巨野의 횡포…'예산 감액안' 예결위서 사상 첫 강행 처리

입력 2024-11-29 19:51
수정 2024-11-30 01:37

더불어민주당이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검찰 특수활동비·특정업무경비 587억원 등 총 4조1000억원을 일방적으로 삭감한 ‘감액(減額) 예산안’을 단독 처리했다. 수백조원 규모의 한 해 나라 살림살이가 여야 합의 없이 다수당에 의해 일방적으로 예결위 문턱을 넘은 건 헌정사상 처음이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깊은 유감”이라는 입장을 냈고, 국민의힘은 “이재명 방탄용 예산”이라며 반발했다. ○특활비에 막힌 680조원 국회 예결위는 29일 전체회의를 열어 총수입 651조5000억원, 총지출 673조3000억원 규모의 내년도 예산안을 야당 단독으로 의결했다. 총수입은 정부 예산안보다 3000억원 줄었고, 총지출은 4조1000억원 삭감됐다. 국민의힘은 일방적인 예산안 처리에 반발해 표결에 불참했다.

정부가 지난해 9월 국회에 제출한 예산안은 각 상임위원회의 예비 심사를 거쳐 예결위에 올라왔다. 예결위는 지난 18일부터 증액·감액 심사를 했다. 대다수 비쟁점 예산은 여야가 합의를 봤지만, 민주당이 전액 삭감을 주장한 대통령비서실·국가안보실(82억5100만원)과 검찰(587억원), 감사원(60억원), 경찰(31억6000만원) 등의 특경비·특활비가 쟁점으로 떠올랐다. 민주당은 특활비가 “세부 사용 내역이 확인되지 않는 ‘깜깜이 예산’”이라며 삭감 주장을 폈고, 국민의힘은 “사용 내역 제출 의무가 없다”고 맞섰다.

민주당은 일종의 ‘비상금’으로 편성된 정부 예비비 4조8000억원도 절반으로 줄여야 한다고 했다. 이날 예결위를 통과한 감액 예산안에는 이 같은 민주당 주장이 모두 반영됐다. 국고채 이자 상환 비용 5000억원도 삭감됐다.

민주당은 쟁점 예산을 놓고 정부·여당과 이견이 좁혀지지 않자 “감액 예산안을 처리할 수 있다”고 엄포를 놨다. 정부 동의가 필요한 증액을 포기하더라도 국회의 감액 권한을 행사하겠다는 선전포고였다. 정부 예산안 자동부의 시점(12월 1일), 법정 처리 시한(2일)이 다가오자 이런 기류가 강해졌다. 야당 우세인 예결위의 활동이 30일로 종료되면 협상 주도권이 정부·여당으로 넘어갈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민주당 예결위 간사인 허영 의원은 “법정 시한 내에 예산안을 처리하려고 했지만, 정부에 예산 증액동의권을 부여한 현행 제도의 한계상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고 했다.

이에 곽규택 국민의힘 의원은 “이재명 대표의 분풀이를 위해 검찰 특활비를 일방적으로 삭감했다”고 주장했다. 최 부총리는 “야당이 책임감 없이 민생을 저버리는 무리한 감액 예산안을 제시하고, 이를 일방적으로 처리했다”며 “피해는 결국 국민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검경의 특활비가 전액 삭감되면 마약과 딥페이크 수사 등 민생범죄 수사가 차질을 빚을 것이라고 했다. 최 부총리는 “대외 불확실성의 파도에 신속히 대응할 골든 타임을 놓치게 된다”고도 우려했다. ○‘벼랑 끝 전술’의 끝은민주당은 지난해에도 예산 협상이 평행선을 달리자 ‘감액 예산안 단독 처리’ 카드를 꺼냈다. 하지만 정치권 안팎에선 “의원들이 지역 예산 증액을 포기할 수 있겠냐”는 반응이 나왔고, 감액 예산안 강행 처리는 이뤄지지 않았다. 결국 예산안 법정 처리 시한을 19일 넘긴 지난해 12월 21일 여야 합의로 처리됐다.

지난해와 달리 헌정사상 처음으로 감액 예산안을 일방 처리한 건 ‘벼랑 끝 전술’로 평가된다. 민주당 관계자는 “지난해는 협상 전략이었을 수 있지만 올해는 아니다”고 했다. 특히 이 대표가 주장하는 지역화폐 사업 예산 2조원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도 과감한 예산 삭감이 필요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정부 예비비 4조8000억원을 절반으로 줄이라고 한 게 대표적이다. 예결위 관계자는 “기재부가 3000억원 삭감에서 물러서지 않았다”고 했다. 이 대표에 대한 검찰의 수사·기소를 ‘정적 제거용’으로 규정한 상황에서 검찰 특활비·특경비 예산 삭감도 반드시 관철해야 할 사안이었다는 평가다.

다만 감액 예산안이 최종적으로 국회 본회의 문턱을 넘을지는 미지수다. 이날 예결위를 통과한 예산안도 여야 원내대표 간 협상을 통해 수정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우원식 국회의장도 다수당이 단독으로 올린 감액 예산안을 본회의에 상정하기엔 정치적 부담이 따를 수밖에 없다. 국회의장실 관계자는 “우 의장이 어떤 결정을 할지 아직 알 수 없다”고 했다. 우 의장과 여야 원내대표는 다음달 2일 본회의 개의 전 만나 예산안 상정 문제를 논의할 예정이다.

한재영/정상원/박상용 기자 jy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