野, 윤석열 대통령 탄핵안 발의…與, 내각 총사퇴 요구

입력 2024-12-04 17:49
수정 2024-12-05 07:53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한 야당이 4일 윤석열 대통령의 자진 사퇴(하야)를 요구하는 동시에 탄핵소추안을 발의했다. 전날 밤 윤 대통령이 긴급 담화를 통해 선포했다가 국회의 반대로 해제한 비상계엄 조치와 관련해서다. 대통령실 고위 참모들은 이날 윤 대통령에게 일괄 사퇴할 뜻을 전달했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윤 대통령의 탈당과 내각 총사퇴를 요구했다. 미국의 정권 교체와 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경제·안보 환경이 시계 제로인 상황에서 국가 리더십이 무너질 위기에 처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날 민주당은 “윤 대통령이 집무 집행에 있어서 헌법과 법률을 광범위하게 그리고 중대하게 위배했다”며 탄핵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본인과 가족의 불법에 대한 수사가 임박하자 이를 회피할 목적으로 위헌·위법의 계엄령을 발동, 국군을 정치적 목적으로 부당하게 동원해 국민의 기본권을 심대하게 침해했다”며 “국헌 문란의 헌정질서 파괴 범죄로서 용서할 수 없는 중대 범죄”라고 규정했다.

민주당은 윤 대통령의 내란죄 고발도 추진할 예정이다. 내란죄는 대통령의 형사상 불소추 특권에서 제외돼 탄핵과 관계없이 윤 대통령을 수사할 수 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더 이상 참을 수도 용서할 수도 없다”며 “윤 대통령은 정상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을 하기 어려운 상태”라고 탄핵 의지를 밝혔다.

윤 대통령은 이날 한 대표 등과 만나 계엄 사태와 관련해 “민주당의 폭거 때문에 한 일이니 나는 잘못이 없다”는 요지로 발언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 대통령은 5일 오전 대국민 담화를 통해 입장을 밝힐 것으로 전해졌다.

갑작스러운 계엄 선포 및 해제에 대통령실과 정부 고위 관계자들도 혼란에 빠졌다. 이날 오전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 이하 수석비서관 이상 고위 참모들은 일괄 사의를 밝혔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등 국무위원들과 함께 비상계엄 관련 현안 간담회를 열었다. 회의에서는 국무위원의 전원 사의 표명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왔지만 한 총리가 “책임을 다하자”며 진화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발의된 탄핵안은 5일 국회 본회의에서 보고된 후 6~7일께 표결에 부쳐질 전망이다. 처리를 위해서는 국회의원 재적 3분의 2 이상의 동의가 필요해 여당에서 최소 8명 이상의 이탈표가 나와야 한다."尹, 즉각 물러나야"…탄핵열차 올라탄 野, 7일까지 표결 '속도전'
A4용지 28장 탄핵안 발의…여당서 8명 이상 이탈 땐 통과지난 3일 밤 비상계엄 선포 사태가 ‘윤석열 대통령 탄핵’ 정국으로 빠르게 전환되고 있다. 야6당은 4일 윤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발의했고, 이르면 오는 6일 본회의에서 찬반 표결이 이뤄진다. 국민의힘은 대통령 탄핵에는 일단 선을 긋고 비상계엄 선포에 대한 대통령 사과와 탈당 등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탄핵안 표결이 본회의에 부쳐지면 친한(친한동훈)계를 중심으로 이탈표가 발생할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野6당 “尹, 헌법 위반 명백”
더불어민주당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야6당은 이날 윤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발의했다. 탄핵소추안 발의에는 국민의힘을 제외한 야6당 소속 의원 전원과 무소속 김종민 의원 등 191명이 참여했다. 이들은 탄핵소추안을 5일 국회 본회의에 보고하고 이르면 6일 표결할 계획이다. 국회법에 따르면 탄핵소추안은 본회의 보고 24시간 이후, 72시간 이내에 표결해야 한다.

A4용지 28페이지 분량의 탄핵소추안에는 윤 대통령의 전날 비상계엄 선포가 헌법은 물론 계엄법·형법 등 현행법을 위반했다는 내용이 담겼다. “윤 대통령은 헌법이 요구하는 그 어떠한 계엄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음에도 비상계엄을 발령해 헌법을 위반했다”고 썼다. 비상계엄 선포 행위가 형법상 내란미수에 해당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김용민 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는 탄핵소추안 발의 직후 취재진과 만나 “윤 대통령의 내란 행위를 도저히 묵과할 수 없다”고 했다.

그간 역풍을 우려해 적극적인 탄핵 여론 조성에 신중했던 민주당은 비상계엄 선포 사태를 계기로 탄핵을 강하게 밀어붙이고 있다. 이재명 대표는 국회 본관 앞 계단에서 열린 ‘비상시국대회’에서 “윤 대통령은 국민이 준 권력으로 국민을 향해 쿠데타를 했다”고 말했고, 박찬대 원내대표는 “즉각 대통령직에서 물러나야 한다”고 했다. 당 최고지도부가 일단은 윤 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하고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비상계엄 선포의 위헌·위법성을 주장하며 윤 대통령을 탄핵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평가다. ○與 일각선 “탄핵은 절대 안 돼”여당인 국민의힘은 비상계엄 선포가 잘못됐다면서도 탄핵으로는 연결 짓지 않는 분위기다. 안철수 의원이 자진 사퇴를 요구한 것 외에는 탄핵을 주장하는 공개 목소리도 아직 나온 게 없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이날 비공개 최고위원회의에서 “계엄 선포는 국민의힘 정신에 명백하게 위배된 것”이라면서도 퇴진 대신 탈당, 내각 총사퇴, 국방부 장관 해임 등을 건의했다.

공개적 탄핵 요구가 나오지 않는 건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때 겪은 ‘보수 궤멸’ 트라우마 때문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윤 대통령이 탄핵으로 자리에서 내려오면 보수 지지 기반 자체가 무너져버릴 수 있다는 우려다. 박 전 대통령 헌법재판소 탄핵심판 변호인이었던 유영하 의원은 비공개 최고위에서 박 전 대통령 탄핵을 언급하며 “정권 재창출까지 고려해 숙고해야 한다”는 취지로 말했다고 한다. ○친한계표 향방이 관건하지만 민주당이 ‘탄핵 열차’를 출발시키면 여권이 동요할 수밖에 없다는 시각도 있다. 비상계엄 선포에 대한 국민적 비판이 큰 상황에서 친한·비윤(비윤석열)계를 중심으로 찬성표가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탄핵소추안 표결은 무기명으로 이뤄진다. 탄핵소추안이 의결되려면 200석이 필요한데, 야권 의석수는 192석이다. 친한계에서 8석만 이탈해도 탄핵소추안은 가결된다. 한민수 민주당 대변인은 “한 대표께 정중히 요청드린다”며 “표결에 동참해달라”고 했다. 다만 친한계에서도 탄핵에는 신중한 모습이다. 친한계 박정훈 의원은 SNS에 “야당이 발의한 (김건희 여사) 특검은 받더라도 대통령 탄핵만큼은 반드시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노경목/한재영/정소람/정상원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