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등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박현경(24·사진)도 한때 그 말을 철석같이 믿었다. 아홉 번 연속 준우승하면서 실망과 좌절만 거듭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숫자 ‘2’가 꼴도 보기 싫을 때가 있었다고 한다.
그랬던 박현경에게 ‘2’는 더 이상 아픈 숫자가 아니다. 아홉 번의 준우승이 있었기에 지금의 그가 만들어졌다는 걸 깨달으면서다. 올 시즌 목표했던 대상(MVP) 수상도, 상금왕도 2위로 놓쳤음에도 박현경이 웃을 수 있는 이유다. “수많은 준우승 끝에 올해는 우승만 세 번 했어요. 대상과 상금랭킹에서 2위를 했으니, 내년 또는 후년에는 1등을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짜릿했던 한경 레이디스컵2019년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에 데뷔한 박현경은 올해 ‘커리어 하이’를 찍었다. 한 해 가장 많은 3승을 쓸어 담아 공동 다승왕에 올랐고, 대상과 상금랭킹에선 윤이나(21)에 이은 2위를 차지했다. 올해 정규투어에서 11억3319만원을 벌어들인 그는 목표했던 누적 상금 40억원 돌파(42억1573만원)에도 성공했다.
최근 만난 박현경은 “후반기에 대상 수상 욕심 때문에 사실 조급해한 적도 있었는데, 다 끝나고 나니 저 자신에게 ‘잘했다’고 칭찬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대상 수상을 놓친 것에 대해선 “처음엔 올해가 아니면 기회가 언제 올지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생각해 보니 올해가 아니더라도 언제든 기회를 만들 수 있겠다는 믿음이 생겼다”며 “조급함을 버리고 차근차근 올라가는 선수가 되고 싶다”고 웃었다
그렇다면 최고의 시즌을 보낸 박현경이 꼽은 2024년 최고의 순간은 무엇일까. 박현경은 윤이나, 박지영(28)과 연장 혈투 끝에 우승한 BC카드·한경 레이디스컵을 꼽았다. 그는 “올해 대상과 상금랭킹 1~3위 선수 간 연장 승부였고, 최고의 선수들을 제치고 우승했기에 더 짜릿했다”고 설명했다. 내년 목표는 4개박현경은 KLPGA투어의 대표적인 ‘육각형 골퍼’다. 드라이버부터 퍼터까지 14개 클럽을 모두 잘 치는 것으로 유명하다. 올 시즌에도 평균 타수에서 70.32타로 전체 4위를 차지했고, 평균 버디 2위(3.91개), 페어웨이 안착률 9위(78.58%), 그린 적중률 5위(76.62%) 등 주요 부문에서 상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그럼에도 박현경은 아직도 자신이 부족하다고 말한다. 그는 “많은 분이 육각형 골퍼라고 말씀해 주셔서 감사하지만, 제 기준에선 부족한 게 너무나 많다”며 기복 있는 퍼팅과 평균 드라이브 비거리를 자신의 약점으로 꼽았다. “올겨울 베트남 전지훈련 때 부족한 부분을 더 가다듬어야 해요. 퍼팅이 더 예리해졌으면 좋겠어요. 거리는 한순간에 늘어나는 게 아니기 때문에 웨이트 트레이닝을 더 꾸준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끊임없는 성장을 꿈꾸는 박현경의 내년 목표는 크게 네 가지다. 상반기 우승, 메이저 대회 우승, 다승, 대상 수상 등 올해와 같은 목표를 설정했다. 박현경은 “올해 3승을 하고도 대상을 못 탔으니 내년엔 4승은 해야 할 것 같다”며 웃었다. 그러면서 “내년엔 20대 중반이 되는데, 진짜 전성기는 지금부터 시작”이라며 “늘 응원해 주시는 팬클럽 ‘큐티풀 현경’ 회원분을 위해서라도 앞으로 10년은 꾸준한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다”고 다짐했다.
서재원 기자/사진=임형택 기자 jwse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