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동맹이 수십 년 만에 최대의 시험대에 올랐다.”-뉴욕타임스(NYT)
“한국 민주주의에 입힌 상처의 대가는 너무나도 크다.”-아사히신문
지난 3일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령을 선포하자 외신은 일제히 진행 상황을 집중분석했다. 미국과 일본, 중국뿐만 아니라 영국, 프랑스, 독일 언론 역시 한국 계엄령 사태를 비중 있게 보도했다.
“굴욕적으로 끝난 셀프 쿠데타” 일제히 비판한 미국 언론 미국 언론은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훼손한 한국의 비상계엄 선포를 일제히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도했다.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FP)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를 두고 “굴욕적으로 끝난 셀프 쿠데타”라고 지난 3일 진단했다.
NYT는 “윤 대통령이 야당이 북한과 공모해 자신을 무너뜨리려 한다는 근거 없는 비난과 함께 계엄령을 선포함으로써 한·미 동맹은 수십 년 만에 최대의 시험대에 올랐다”고 평했다.
또 “이번 계엄령 선언은 한국 내 주둔 중인 약 3만 명의 미군과 자산에 대한 국방부의 향후 계획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전했다.
NYT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정권교체기를 앞둔 바이든 행정부를 놀라게 했다고 진단했다. “미국은 이 발표를 사전에 통보받지 못했으며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태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일본 주요 일간지들은 계엄이 해제된 4일 조간 1면 톱기사로 한국의 계엄 발령 소식을 전했다.
일본 아사히신문은 이날 윤 대통령의 계엄령 선포와 해제에 대해 “한국 민주주의에 입힌 상처의 대가는 너무나도 크다”고 보도했다. 또 계엄령은 윤 대통령이 자신의 권력을 지키려는 판단이었다고 비판했다.
아사히신문은 이 기사에서 윤 정권이 계엄령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 “현재 국정 운영은 이미 한계에 다다랐다”며 “올해 4월 총선에서 여당이 참패했고 최근에는 20%대 초반 낮은 지지율에 허덕이고 있었다”고 분석했다. 그 이유는 윤 대통령의 독선적인 정치 방식 탓이었다고 진단했다.
또 “비상계엄이라는 예상 밖의 조치를 취한 것은 야당의 공세에 몰려 자신의 권력을 지키기 위해 다른 방법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아사히신문은 "윤 대통령이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서’라는 명분을 내걸었지만 이것이 과연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한’ 행위였는지 의문”이라고 했다.
한국 국민이 쌓아올린 민주주의 역사에 대해서도 자세히 기술했다.
아사히신문은 “한국은 군사독재 정권이 오랫동안 이어졌지만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민들의 끈질긴 투쟁과 많은 희생 끝에 1980년대 후반 민주화를 이루어낸 역사가 있다. 정치적 좌우 대립이 격렬함에도 불구하고 대선을 통해 정권교체를 반복하며 민주주의의 형태를 지켜왔다. 윤 대통령은 이러한 민주화 역사를 고려하지 않았던 것인가”라고 썼다.
요미우리신문은 동아시아 안보에 미칠 악영향에 주목했다. 5일 이 신문 사설은 “한국 내정이 대혼란에 빠지면 한일 관계를 시작으로 동아시아 안보 환경에 필연적으로 나쁜 영향을 미친다”고 밝혔다.
중국 및 홍콩·대만 언론들은 4일 ‘12·3 비상계엄 사태’에 대해 윤석열 대통령이 민주화가 정착된 한국에서 성공할 수 없는 무리수를 뒀다고 보도하며 정권 붕괴 가능성에 주목했다.
중국 반관영 매체 중국신문망은 이날 계엄군이 총을 들고 국회에 진입해 의원들을 체포하려 했다며 이 사건을 ‘서울의 겨울’이라고 명명했다. 중국신문망은 국회의원들이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가결하고 군이 국회에서 철수했지만 야당이 헌법적 책임을 물을 전망이라며 윤 대통령의 위기는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전했다.
