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원식 국회의장이 어제 헌정사상 초유의 감액 예산안 본회의 상정을 미루고 10일까지 합의 처리를 여야에 촉구했다. 더불어민주당이 677조원 규모의 내년도 예산안을 감액만 반영한 채 국회 예산결산특위에서 통과시킨 뒤 대치가 이어지자 이런 결정을 했다. 막판 파국은 피했지만, 또 한 번 예산안 처리가 법정 기한(12월 2일)을 넘기는 오점을 남겼다.
이런 구태 되풀이는 나랏돈을 볼모 삼아 폭주하는 거대 야당과 무기력한 여당의 정치 실종이 낳은 결과다. 여야 간 극한 충돌 속에서도 예산안만큼은 합의 처리하는 게 오랜 관행이었는데, 이견을 조정하고 타협하는 기능이 애초 불능이었다. 고질적인 늑장 심사에 대한 여야의 책임도 크다.
민주당 감액안의 무리수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대통령실과 검찰, 경찰, 감사원 등 특수활동비만 해도 여당일 땐 그 필요성을 인정했다. 경찰 특정업무경비는 문재인 정부 5년 동안 오히려 늘렸다. 그러더니 이번엔 “쓸데없이 특활비 등만 잔뜩 넣었다”며 모두 삭감했다. 이런 내로남불이 어디 있나. 그러면서 자신들의 쌈짓돈인 국회 특활비와 특경비는 전액 유지했다. 병력 자원 감소 빌미로 북한의 드론 대응 등 군 미래 전력 예산까지 대폭 삭감했다. 글로벌 군비 경쟁이 격화되고 북한은 갈수록 위협 강도를 높이는데, 안보 위기의식이나 있나. 인공지능(AI) 등 미래 먹거리 예산도 칼질했다. 나라 살림의 세입(稅入)에 해당하는 예산 부수법안도 민주당 마음대로다. 상속세 부담을 완화하겠다고 해놓고 없던 일로 했다. 금융투자소득세 폐지와 가상자산 과세 유예 찬성으로 지지층 반발이 나오자 태도를 바꾼 것이다.
그나마 우 의장이 합의 처리를 종용한 것은 다행이다. 어차피 상대가 있는 협상에서 ‘전무 아니면 전부’일 수는 없다. 복합 경제위기 터널 속에서 끝까지 나라 살림과 법안을 정략 수단으로만 삼는다면 국민 배신이다. 민주당이 진정한 ‘먹사니즘’ 추구 정당이라면 감액안부터 철회하는 게 마땅하다. 여당도 합리적인 결과를 도출할 수 있는 세밀한 방안을 마련해 협상에 임해야 한다. 여야 모두 반도체법, 전력망법, 고준위방사선폐기물법 등 나라 미래를 위해 한시가 급한 법안 처리에도 속도를 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