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개발 한창인데 장비 끄라니…주52시간이 첨단산업 발목잡아"

입력 2024-11-28 17:21
수정 2024-11-29 00:45

“수년간 고생해서 개발한 기술과 제품이 마지막 단계에서 근로시간 투입 부족으로 경쟁자보다 뒤처지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한국반도체산업협회가 28일 경기 평택 삼성전자 공장에서 ‘한국 반도체 다시 날자’를 주제로 연 간담회에서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이같이 말했다.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 김정회 한국반도체산업협회 부회장, 제임스 김 주한미국상공회의소 회장, 남석우 삼성전자 사장, 차선용 SK하이닉스 미래기술연구원장, 백홍주 원익큐엔씨 대표 등 15명이 참석한 이날 간담회에선 반도체 연구개발(R&D) 근로자의 ‘주 52시간 근무 예외’ 시행을 위한 논의가 이뤄졌다.

최근 국내 반도체산업이 위기를 맞자 핵심 R&D 인력이 경쟁국처럼 근로시간에 얽매이지 않고 유연하게 일할 수 있게 해 달라는 목소리가 업계를 중심으로 나오고 있다. 여당인 국민의힘은 지난 11일 반도체 R&D 인력의 ‘근로시간 주 52시간’ 규정 적용 제외를 담은 특별법을 당론 발의했다. 고소득 전문직에 근로시간 규율을 적용하지 않는 이른바 ‘화이트칼라 이그젬션’ 조항이다. 당사자가 서면 합의하면 근로시간, 연장근로 수당 등의 규정을 2035년까지 일시적으로 적용하지 않는 것이 핵심이다.

반면 더불어민주당과 노동계는 특별법보다 근로기준법 개정을 통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고수해 좀처럼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발제에 나선 홍상진 명지대 반도체공학과 교수는 “제품 개발 주기에 따라 중간 개발 단계 이후에는 성능 검증과 제품화를 위한 집중 연구가 필요하다”며 “분초의 시간을 경쟁해야 하는 상황에서 업무 일정을 맞추는 데 시간을 소비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반도체 소재·부품·장비 분야 석·박사들은 주 52시간 제도 때문에 기술 개발 도중 장비를 일제히 끈 뒤 다음날 몇 시간 동안 장비를 다시 세팅해 연구가 지체되고 있다고 토로했다고 홍 교수는 전했다.

김희성 강원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한국은 일을 집중적으로 하면 주 52시간 규제의 덫에 빠져 회사가 처벌받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제도를 세밀하게 설계하면 반도체산업 경쟁력 확보와 근로자 건강 보호를 조화할 수 있는 합리적 방안을 마련하는 게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김 장관은 “근로자에게 근로시간 선택권과 충분한 보상, 건강권을 보장한다면 반도체산업이 활로를 찾을 수 있다”며 특별법의 입법 필요성을 강조했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