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인분 주문하더니…" 軍 간부 사칭에 2500만원 날린 사장님

입력 2024-12-03 11:25
수정 2024-12-03 13:29

‘군인 사칭 60인분 포장 노쇼 저도당했네요’, ‘군부대 사칭 노쇼를 당했습니다’(자영업자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

군 간부를 사칭해 소상공인에게 대량 주문을 한 뒤 대리구매를 빙자해 돈을 뜯어내는 사기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대량 주문을 하는 손님 요구를 거절하기 힘든 자영업자 심리를 노린 것으로 풀이된다.

3일 경찰청에 따르면 전날까지 이 같은 '군 빙자 노쇼' 사기 사건이 전국적으로 76건 접수된 것으로 나타났다. 사건이 접수된 시도청은 총 12개 시도청으로 강원, 부산, 인천, 울산, 충북, 경기 남부 등이다. 이들은 대량·단체 주문 발주를 한 뒤 전투식량이나 식자재 등을 대리 구매 빙자해 돈을 송금하게 하고 잠적하는 수법을 사용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과 자영업자 커뮤니티 등에 따르면 가해자는 우선 자영업자 가게에 "100인분 포장, 몇일 50명 회식"과 같은 주문을 낸다. 인근 군부대 명을 대며 '군인'이라고 자신을 소개하기에 믿을 수 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이후 실제로 식당을 이용하거나 주문 음식을 받게 될 날짜가 다가오면 은근슬쩍 '대리 구매가 필요하니 입금을 해달라. 바로 대금을 지급하겠다'고 제안한다고 한다. 한 자영업자는 "대량 구매를 하는 손님이 하는 부탁이라 거절하지 못했다가 당했다"고 설명했다.

전국적으로 유사한 사례가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경찰이 현재까지 파악한 전체 76건의 신고 중 24건은 수십만~수천만원을 송금한 뒤 돌려받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울산 일대에선 해당 수법에 당해 2520만원을 송금한 자영업자도 있었다.


전국적으로 사건이 벌어지지만 특히 군부대가 밀집한 강원 일대에서 이같은 수법이 잦다는 게 경찰의 설명이다. 경찰청은 강원경찰청 형사기동대로 집중수사관서로 지정해 전국 사건을 병합하도록 지시했다.

지난달엔 충북 충주에서만 관련 피해가 5곳에서 발생했다. 지난달 28일 충주시는 노쇼 피해에 주의를 요구하는 내용의 문자를 음식점 4650곳에 발송했다.

시는 안내 문자를 통해 “최근 자신을 군인이라고 사칭해 약 50인분의 음식을 대량 주문한 뒤 나타나지 않는 노쇼 범죄가 연이어 발생하고 있으니, 각별히 주의해달라”고 당부했다.

충북 충주경찰서는 한 달 새 불고기백반집 등 지역 5개 식당에서 노쇼 피해가 발생해 수사에 착수했다. 식당 별 피해 금액은 40만~50만 원 정도다.

피해 식당에 따르면 군인 사칭자는 자신을 지역 부대 소속 ‘김XX 중사’라고 소개한 뒤 단체 음식을 포장 예약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인근 부대에 재난 지원을 나가는데 소머리국밥 50그릇을 준비해달라고 요구했고, 영수증까지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충주 외에도 서울, 인천 등에서도 유사 피해가 발생한 것으로 파악됐다. 지난 15일 서울의 한 카페에는 ‘김 중사’를 사칭하는 남성이 빵 100개 음료 50잔을 포장해달라는 주문 전화가 걸려왔다. 업주는 시간에 맞춰 음식을 마련했지만 끝내 이 남성은 나타나지 않았다.

경찰은 노쇼 행위에 대해 고의성이 입증되면 위계에 의한 업무방해죄로 처벌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업무방해죄 성립 시, 5년 이하 징역 15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이 내려진다.

경찰 관계자는 “대량 주문 접수시 예약금 설정, 공식 전화번호 확인 등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안정훈 기자 ajh632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