관영 신화통신은 ‘서울의 겨울: 윤석열의 6시간 계엄령 희극’이라는 기사에서 “현재 벌어지는 일들이 영화 <서울의 봄>과 줄거리가 같다”면서 “한국이 계엄령을 선포한 것은 40여년 만인데 며칠 뒤에 그 악명 높은 12·12 군사쿠데타 45주년이 된다”고 짚었다.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민주화가 정착된 한국에서 국민들이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라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는 지적도 나왔다.
잔더빈 상하이대외경제대학 한반도연구센터장은 펑파이신문에 “두어달 전 계엄에 관한 소문이 돌았을 때는 아무도 믿지 않았지만 돌이켜보면 비상계엄 선포의 전조가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윤 대통령 지지율은 계속 하락하는 추세였고 야당은 김 여사 특검법을 추진하고 있었다며 윤 대통령이 정부 예산안 통과를 명분 삼아 계엄을 선포하려 했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잔 센터장은 “오늘날의 한국 국민이 더 이상 40년 전의 모습이 아니며,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가 마음속에 깊이 뿌리박혀 있기 때문에 윤 대통령이 계엄령을 통해 권력을 유지하는 것은 애초부터 어려웠다”고 말했다. 빠른 회복력 보인 민주주의 조명하기도유럽 매체들은 윤 대통령의 정치적 입지가 크게 흔들릴 수 있다는 데 집중하면서도 빠르게 계엄 해제에 돌입한 한국 민주주의 회복력을 조명했다.
프랑스 AFP통신은 ‘한국의 정치적 격변은 민주주의의 취약성과 회복력을 보여줬다’는 기사에서 “계엄령 선포는 정치 변혁의 모범으로 칭송받는 한국에서도 민주주의가 취약하다는 사실을 전 세계에 알렸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셀레스트 애링턴 조지워싱턴대 교수는 AFP통신에 “(계엄령이) 민주주의에 약간의 균열을 냈다”면서도 사태가 빨리 무마됐다는 사실이 “민주주의의 회복력과 힘에 대한 희망을 준다”고 말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윤 대통령이 계엄령 발표를 통해 ‘국회를 장악한 좌파 세력이 북한에 동조하고 반란을 획책하고 있다’고 비난했다”며 “이는 우익 세력을 결집하기 위한 대통령의 정치적 도박일 수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만약 그렇다면 그것은 매우 어리석은 일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오히려 민주주의에 역행하는 행태가 돼 그의 정치적 입지를 악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도 “이번 사태가 한국을 혼란에 빠뜨렸고 윤 대통령의 미래에 의문을 제기했다”며 “윤 대통령의 선택은 한국에서 정상적인 정치활동을 훨씬 뛰어넘어 1960~70년대에 통치한 군부 독재자 박정희의 전술을 연상시킨다”고 분석했다. 이어 “윤 대통령이 자신의 몰락을 거의 확실하게 만들었다”며 “그가 스스로 사임하지 않으면 국회는 아마도 그를 탄핵할 것”이라고 관측했다.
가디언은 “윤 대통령이 자신의 대중적 인기가 바닥난 가운데 처절한 도박을 했다”며 “여당을 포함한 국회가 만장일치로 그의 선언을 뒤집은 것은 그의 계산이 잘못됐다는 점을 시사한다”고 지적했다.
더타임스는 국제한국학협의회 부회장인 그레그 스칼라토이우 교수를 인용해 “한국은 고도로 문명화된 현대 국가다”며 “며칠, 몇 주만 지나면 모든 것이 괜찮아질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보도했다.
북한·중국 등이 이번 사태를 자국에 유리하게 이용할 수도 있다는 분석도 이어졌다. 줄리언 보거 가디언 선임기자는 윤 대통령이 북한의 위협을 계엄 명분으로 내세웠던 것을 두고 “자기실현적 예언이 될 위험이 있다”며 “김정은은 한국의 약점을 이용하려 할 가능성이 매우 높고 북한이 공격적으로 움직이면 윤 대통령과 군대에 정당성을 제공할 수 있다”고 짚었다.
블룸버그통신은 “이 (아시아) 지역에서 미국과 생각이 같고 강력한 동맹 중 하나인 한국이 모범적이지 못한 민주주의를 드러냈다”며 “중국이 이 사실을 놓고 서방보다 자국 시스템의 이점을 과시하는 방법으로 활용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김영은 기자 kye021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