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부터 대학생 대상 국가장학금이 확대된다. 올해는 대학생이 있는 가구의 월 소득인정액(소득+아파트, 차량 등 재산의 소득 환산액)을 1~10구간으로 나눴을 때 8구간 이하 학생에게 연 350만~570만원을 지원했는데, 내년엔 9구간 학생까지 지원한다. 9구간 지원액은 연 100만~200만원이다. 정부는 국회에 제출한 내년도 예산안에 이를 반영했다. 내년도 9구간의 월 소득인정액은 4인 가구 기준 약 1220만~1829만원이다. 국회예산정책처가 이를 통계청 소득 10분위(2023년 3분기 기준)로 환산해보니 6~8분위(월 606만~806만원)에 속했다. 아파트나 차량의 소득 환산액이 월 1000만원을 넘지 않는다면, 월급이 800만원인 가구도 국가장학금을 받게 되는 것이다.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주는 장학금의 본래 취지에 어긋나는 것 아니냐는 논란이 일고 있다.[찬성] 지금은 중산층 체감도 낮아…정부 교육비 부담, 선진국 못 미쳐정부가 국가장학금 지원 대상을 확대하는 건 중산층 가정의 학비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서다. 고물가, 고금리로 내수 경기가 좋지 않다. 대학생 자녀를 둔 학부모의 부담도 적지 않다. 국가장학금을 확대하면 이런 고충을 완화할 수 있다. 현재 국가장학금 지원제도는 중산층의 체감도가 낮다. 전체 대학생 203만 명 중 올해 국가장학금을 받는 학생은 약 100만 명으로, 대학생의 절반 정도다. 뒤집어 말하면 절반은 국가장학금을 지원받지 못한다. 대학생 자녀를 둔 집에선 “평범한 중산층 가정인데 아무 지원도 못 받는다”는 불만이 적지 않다.
“고소득층까지 지원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긴 하지만, 꼭 그렇게 볼 일은 아니다. 내년에 국가장학금이 확대되면 장학금 수혜 대상은 150만 명가량으로 늘어난다. 전체 대학생의 약 75% 수준이다. 적은 숫자는 아니지만, 여전히 대학생의 25%는 국가장학금 대상이 아니다. 월 소득 800만원 가구, 즉 연봉이 1억원에 육박하는 가구도 국가장학금 대상이 되긴 하지만 이런 가구가 많다고 보긴 어렵다. 월급이 800만원 정도라고 해도 고가 아파트를 소유하고 있다면 재산의 소득 환산액이 월 1000여 만원을 넘을 수 있고, 이 경우 국가장학금을 받기 위한 소득인정액 기준(4인 가구 기준 약 1829만원 이하)을 충족하지 못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선진국과 비교할 때 한국은 학부모의 대학 교육비 부담이 크지만, 정부 부담은 상대적으로 적은 측면도 있다. 교육부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교육 지표 2023’에 따르면 고등교육(대학, 대학원) 지출액 중 학부모 등 민간 부담분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0.64%로 OECD 평균 0.33%보다 높다. 반면 정부 부담은 GDP 대비 0.91%로 관련 통계가 있는 28개국 중 19위로 하위권이었다. 세계 10위권인 한국의 경제 규모를 감안할 때 정부 지원이 적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반대] 대학 안 가는 학생 역차별…중산층 지원하려 나랏빚 내는 꼴국가장학금 확대는 문제점도 많다. 첫째, 대학에 안 가는 학생에 대한 역차별이 될 수 있다. 우리나라 고등학생의 대학 진학률은 지난해 73%다. 고졸자 지원 사업은 빈약하다. 현재 대학생 학자금에 견줄 수 있는 사업은 고교 졸업 후 중소·중견기업에 취직한 청년에게 500만원을 주는 ‘고교 취업 연계 장려금 제도’ 정도다. 혜택을 받으려면 중소·중견기업에 1년 이상 근무해야 한다. 대기업이나 공공기관에 취직하면 지원금을 못 받는다. 소득인정액만 따져 지원하는 대학생 장학금에 비해 조건이 까다롭다. 게다가 대학생은 국가장학금 외에 근로시간에 따라 지원되는 근로장학금, 취업 연계 장학금 혜택도 받을 수 있다. 내년에는 저소득층 대학생 대상 주거 안정 장학금도 신설된다. 월 최대 20만원까지 지원된다.
나랏빚도 빼놓을 수 없다. 가구 소득에 따라 지원하는 국가장학금 예산은 올해 3조6000억원에 달한다. 대학생 가구 중 1~8구간을 지원하는 데 들어간 돈이다. 내년에 9구간까지 확대하려면 3900억원 가까이가 추가로 든다. 이 돈은 결국 빚으로 마련해야 한다. 정부가 재정 긴축을 한다고 하지만 내년에도 국가 부채가 81조원 늘어난다. 올해 세수 결손도 30조원에 육박할 전망이다. 정부가 허리띠를 졸라매겠다면서도 선심성 예산은 늘리는 꼴이다.
등록금 통제 문제도 얽혀 있다. 정부는 오랫동안 대학 등록금을 묶어두고 있다. 이 역시 “학생들의 부담을 덜어주겠다”는 게 명분이다. 그런데 국가장학금 확대와 대학 등록금 통제는 ‘동전의 양면’이다. 국가장학금을 늘릴수록 정부의 재정 부담이 늘어난다. 정부로선 대학 등록금 통제의 고삐를 더 세게 쥐려는 유인이 생길 수밖에 없다. 대학 등록금을 올리지 못하면 대학은 교육시설과 교수진 확보에 충분한 투자를 할 수 없고, 결국 대학 교육의 질이 떨어질 수 있다. 이는 학생들에게 부메랑으로 돌아온다.√ 생각하기 - 장학금 늘리더라도 인기 영합식은 안돼정부와 여당이 내년에 국가장학금 대상을 확대하기로 한 건 올해 총선을 앞둔 시점에서다. 선거를 앞두고 표심을 노린 선심성 정책을 내놓은 것이다. 제도 설계가 정교하게 이뤄지지 못한 측면도 있다. 1~8구간에 속하는 대학생은 구간별로 4만~17만 명인 데 반해 9구간 대학생은 약 50만 명에 달한다. 이런 이유로 교육계에선 국가장학금 지원 대상을 9구간까지 확대하려면 구간 재설계부터 해야 한다는 이견이 많았다. 하지만 정부는 그런 조치 없이 대상을 9구간까지 확대했다. 그러다 보니 한 구간만 늘었는데도 새로 국가장학금 대상에 포함된 대학생은 50%나 늘었다(100만 명→150만 명).
바람직한 청년 대책이 뭔지도 생각해볼 대목이다. 정부가 빚까지 내가며 중산층 이상까지 장학금을 주는 게 효과적 정책이라고 보긴 어렵다. 그보다 대학 교육의 질을 높일 방법을 찾는 게 진짜 청년을 위한 정책 아닐까 싶다.
주용석 논설위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