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에선 수년째 부정부패와의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서슬 퍼런 공산당 일당 독재 국가에서 처벌이 무서워 어떻게 부정부패를 저지를까 싶지만, 베트남에 사는 많은 외국인은 입국 단계에서부터 노골적으로 뇌물을 요구하는 이민국 직원과 세관 직원들로 인해 놀라게 된다.
올해 7월 19일 사망한 베트남 최고지도자 응우옌 푸 쫑(Nguy?n Phu Tr?ng) 공산당 서기장은 13년간의 재임 기간 내내 국가와 당의 명운을 걸고 부패, 권한 남용, 횡령 등 3대 범죄를 저지른 공직자 4만여명을 기소했지만 부정부패는 여전하다. 베트남의 여성 재벌 쯔엉미란(Truong My Lan)은 지난 2012년부터 2022년까지 측근들과 공모해 계열 은행인 사이공 상업 은행(SCB)에서 304조 동(약 16조8000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사형을 선고받았다. 이는 베트남의 2022년 GDP(4000억달러·약 557조원)의 3%가 넘는 규모다. 베트남을 넘어 동남아시아에서 역대 최고 수준의 횡령 범죄로 꼽힌다.
다른 나라들도 예외는 아니다. 2년 전, 돈을 뜯으려고 마약 사건 용의자를 고문하다 숨지게 해 무기징역을 받은 태국 '부패 경찰 서장'의 재산은 13억5천만 밧(550억)이 넘었다. 국내 대기업 L사 인도네시아 법인의 지인은, 수입 제품이 통관되지 않아 세관에 담당 직원을 보냈더니 노골적으로 뇌물을 요구해, 고민 끝에 통관을 마냥 기다렸다고 한다. 심지어 아시아 최고 청렴 국가로 꼽히는 싱가포르에서도 전직 장관이 연루된 부패 사건 수사가 진행 중이다. 이스와란(Iswaran) 전 교통부 장관은 현지 부동산 재벌로부터 전용기와 최고급 호텔 등을 지원받은 혐의로 올 1월 기소된 이후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매년 국가 청렴도에서 세계 5위, 아시아 1위를 기록한 싱가포르에겐 매우 충격적인 사건이다.
동남아 국가에 만연한 부정부패 현실은 국제 투명성 기구가 매년 집계하는 부패 인식 지수(Corruption Perceptions Index, CPI)를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100점 만점으로 점수가 높을수록 부정부패가 없는 것으로 간주하는데, 싱가포르가 83점으로 180개 대상 국가 중 세계 5위, 아시아 1위를 기록하고 있다. 다음으로 말레이시아가 50점, 아직 아세안에 정식 가입은 되지 않았지만, 회원국으로 유력한 동티모르가 43점, 베트남이 41점, 태국 35점, 인도네시아와 필리핀 34점, 라오스 28점, 캄보디아 22점, 미얀마 20점, 역내 유일한 전제군주국가인 브루나이의 점수는 파악되지 않았다. 싱가포르를 제외하면, 평균 50점 이하라 모든 국가에서 부정부패가 심각한 것을 알 수 있다. 동남아 국가들의 부정부패에 대해, 서양의 오래된 피식민지 역사와 빈부 격차로 인해 ‘가진 사람(기업)’이 좀 더 베풀기를 기대하는 문화적 관습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도 있다. 하지만 문제는 21세기에 중진국으로 올라서려는 아세안 국가들이 부정부패로 인해 새는 국가 재정을 필수 분야에 집중적으로 투자하지 못하는 데 있다.
교육 분야를 예로 보면, US News와 World Report에서 공교육 시스템, 대학 진학률, 최고 수준의 교육 등에 근거해 207개국을 대상으로 산정하는 2023년 국가별 교육 순위에서 싱가포르는 20위, 말레이시아 39위, 태국 44위, 필리핀 52위, 인도네시아 58위, 베트남 65위, 미얀마 74위, 캄보디아 83위를 기록했다. 각 국가의 부패 순위와 교육 수준이 싱가포르를 제외하고는 비슷하고 큰 차이가 없다. 부정부패가 꼭 국가의 교육 수준에 영향을 미쳤다고 단정하긴 어렵지만, 그렇다고 부패 지수가 바닥인데 높은 교육 순위를 기대하기도 어렵다. 이러한 상황은 세계 지식재산권 기구(WIPO)가 발표한 2023년 글로벌 혁신 지수(Global Innovation Index, GII)에서도 마찬가지다. 132개 대상 국가 중 5위 싱가포르, 36위 말레이시아, 43위 태국 정도 제외하고 모든 아세안 국가들이 중하위권이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떨까? 부패인식지수 100점 만점에서 90점 이상일까? 한국은 100점 만점 중 63점으로 32위를 기록했다. 180개국 중 32위니 상당히 좋은 점수로 보이지만, 부패인식지수 70점대는 ‘사회가 전반적으로 투명한 상태’, 50점대는 ‘심각한 부패로부터 벗어난 정도’로 해석된다. 63점의 한국은 절대 부패는 벗어났지만 전반적으로 투명한 사회에는 도달하지 못했다는 것으로 우리 역시도 갈 길이 바쁘다. 우리에게 세계 5위의 청렴도를 자랑하는 싱가포르의 반부패 정책은 좋은 모범 사례이며 다른 아세안 국가의 '부패와의 전쟁'도 눈여겨 볼 대목이다.
<한경닷컴 The Lifeist> 이성득 인도네시아 UNAS경영대학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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