다. 민주당은 이미 “한 총리도 내란 공범으로 탄핵 대상”이라며 선전포고했다.

헌법상 대통령 권한대행은 대통령의 국군통수권과 외교권, 공무원 임면권, 법률안 거부권 등을 갖는데 민주당은 특히 법률안 거부권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김여사 특검법·양곡관리법·국회법이 가결된 상태에서 윤 대통령이 직무 정지되면 한 총리가 일부 법안에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심판 기간 중 고건 총리도 사면법 개정안에 거부권을 쓴 적이 있다.

거부권 등을 둘러싼 갈등으로 한 총리 탄핵안까지 가결되면 정부조직법에 따라 기획재정부·교육부·과학기술정보통신부·외교부 장관 순으로 권한대행을 맡는다. 만약 권한대행의 대행까지 탄핵당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사회적 불안을 부추겨 탄핵 심판 기간을 단축하려는 게 민주당 의도겠지만 자칫 극심한 혼란으로 경제와 안보에서 회복 불가능한 치명상을 입을 수 있다. 200년 넘는 미국 정치사에서 한 번도 없던 대통령 탄핵을 잇달아 겪는 한국이 감내해야 할 후폭풍치고는 너무나 큰 것 같다.

정인설 논설위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