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라이프이스트-손주에게 물려줄 아버지 고사성어] 아이를 속이지 마라

입력 2024-12-03 17:02
수정 2024-12-03 17:03

둘째 애가 태어나고서다. 손주들 보러 부모님이 집에 오셨다. 동생이 생겨 시샘하는 큰아이가 낮에 본 장난감을 사달라며 떼를 썼다. 시부모님께 민망했던 아내가 서둘러 “내일 사줄게”라고 했다. 아이는 울음마저 멈췄다. 지켜보던 아버지가 내게 “내일 꼭 그 장난감을 사주거라”라며 들려준 고사다.

공자의 제자인 증자(曾子)의 아내가 시장에 갈 때 아이가 어머니를 따라가려 울었다. 어머니가 “장에 갔다 돌아오면 돼지를 잡아주겠다”라며 달랬다. 아이를 떼놓고 장에 다녀오니 남편이 돼지를 잡으려고 했다. 아내가 “아이한테 농담했을 뿐이에요”라며 제지했다. 증자는 “아이는 당신이 한 말을 농담으로 받아들이지 않았소. 아는 것이 없는 아이는 부모를 따라 배우고 부모의 가르침을 듣는데, 지금 당신은 아이를 속였으니 이는 속이는 걸 가르치는 일이오. 어머니가 자식을 속이면 자식은 부모를 믿지 못할 것이니 가르침이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오[母欺子 子而不信其母 非所以成敎也].” 남편은 끝내 돼지를 잡아 삶았다.

이 이야기에서 나온 고사성어가 ‘돼지를 잡아서 자식을 가르친다’라는 ‘살체교자(殺?敎子)’다. 몸으로 보여주는 교육이 말로 하는 훈육보다 중요하다는 사실도 함께 알려준다. 한비자(韓非子) 외저설좌(外儲說左) 상편에 나온다.

아버지는 그날 “‘살체교자’의 ‘체’ 자가 낯설 거다. ‘돼지 체(?)’자”라며 고사성어보다 돼지 얘기를 더 많이 했다. 한나라 고조 유방 부인 여태후는 자기가 낳은 아들인 해제가 황위에 오르자 최고 권력자로 부상했다. 첫 번째 한 일이 남편 유방이 살아있을 때 자신의 사랑을 빼앗은 척부인을 잡아들였다. 손발을 자르고, 눈알을 파내 장님으로 만들었다. 귀에 유황을 부어 귀머거리로 만들고, 혀를 자랐다. 벙어리가 되는 독약을 강제로 먹였다. 돼지우리에 처박아 돼지와 같이 인분을 먹으며 살게 했다. 사람이라고 부를 수조차 없는 처참한 꼴이 된 척부인은 사람돼지, 즉 ‘인체(人?)’라고 불렸다. 이 사건 이후 중국인들은 돼지 체(?)자 쓰기를 꺼려 사어(死語)가 되었다.

아버지는 “아이를 속이지 마라”면서 “남을 속이는 행동은 사람들 사이의 신뢰를 깨트린다. 신뢰는 유리그릇이다. 신뢰가 무너진 관계는 다시 회복하기 어렵고, 서로에게 정직하고 진실하게 행동해야 할 도덕적 책임과 기준을 위반하는 행동이다”라고 단정 지었다. 이어 “속임수는 단기적으로 이득을 줄 수 있을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더 큰 불이익을 초래한다. 거짓이 드러났을 때 그로 인해 생기는 문제는 신뢰 상실뿐 아니라 사회적 평판 손상, 관계 악화, 심지어 법적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라고 경고했다. 특히 “남을 속이면 자신의 존중감이 낮아진다. 진실하지 않은 행동을 하는 자신을 받아들이기 어려워지며, 이는 내면의 갈등이나 죄책감으로 이어진다”라며 우려했다.

아버지는 “속임수의 가장 단순한 형태가 거짓말이다. 사실을 의도적으로 왜곡하거나 날조하는 것이다”라며 “진실은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지만, 거짓말은 일관성을 유지하기 어렵고 여러 증거와 모순이 생기기 마련이어서 시간이 지남에 따라 사람들의 의심이 커지고, 작은 실수나 모순점이 쌓여 결국 진실이 드러난다”라고 했다. “거짓말을 유지하려면 계속해서 새로운 거짓말을 만들어야 해 그 과정에서 스스로 모순에 빠지거나 주변 상황과 충돌해 끝내 진실이 밝혀진다”라고 한 아버지는 “속임수를 쓴 사람이 나중에는 자신이 만든 거짓말에 얽매여 자신을 스스로 곤경에 빠뜨리게 한다. 거짓말해서 네가 원하는 걸 얻었다손 치더라도 그래서 행복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하며 거짓말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속임수의 한계와 진실의 중요성을 강조한 아버지는 “정직함이 이익을 가져온다”라는 교훈을 담아두라며 신문에 난 영국의 사회학자 라크만의 연구를 인용했다. 연구는 10분간 대화하는 동안 피험자의 60% 이상이 최소한 한 번씩 거짓말을 했다고 밝혔다. 심지어 연인이나 어머니와 나눈 대화에서도 3분의 1이나 반이 거짓말이었다. 아버지는 손자병법 시계(始計) 제1편에 ‘전쟁은 속임수다[兵者詭道也]’라는 말이 나온다며 “속임수, 거짓말, 꼼수로 가득한 전쟁터지만, 손자(孫子)도 속임수는 하책이라고 했다”고 알려줬다.

거짓말을 극도로 싫어한 아버지는 거짓말을 ‘가(假)짓말’이라는 조어를 굳이 썼다. “내가 거짓을 말하려면 상대의 거짓말을 잡아낼 수 없다”라고도 했다. 요즘 아이들의 교육이 문제라고들 한다. 그 책임이 혹시 ‘돼지 잡아주겠다’ ‘장난감 사주겠다’라는 말만 해놓고 약속을 지키지 않은 부모에게 있지는 않은지 돌이켜 보게 한다. 아버지는 그날 “아이는 부모의 거울이다”라며 “정직성을 손주에게 가르칠 가장 좋은 방법은 솔선수범밖엔 없다”라고 했다.

<한경닷컴 The Lifeist> 조성권 국민대 경영대학원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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