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하들에게 ‘반란군’ 오명을 씌워주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최근 우연히 TV를 켰다가 보게 된 한 야전 지휘관의 울먹이는 듯한 발언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다. 누군가의 자랑스러웠던 아버지, 부하들에게 존경받던 강직한 군인이 하루아침에 내란죄의 주요 임무 또는 조력자로 전락한 게 딱했다.
“문을 부수고 들어가 국회의원을 끄집어내라”는 윤석열 대통령 지시에 소극적으로 대처한 현장의 군인들에게 “면피성 해명만 한다”고 비판하는 게 옳은지는 모르겠다. 다만 이런 일이 위계질서가 뚜렷한 군인과 검찰 조직에서나 일어날 법한 일이라고 여긴다면, 그건 다시 생각해볼 일이다. ‘밥그릇’이 달린 직장에서 다소 부당하고 무리한 지시를 받았을 때 “이건, 안 됩니다”라고 자신 있게 말하는 직원이 있을까. 우리 회사는 반대 의견을 자연스럽게 말할 수 있는 조직인가. 조직 소통 가로막는 권위주의권위적인 조직 문화는 내부의 원활한 소통과 협력을 가로막는다. 대통령 행사에 참석한 정·관·재계 관계자는 “대통령 참모들이 격식과 의전을 너무 챙긴다”고 입을 모았다. 이런 조직에선 대통령이 만나고 보는 사람들이 제한되고, 경호와 의전 담당자가 정책 실무자보다 우선된다.
획일적인 조직도 권위주의가 자라나는 토대다. 관료와 검찰 중심의 대통령실 ‘서·오·남(서울·50대·남성)’은 평생 질서에 순종하는 법을 배웠다. “공무원과 민간 인재, 해외 동포, 패기 있는 젊은 인재 등 실력만 있으면 누구라도 국정 운영에 참여시키겠다”던 대선 공약은 실종됐다. 부처 위에 군림하는 대통령실의 체질도 바뀌지 않았다. 윤석열 대통령이 청와대를 빠져나온 주요 이유 중 하나가 “부처 위에 군림하며 권력을 독점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부처 공무원들은 “윤석열 정부에서 대통령실과 부처 간 위계는 적자와 서자처럼 더 뚜렷해졌다”고 평가했다. 획일적인 조직으로 혁신 어려워이런 조직 문화는 민간 기업에서도 볼 수 있다. 내로라하는 국내 대기업 임직원을 만나면 그 모임의 대장이 주로 얘기하는 것을 종종 본다. 그 대장이 나가면 다음으로 높은 사람이 대화를 주도한다. 핵심 임직원 백그라운드도 대개 비슷하다. 기획, 재무 등 내부의 핵심 조직은 ‘끼리끼리’ 어울린다. 판매와 영업 등을 제외하고 실적을 숫자로 확인할 수 없는 부서에선 지연과 학연이 고과와 승진에 영향을 미친다. 간혹 외부에서 인재가 들어오더라도 텃세를 이겨내지 못한다. 이런 조직에선 “이미 다 해봤다”는 상사와 선배의 발언에 ‘토’를 달기가 쉽지 않다.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특파원 생활을 하면서 경험한 ‘빅테크’ 문화는 딴판이었다. 애플, 아마존, 구글, 테슬라 등 업종이 전혀 다른 기업 임직원이 자유롭게 아이디어를 교환하고 스타트업을 함께 창업했다. 테슬라 출신 애플 고위 임원, 구글 출신 아마존 직원을 흔하게 볼 수 있었다. 도널드 트럼프 2기 정부 출범을 앞두고 “주 80시간, 무보수로 정부 혁신에 나설 혁명가를 뽑겠다”는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의 공언은 한국에서 너무나 이국적인 얘기다.
우리 사회가 어느 순간 반대를 용납하지 않는, 권위적이고 획일적인 사회로 후퇴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든다. 연말을 맞아 자기 주변의 후배와 부하들이 어떤 의견을 내고 있는지, 또 내부 소통은 활발한지 찬찬히 살펴봤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