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김치 담글 줄 아는 사람도 있나요?”
30대 요알못(요리를 알지 못하는) 주부 사이에선 이런 말이 심심찮게 나올 정도로 김치 만드는 법을 모르는 사람이 많다. 김장을 담가 주던 부모 세대 역시 김장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직접 담근 김치만큼 믿고 먹을 만한 게 없는데 겨울 가족 식탁에 올릴 김치를 어디서 구해야 할까. 이 같은 고민을 하는 요즘 도시 주부들이 선택하는 선택지가 바로 ‘김장 체험’이다.
지난 23일 서울 광진구 워커힐 호텔앤리조트에서 김장 시즌을 맞아 준비한 ‘김장 담그는 날’ 행사에 가봤다. 이 행사에선 워커힐 호텔에서 파는 ‘수펙스(SUPEX) 김치’ 담그는 법을 알려준다. 워커힐 호텔에선 1989년 김치연구소를 만들어 1997년부터 수펙스 김치 판매에 나섰다. 조선 후기 서울과 경기 지역에서 상류층 가문에서 전해져 내려온 전통 맛을 재현했다. 시원하고 깔끔한 맛이 특징으로 배추 본연의 아삭한 식감을 살린다. 과하게 맵지 않아 먹기 편한 게 장점으로 남북정상회담, 다보스포럼, G20 정상회의, 청와대 만찬 등 국가 행사에 빠짐없이 오르고 있다.
이 때문에 워커힐 호텔의 김장 담그는 행사는 광진구는 물론 강남·송파구 등 구매력 있는 주부들 사이에서 고급 김치 담그는 법을 배울 수 있는 기회로 입소문을 탔다. 이번 행사에선 23~24일 190명을 모집했는데 사전 예약기간에 일찌감치 매진됐다.
오전 11시 워커힐 명월관 정원으로 들어섰다. 아차산 기슭에 위치해 한강을 바라볼 수 있는 전망 좋은 야외 공간이다. 별도로 마련된 내부 공간에서 하얀 가운과 앞치마, 요리용 모자, 장갑까지 갖추니 준비 완료. 예약 순서에 따라 미리 정해진 야외 정원 테이블 자리를 찾아 선 ‘김장족’ 앞에는 호텔에서 준비한 절인 배추 네 포기와 김치 양념 재료가 놓여 있었다. 호텔에선 고춧가루, 1등급 한우 양지 육수, 신안 천일염, 민물 흑새우, 새우젓 육젓 등 모든 재료를 제공한다.
고춧가루와 각종 재료를 넣고 김치 양념을 버무리며 김장을 시작했다. 김치에 영양분을 더하기 위해 양지고기를 끓여 우린 육수를 넣는 게 수펙스 김치만의 비결. 호텔 측에서 전날 배추를 미리 절여놓은 덕에 소만 버무려도 복잡한 김장 과정의 절반은 다 한 셈이 됐다. 양념에 미나리, 갓, 파 등 채소를 추가로 넣고 만든 소를 절인 배추에 켜켜이 넣었다. 한 장씩 넘겨 가며 양념을 넣다 보니 한 시간이 훌쩍 지났다. 주변에선 “4포기에 양념 버무리는 것도 이렇게 힘든데 예전엔 어떻게 100포기씩 김치를 담갔지?”하는 말들이 들려왔다.
참가자들은 2시간이 채 안 돼 김장을 마친 뒤 정원에서 식사까지 대접받았다. 명월관 조리장이 준비한 한돈 수육, 한우 국밥, 한우 불고기, 매생이 굴전 등이다. 한강을 내려다보며 막 담근 김치와 명월관 요리를 함께 즐기는 것 또한 별미다. 김재학 워커힐호텔 김치 조리장은 “수펙스 김치는 해남 배추부터 파우더형 고춧가루, 3년간 간수를 뺀 신안 천일염, 민물 흑새우, 새우젓 육젓 등 양념류, 1등급 한우 양지 육수까지 국내 최고급 원재료만을 선별해 사용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참가비는 1인당 25만원. 적지 않은 비용이지만 워커힐 수펙스 김치연구소의 조리장에게 김치 비법을 직접 배울 수 있다. 김장김치 5㎏에 호텔 요리까지 포함된 가격인 셈이다. “직접 체험해보면 생각보다 훨씬 합리적인 비용”이라는 게 참가자들 반응이다.
워커힐 호텔에서 직접 김장 담그는 법까지 알려주는 행사를 개최한 이유는 뭘까. 호텔 관계자는 “워커힐의 ‘김장 담그는 날’ 행사는 단순한 체험을 넘어 세계가 인정한 한국 전통의 지혜와 문화를 직접 체험할 수 있는 특별한 기회”라고 설명했다. 김장 담그는 가구가 빠르게 줄어드는 상황에서 김장 문화를 소개하고 홍보하기 위한 취지다.
실제 김치를 사 먹는 가구는 매년 크게 느는 추세다. ‘2021 김치산업 실태조사’에서 ‘상품김치 구입’ 답변은 2017년 10.5%에서 2022년 30.6%로 5년새 3배나 뛰었다. 이날 행사에 어린 아들과 참가한 40대 김모 씨도 “평소엔 친정 엄마가 김장을 해주는데 아이 교육용으로 김장하는 걸 보여주고 싶어 참가 신청을 했다”고 말했다.
안혜원 한경닷컴 기자 an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