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명작을 한국서 보다니"…격찬의 '비엔나 1900'展

입력 2024-11-29 16:59
수정 2024-11-29 20:45


‘지금 보지 않으면 다시는 볼 수 없다’(Now or Never).

역대 최고 수준의 미술 전시를 말할 때 영미권 언론은 이런 표현을 쓴다. 지금 영국 내셔널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반 고흐전, 지난해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에서 열린 페르메이르 전시가 대표적이다. 이런 찬사를 받으려면 작품의 질과 양, 탁월한 전시 기획에 더해 꼭 갖춰야 할 게 하나 더 있다. 거장을 상징하는 대표작들이 있느냐다.

30일 개막하는 국립중앙박물관과 한국경제신문사의 ‘비엔나 1900, 꿈꾸는 예술가들’은 최고 수준 전시의 조건을 두루 갖췄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번 전시는 서양 근현대미술에서 가장 중요한 사조 중 하나인 빈 분리파를 다룬다. 에곤 실레를 상징하는 대표작 ‘꽈리 열매를 한 자화상’을 필두로 그의 유화 10여점과 드로잉 20여점, 구스타프 클림트의 초상화 등 빈 분리파 화가들의 주요 걸작 총 191점이 사상 최초로 국내에서 전시된다. 양정무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걸작들과 깊이 있는 기획이 어우러진, 국내에서 볼 기회가 흔치 않은 전시”라고 말했다.



○1900년 빈, 그 아름다운 혁신

예술의 역사에는 ‘결정적 시공간’들이 있다. 15세기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미켈란젤로는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르네상스 미술을 꽃피웠고, 렘브란트와 페르메이르는 17세기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네덜란드 황금시대’ 회화를 일궈냈다. 19세기 말 프랑스 파리의 모네와 동료 화가들은 인상주의를 남겼다. 그 뒤를 이은 곳이 1900년을 전후한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의 수도 빈이다. 이번 전시의 주인공인 클림트와 실레가 그곳에 있었다.


전시는 120여년 전 빈 미술계의 분위기, 예술가들의 고민과 혁신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게 구성돼 있다. 맨 처음 볼 수 있는 작품은 빈 분리파를 상징하는 전시 포스터. 양승미 학예연구사는 “당시 서양화가들은 역사와 종교, 신 등 전통적인 주제에서 벗어나 인간이라는 존재를 정면으로 조명하기 시작했다”며 “오스트리아에서는 클림트가 이끄는 빈 분리파 화가들이 선두에 섰다”고 설명했다. ‘수풀 속 여인’을 비롯한 클림트의 초상화들에서 새로운 구도를 탐구했던 혁신가의 면모를 1부에서 만날 수 있다.

전시장에 배경 음악처럼 은은하게 깔리는 클래식 음악의 정체는 바로 다음 공간에서 드러난다. 당대 오스트리아의 걸출한 지휘가이자 작곡가였던 구스타프 말러가 지휘한 베토벤 9번 교향곡이다. 이곳에서는 음악과 함께 클림트가 오스트리아 분리파 전시장에 그린 벽화 ‘베토벤 프리즈’가 대형 화면으로 상영된다.


이어 전시 2부는 20세기 그래픽아트에 혁신을 일으킨 콜로만 모저의 풍경화를 비롯해 인상주의 등 해외 미술의 영향이 반영된 수작들로 이어진다. 이들이 제작한 포스터, 잡지, 우표 디자인 등을 함께 만날 수 있다. 또 한 번 모퉁이를 돌면 세계적인 해외 박물관들의 공예 전문 전시장을 연상시키는 공간이 모습을 드러낸다. 일상을 예술로, 예술을 일상으로 만들고 싶어했던 빈 분리파 작가들의 그릇 등 공예 작품과 가구 등 60여점을 3부에서 만날 수 있다.

○에곤 실레 걸작 한자리에

전시 후반부로 접어드는 4부에서부터가 하이라이트다. 클림트 세대에 이어 본격적으로 등장한 신세대 후배 화가, 표현주의의 선구자 리하르트 게르스틀과 오스카 코코슈카의 주요 작품들이 관람객을 맞는다. 내면의 격정을 캔버스에 폭발시킨 듯한 자유분방하고 에너지 넘치는 그림이 즐비하다. 코코슈카의 1909년작 포스터 ‘피에타’는 100년이 넘게 흐른 지금 봐도 충격적일 정도다. 코코슈카의 라이벌 격이었던 막스 오펜하이머의 ‘자화상’은 사상 처음으로 해외 전시에 나온 작품이다.


에곤 실레를 조명하는 마지막 5부는 그야말로 압도적이다. 이날 전시장을 찾은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장도 실레의 작품 앞에서 “미술사의 혁명을 이끈 너무나도 아름다운 작품들”이라고 평했다.

관람객들은 실레의 자화상과 인물화, 풍경화와 누드화 등을 고루 감상하며 실레의 독보적인 표현 방식을 마음에 새기게 된다. 드로잉도 20여점이 나와 있다. 유화 작품의 열화 버전 정도로 평가받는 다른 화가들의 드로잉과 달리 실레의 드로잉은 그를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 양식으로 평가받는다. 실레 작품의 핵심 특징이 ‘선’이기 때문이다. 전시의 마지막은 혁신의 불을 댕긴 클림트에 대한 실레의 존경과 애정을 보여주는 감동적인 영상이 장식한다.


국내에 유례가 없는 수준의 전시인 만큼 예매 경쟁이 치열하다. 관람객 안전을 위해 하루 입장 가능 인원이 제한돼 있는 탓이다. 이미 이번 주말 티켓은 전 회차가 매진돼 관람하려면 취케팅(취소표 티케팅)이나 현장 구매를 해야 한다. 예매는 네이버와 티켓링크에서 할 수 있고, 2주마다 입장권이 추가 판매된다. 예를 들어 지금은 12월 31일까지의 티켓만 살 수 있다. 1월 1일부터 15일까지의 티켓은 다음달 2일부터 구입이 가능하다.

평일 낮이나 오후 6~8시 야간에 박물관 문을 여는 수요일·토요일을 선택하면 예매와 관람이 좀 더 수월하다. 성인 1만8500원, 청소년은 1만6000원. 전시는 내년 3월 3일까지 열린다.

성수영/김보라/유승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