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법이냐, 자본시장법 개정이냐”…‘뜨거운 감자’ 부상한 주주 보호 논의

입력 2024-11-29 11:01
수정 2024-11-29 11:02


최근 상법 개정안을 둘러싼 논의가 뜨거워지고 있다. 주주 보호 강화를 목적으로 한 개정안은 한국 기업 거버넌스의 전환점이 될 수 있다는 기대와 함께 경영 위축과 소송 남발 우려를 제기하는 반대 의견이 대립하고 있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11월 28일 KBS라디오 인터뷰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추진하고 있는 상법 개정안에 대해 “충실의무 대상에 회사를 말고 주주를 넣었을 경우 의무의 충돌 등 부작용 우려가 많다”며 “심도 있는 논의와 신중한 논의, 검토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현재 국회에서 민주당 주도로 논의가 진행되고 있는 상법 개정안은 이사 충실 의무 대상을 기존 ‘회사’에서 ‘회사 및 주주’로 확대하고, 모든 주주를 보호하고 전체 주주의 이익을 공평하게 대우해야 한다는 조항 등을 담고 있다. 이사의 경영활동이 회사뿐만이 아니라 소액주주들을 위하기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총주주의 이익을 보호해야 하며 전체 주주의 이익을 공평하게 대우해야 한다는 조항을 추가, 주주에 대한 ‘충실 의무’와 ‘보호 의무’를 동시에 명시하면서 이사의 의무를 크게 강화했다.

상장법인의 합병, 물적 분할 등의 과정에서 주주 이익이 침해되자 상법을 개정해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겠다는 취지다. 상법은 상장회사와 비상장회사 상관없이 모든 회사에 적용된다.

반면 정부는 상장회사만 대상으로 하는 자본시장법 개정이 적절하다고 판단한다. 최 부총리는 “상장 기업의 합병이나 물적 분할 과정에서 주주를 충분히 보호할 수 있도록 자본시장 법령을 고치겠다”며 “조만간 개선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본시장 법령 자체에 주주의 이익을 보호하는 기준을 넣을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상법 개정 필요성을 가장 먼저 언급했던 이복현 금융감독원장도 기존의 상법 개정 지지 입장에서 선회하며 정부와 뜻을 같이했다. 이 원장은 같은 날 은행지주 이사회 의장과의 간담회 후 “상법 개정은 상장·비상장 법인을 막론하고 모두에 적용되어 경영 부담이 가중될 우려가 있다”며 “자본시장법을 개정해 상장법인의 합병·분할 등 자본 거래에만 적용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라고 밝혔다.

그는 특히 물적 분할 시 모회사 주주에게 상장 차익을 공유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발언은 기업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기존 ‘회사’에서 ‘주주’로 확대해야 한다는 과거 주장과 상반된다. 그는 “증상에 맞는 합리적 대안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며 현재의 경제 상황을 고려한 현실적 접근을 지지한다고 설명했다.

반면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은 상법 개정을 통한 주주 보호 의무 강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포럼은 같은 날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한국 자본시장의 활력이 저하된 원인은 주식회사의 기본 메커니즘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라며 이사의 주주 충실 의무를 법제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포럼에서 발표한 긴급 성명에는 총 109명이 이름을 올렸다. 법조인과 경영학·법학 교수, 국내 주요 기관투자가들이 대부분을 차지했다.

포럼은 “전체 주주의 권익을 보호하는 것이 주식회사 제도의 기본 원칙”이라며 상법 개정이 ‘시장경제 정상화의 첫 단추’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한국 증시의 저평가 문제를 해소하고 고령화·저출산 등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도 긍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밝혔다.

지난 11월 21일 삼성, SK를 비롯한 16개 그룹 사장단이 상법 개정에 반대하며 국회에 규제보다 경제 살리기에 주력해달라고 한 데 대해선 “상법에 회사의 주인인 전체 주주 권익 보호를 넣는 것이 어떻게 기업의 규제인가”라며 “헌법에 대통령 직선제를 규정하면 정부에 대한 규제인가”라고 반문했다. 이어 “선진국이 된 한국의 경제력과 문화가 세계를 향하고 있는 중요한 때 개발독재 시절의 사고에 젖어 있는 극소수에 발목 잡혀 절대다수 국민의 미래를 저버려서는 안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재계는 상법 개정이 경영환경을 심각하게 위축시킬 것이라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한국경제인협회와 주요 기업 16곳의 사장단은 공동 성명을 통해 “상법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소송 남발과 해외 투기자본의 공격으로 인해 정상적인 이사회 운영이 어려워질 것”이라고 우려를 표명했다.

특히 기업 경영 합리화를 위한 사업 재편 과정에서 소수 주주의 피해를 방지하는 제도 정비가 필요하다는 점에는 동의하지만 상법 개정이 오히려 경영 전반에 걸쳐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김창범 한경협 상근부회장은 “물적 분할과 합병 등 소수 주주에 영향을 미치는 사안에 대해 핀셋 접근이 필요하다”며 “상법 개정으로 교각살우(矯角殺牛)의 우를 범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거대 야당인 민주당은 상법 개정안을 정기국회 내 처리한다는 방침이다. 민주당은 조만간 재계가 참여하는 공개 토론회도 진행할 예정이다. 정부는 자본시장법 개정과 관련한 공식 입장을 조만간 발표할 예정이다.

정채희 기자 poof3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