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하반기 들어 국내 20대 대기업 그룹 중 최소 8개 그룹의 계열사들이 희망퇴직을 통한 인력 구조조정에 나선 것으로 나타났다. 은행권도 농협은행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희망퇴직 시즌에 들어갔다. 경기 불확실성이 커진 가운데 고용 시장이 위축되면서 내수 침체가 길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29일 경제계에 따르면 공시대상기업집단 상위 20개 그룹 중 SK·LG·포스코·롯데·한화·신세계·카카오 등 8개 그룹의 14개 계열사가 올해 하반기 들어 희망퇴직에 돌입한 것으로 파악됐다. 신세계면세점(신세계디에프), KT, LG디스플레이, LG헬로비전, 롯데호텔앤리조트, 세븐일레븐(코리아세븐), G마켓, SK온, 롯데면세점, SSG닷컴, 포스코, 카카오게임즈 등이다.
희망퇴직은 기업이 경영상 이유로 인원 감축이 필요할 때 근로자에게 퇴직 신청을 받아 법정 퇴직금 이상의 위로금을 주고 퇴직시키는 제도다. 근로자 동의를 얻어 정리 해고와 달리 내부 반발이 적다는 특징이 있다. 다만 퇴직자에게 많게는 수억원을 줘야 하기 때문에 금융권, 대기업 등 자금 여력이 충분한 기업이 택하는 인력 감축 방법으로 통한다.
하지만 최근의 ‘희망퇴직’은 분위기가 조금 다르다는 분석이 나온다. 내수 침체 장기화에 경영 실적이 점점 나빠지자 생존을 위한 ‘고육지책’으로 인력 구조조정을 결단한 기업이 적지 않다는 해석이다.
‘비상 경영’을 선포한 신세계면세점(신세계디에프)은 2015년 창사 이후 처음으로 희망퇴직을 받고 있다. 통상 희망퇴직은 40대 이상 중장년층 직원이 대상인데, 신세계면세점은 근속 5년 이상 사원을 대상으로 접수한다. LG디스플레이는 5년 만에 사무직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받았다. 롯데호텔앤리조트는 4년 만에, SK온은 사상 처음 희망퇴직에 나섰다. 공지대상기업집단에 포함되진 않지만 주요 대기업인 엔씨소프트는 12년 만에 희망퇴직을 진행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기업 사이에 부는 ‘희망퇴직 칼바람’이 고용시장 전반에 부정적인 영향을 줘 내수 회복 속도를 끌어내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지연 한국개발연구원(KDI) 전망총괄은 “도소매업처럼 내수 경기에 영향을 많이 받는 업종이 고용 조정에 나서고 있다”며 “그나마 올해 상황이 괜찮던 수출 중심 대기업도 불확실성이 커져 신규 고용을 확대할 가능성이 작아졌다”고 말했다.
고용 지표 곳곳에선 ‘한파’가 감지된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10월 전년 동월 대비 취업자 수 증가폭(9만6000명)은 4개월 만에 10만 명을 밑돌았다.
도소매업(-14만8000명)은 8개월 연속, 건설업(-9만3000명)은 6개월째 취업자가 줄었다.
박상용 기자 yourpenc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