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매년 개최하는 창업 경진대회인 ‘도전! K-스타트업’. 지난해 이 대회의 최종 무대에서 창업 리그 왕중왕 대상(대통령상)은 알데바, 예비창업자 리그 왕중왕 대상(국무총리상)은 라이온로보틱스가 받았다. 알데바는 3차원(3D) 프린팅 기술로 합성 장기 등 의료 훈련용 제품을 개발하는 스타트업이다. 라이온로보틱스는 인공지능(AI)과 로보틱스 기술을 활용해 안정적으로 보행할 수 있는 네 발 로봇을 개발하고 있다. 두 기업은 공통점이 있다. 모두 대학교수가 창업한 스타트업이라는 것이다. 스티브 박 KAIST 교수는 알데바의 공동 창업자다. 라이온로보틱스를 설립한 황보제민 대표도 KAIST 교수다.
거세지는 교수 창업 열풍교수 창업 열풍이 거세지고 있다. 최근 3년 동안 1300명이 넘는 ‘교수 최고경영자(CEO)’가 나왔다. 빨라진 기술 상용화 속도가 교수들을 연구실 밖으로 불러내고 있다. 반도체, 로봇 등 딥테크 분야에서 주목받는 스타트업 상당수가 교수 창업 기업이다.
3일 한국대학교육협의회에 따르면 지난해 창업한 교수는 466명으로 3년 전(315명)보다 두 배 가까이로 늘었다. 업종은 기존 바이오 분야 위주에서 인공지능(AI), 로봇, 반도체 등 다양해졌다. 딥테크 분야 유망 스타트업 상당수를 교수가 창업해 국내 테크 스타트업의 수준이 높아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반도체 분야가 대표적이다. 온디바이스용 AI 반도체를 개발하는 딥엑스는 김녹원 대표가 경희대 컴퓨터공학과 교수 재직 시절 설립한 기업이다. 그는 애플에서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설계 엔지니어로 근무한 경험이 있다.
김장우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교수는 2022년 DPU(data processing unit·데이터처리장치) 전문 스타트업 망고부스트를 창업했다. 망고부스트는 지난달 미국에서 열린 ‘슈퍼컴퓨팅 2024(SC24)’ 행사에서 DPU 전 제품을 선보였다. 기술력으로 거액 투자 유치정명수 KAIST 전기·전자공학부 교수가 창업한 파네시아는 최근 시리즈A(사업화 단계)로 800억원의 투자금을 유치해 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파네시아는 반도체 성능을 높여주는 컴퓨트익스프레스링크(CXL·Compute eXpress Link) 개발사다.
반도체 스타트업 하이퍼엑셀을 창업한 김주영 대표도 KAIST 전기·전자공학부 교수다. 2012~2019년 미국 마이크로소프트(MS)에서 하드웨어 엔지니어로 일했다. 하이퍼엑셀도 AI 서비스에 최적화한 반도체를 개발한다.
기술력이 필수인 로봇 분야에서도 교수 창업이 주목받고 있다. 에이딘로보틱스는 로봇이 힘 조절을 할 수 있게 도와주는 일명 ‘힘 토크 센서’를 개발하는 회사다. 이 회사의 공동 대표인 최혁렬 성균관대 기계공학부 교수 중심으로 성균관대 기계공학부의 ‘로보틱스 이노베토리’ 연구실에서 나온 기업이다.
보행 로봇 제조 스타트업 라이온로보틱스는 황보제민 KAIST 기계공학과 교수가 창업했다. 이 회사가 내놓은 로봇 ‘라이보2’는 지난달 제22회 상주 곶감 마라톤 대회에 출전해 풀코스 42.195㎞를 완주하며 화제를 모았다.
한재권 한양대 로봇공학과 교수는 2018년 설립한 에이로봇의 최고기술책임자(CTO)다. 에이로봇은 최근 4세대 휴머노이드 로봇 앨리스를 공개했다. 빠른 사업화와 상용화교수 창업은 1997년 제정된 ‘벤처기업 육성에 관한 특별조치법’에서 교수의 회사 직원 겸직을 허용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초기에는 의대나 생명공학과 교수들이 바이오 기업을 설립하는 사례가 많았다.
최근에는 공학 계열에서 교수 창업이 활발하다. 한 기업주도형 벤처캐피털(CVC) 대표는 “벤처캐피털(VC)의 딥테크 기업 투자가 늘어나고 학내 연구 성과의 사업화 속도가 빨라진 영향이 크다”고 설명했다. 대학들의 적극적인 교수 창업 지원도 한몫했다. 서울대는 교수가 최대 두 개 회사까지 겸직하는 것을 허용하고 있다. KAIST 교수는 최대 6년까지 창업으로 학교를 휴직할 수 있다.
교수 창업 증가에도 학계와 스타트업 업계에선 여전히 걸림돌이 적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교수의 임직원 겸직을 막는 조항이 대표적이다. ‘2021 대학 산학협력활동 실태조사 창업부문 보고서’에 따르면 교수 창업 관련 겸직 규정이 있는 대학은 전국 413개 대학 가운데 195곳(47.2%)으로 나타났다. 절반은 관련 규정이 없어 교수 창업이 쉽지 않다. VC 투자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한국은 미국처럼 창업 초기부터 VC가 교수 창업을 주도적으로 지원하기 어려운 구조다. 미국에서는 창업투자회사가 대주주 자격(경영지배 목적)으로 투자가 가능하다.
김주완 기자 kjw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