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공정이 갈수록 복잡해지고 미세화되면서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수율 향상 기술이 주목받고 있다. AI 이미지 분석을 활용해 웨이퍼 표면에 나타나는 미세 결함을 실시간으로 식별하거나 복잡한 공정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변수를 AI로 학습시킨 다음 실시간 모니터링을 통해 최적화를 하는 게 대표적이다. 수율 향상에 안간힘을 쓰는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기업의 AI 도입이 앞으로 더 활발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머신러닝·딥러닝 활용해 반도체 데이터 분석15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 AI 솔루션 기업 크로사이트는 AI를 기반으로 반도체 공정의 수율을 향상시키는 소프트웨어(SW)를 개발하고 있다. 수많은 미세 회로가 집적된 반도체는 칩이 균일하게 정렬돼야 안정적으로 작동한다. 이 때 회로 상·하층부의 틀어짐 정도를 가리키는 오버레이와 회로 폭의 오차를 의미하는 임계치수를 살펴야 한다. 하지만 기존 계측은 비용 문제로 전체의 1% 정도만 살폈다.
크로사이트는 머신러닝 알고리즘을 기반으로 반도체 장비에서 나온 데이터를 분석해 오류를 예측하는 솔루션을 개발했다. 이를 활용하면 웨이퍼의 오버레이와 임계치수를 0.2(㎚·1나노는 10억 분의 1m)까지 대량으로 예측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 솔루션을 노광 공정에 우선 적용하겠다는 계획을 세운 회사는 2026년까지 식각, 박막 증착, 세정, 연마 단계에도 AI를 도입하겠단 방침이다.
또 다른 국내 AI 솔루션 기업 에이아이비즈는 반도체 제조공정에서 발생하는 데이터를 딥러닝 알고리즘으로 분석해 이상을 탐지하고 원인을 파악함으로써 수율을 높이는 플랫폼 '더치보이'를 개발했다. 에이아이비즈는 이 기술로 '2024년 SW 산업인의 날' 기념식에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상을 수상했다.반도체 장비 유지 보수 잘해도 수율 개선해외에서도 AI를 활용한 수율 개선 기술이 현장에 적용되고 있다. 세계 4대 반도체 장비 업체인 미국의 램리서치는 최근 웨이퍼 제조 장비의 유지 보수 최적화를 위해 설계된 AI 로봇 '덱스트로'를 출시했다. 나노 단위의 정밀도가 필요한 만큼 반도체 제조 장비에는 첨단 물리학, 로봇 공학 및 화학 기술 등이 활용된다. 이 때문에 웨이퍼 팹에는 정기적으로 정교한 유지 보수를 필요로 하는 수백 개의 공정 장비들이 설치돼 있다.
덱스트로는 서브미크론(1㎛ 미만) 정밀도를 요구하는 중요한 유지 보수작업을 반복적으로 실시함으로써 장비의 비용 효율성을 향상하도록 설계됐다. 이미 덱스트로는 세계 각지의 팹에 배치돼 생산 변동성을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수율 개선에 보탬이 되고 있다.
크리스 카터 램리서치 고객지원사업부 부사장은 "덱스트로는 최첨단 팹에서 엔지니어들과 함께 작업을 할 수 있도록 제작됐다"며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정밀도와 반복성을 통해 복잡한 유지 보수 작업을 수행하고 제조 수율을 향상시켰다"고 강조했다. 김영주 삼성전자 상무 겸 메모리 에치기술팀장은 "반도체 제조 장비에 유지보수가 필요한 경우 장비 가동 중단 시간을 줄이고 비용 낭비를 막기 위해 효율적으로 작업해야 한다"며 "덱스트로의 유지 보수는 수율 개선에 기여한다"고 평가했다.
독일의 화학소재 기업 머크는 미국의 AI SW 기업 팔란티어와 손잡고 반도체 생산을 안정화할 수 있는 플랫폼 '아씨니아'를 선보여 수율 개선에 나섰다. 아씨니아는 반도체 제조 생태계의 모든 주체들이 확보한 데이터를 AI 알고리즘으로 분석하는 방식이다. 분석 데이터는 클라우드를 통해 공급망 내에 있는 여러 협업 기업과 공유하고 생산성을 높인다.공정 제어·결함 분석에서도 활용도 높아져AI는 대규모 데이터 분석을 통해 팹에서 발생할 수 있는 결함을 예측한다. 예를 들어 이미지 분석 기술을 활용해 웨이퍼 표면에 나타나는 미세한 결함을 실시간으로 식별한다. 이를 통해 수율 예측 정확도를 높이고 불량률을 감소시킨다. AI는 공정 제어에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반도체 제조는 복잡한 공정 단계에서 다양한 변수들이 서로 영향을 미친다. AI는 변수들 간의 관계를 학습하고 실시간 모니터링을 통해 각 단계에서 최적의 조건을 찾아내 공정을 개선한다.
결함 분석에서도 AI의 활용도는 점점 높아지는 추세다. 팹에서 발생하는 수많은 결함 유형을 미리 학습하고 이들의 패턴을 인식해 문제를 사전에 대응한다. 특히 딥러닝 기반 이미지 분석 기술을 활용하여 웨이퍼의 결함을 자동으로 분류하고, 이를 기준으로 공정 개선을 위한 데이터를 제공한다.
과거에는 100개를 생산하면 99개 이상은 양품일정도로 완성도 높은 공정을 보였지만 최근엔 반도체 미세화가 극도로 높아지면서 수율이 점점 떨어지고 있다. 4나노 기준 삼성 파운드리 수율은 최근에서야 70%에, TSMC는 지난해 80% 넘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웨이퍼 가격이 대략 장당 중형 세단 가격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수율 1%만 개선해도 조단위의 추가 매출 발생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AI를 활용한 수율 개선 시도가 활발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관련 시장도 성장할 것으로 보인다. 시장조사기관 마켓리서치퓨처는 산업용 AI 시장이 2022년 약 20억 달러에서 2032년 900억 달러까지 커질 것으로 분석했다.
강경주 기자 quraso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