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크림 바르는 한국인들이 신기한 외국인들.jpg’
2년 전 온라인 커뮤니티를 뜨겁게 달군 게시글이다. MBC 예능 프로그램 ‘물 건너온 아빠들’에 나온 한국인 엄마가 어린 자녀에게 선크림을 발라주는 장면을 목격한 외국인 패널이 뱉은 말 때문이다.
이 외국인은 “한국 사람들은 선크림을 유난히 많이 발라요. 영국 사람들은 안 발라요”라고 하자 다른 외국인이 “우리도 전혀 (안 발라요)”라고 답했다. 한국에서 선크림은 집밖을 나기기 위해 사용해야 하는 필수품이지만 해외에서는 생소한 제품이다.
그런데 최근 세계 최대 이커머스 플랫폼 아마존에서 한국의 선크림이 큰 인기를 끌고 있다. 한국인에게 더 생소한 뷰티 브랜드 ‘조선미녀’ 제품이다. 심지어 미국 Z세대들 사이에서는 ‘힙한 브랜드’로 꼽힌다. 한국 관광객들은 조선미녀 제품을 찾기 위해 올리브영을 찾는다. 조선미녀는 전 세계인의 습관까지 바꾸고 있다. ◆ “왜 발라?” 선입견 없앤 조선미녀2022년 유명 뷰티 인플루언서 사라 팔미라가 자신의 틱톡 계정에 영상 하나를 올렸다. 자신이 사용한 다양한 선크림을 점수로 매겼다. 일본 비오레, 프랑스 라로슈포제, 미국 엘타엠디 등 다양한 브랜드가 등장했다. 어떤 것은 10점 만점에 2점, 어떤 건 5점이었다. 낮은 점수를 준 이유도 있었다. 하얗게 뜨고, 각질이 생기고, 피부에 올린 느낌이 무겁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이 영상에서 10점 만점을 받은 브랜드가 있었다. 한국의 조선미녀다. 제품 외관에는 ‘조선미녀’, ‘맑은쌀선크림’ 등이 한글로 적혀 있었다. 그는 이 제품의 가격 대비 성능이 완벽하다고 평가했다.
이 영상을 시청한 팔미라의 팔로워들은 댓글을 남겼다. “뷰티 오브 조선(조선미녀 영문명)이 지성 피부에도 좋나요?”, “피부가 어두운 사람이 쓰기에도 적합한가요?”, “이 제품을 어디서 살 수 있나요?”
이후 레딧 등 미국의 다양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조선미녀 구매 방법과 후기를 물어보는 글이 쏟아졌다. 여기에는 사용을 추천하는 댓글이 달렸다.
팔미라의 영상은 선크림 사용이 일상적이지 않은 미국에서 조선미녀가 알려진 계기가 됐다. 자외선으로 인한 피부 노화와 염증 등을 방지하기 위해 선크림을 필수로 사용하는 한국과 달리 외국에서는 효과가 없거나 트러블을 유발하는 등 다양한 이유로 선크림을 사용하지 않았다.
조선미녀는 달랐다. 기름지지 않은 제형, 백탁현상(피부가 하얗게 뜨는 현상)이 없다는 점 등이 그간 미국인들이 접한 선크림과 달랐다. 또 흡수가 빠르고 발림성이 좋고 끈적이지 않는다는 점도 인기를 얻는 요인이 됐다. ‘티나지 않고 불편하지 않다’는 점을 앞세워 현지에서 선크림에 대한 선입견을 없앴다. 조선미녀는 미국인들의 스킨케어 습관까지 바꿨다.
동시에 해외에서 K뷰티에 대한 인지도는 더 높아졌다. 선크림을 바르는 횟수가 늘어난 이들은 클렌징에도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이들의 선크림 사용은 한국 클렌징 제품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유튜브에는 해외에서 제작된 ‘한국인의 나이트 스킨케어 루틴’, ‘한국 클렌징 제품 비교’ 등의 영상이 인기를 얻고 있다.
조선미녀는 2022년 아마존 블랙프라이데이 기간 선크림 카테고리 1위를 차지하며 미국 내 영향력을 입증했다. 지난해 블랙프라이데이에도 1위를 놓치지 않았다. 특히 인기를 얻는 맑은쌀선크림은 누적 판매량이 1500만 개에 달한다.
조선미녀는 지난 11월 8일부터 16일까지 미국 LA에서 첫 팝업스토어도 열었다. 오픈 첫날 팝업스토어 주변을 에워싸는 긴 대기줄이 늘어서며 1000여 팀이 팝업스토어에 방문하기 위해 대기할 만큼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총 방문객은 3만 명이 넘는다.
조선미녀 관계자는 “대세 글로벌 뷰티 브랜드가 된 것을 입증한 순간이었다”며 “앞으로도 미국에서 다양한 행사를 열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 1억에서 3000억까지조선미녀가 탄생한 것은 2014년. 국내 최초 온라인 뷰티 홈쇼핑 ‘우먼스톡’ 운영사인 크라클팩토리가 온라인 전용 화장품 브랜드 ‘조선미녀’를 론칭한 게 시작이었다.
특이한 이름에는 이유가 있다. 조선시대 상류층 여인들의 지혜를 담아 최고의 피부 보습비법을 재현했다는 것. 회사는 “검약을 중시하던 조선시대 상류층 여인들은 화려한 치장을 미천한 것으로 여기고 깔끔하고 청결한 피부 관리에 집중했다”고 강조했다.
온라인 전용 브랜드인 만큼 그 시작도 로드숍, 백화점 등이 아닌 ‘쿠팡’이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조선미녀는 저가 화장품 브랜드 중 하나에 불과했다.
분위기가 달라지기 시작한 것은 2019년. 크라클팩토리는 핵심 사업인 우먼스톡 경영 상황이 악화하자 2019년 구다이글로벌에 조선미녀 브랜드를 매각했다. 상표권과 사업권을 넘겼다.
구다이글로벌이 가장 먼저 시작한 것은 리뉴얼이었다. 브랜드를 재정비하고 기존 주력 제품의 패키징을 바꾸고 친환경 브랜드, 모던 한방 화장품이라는 이미지를 구축했다.
특히 새로 만든 ‘한방 화장품’ 이미지가 큰 영향을 미쳤다. 한국에서는 ‘엄마 화장품’ 또는 ‘예단 화장품’이라는 인식이 강해 한방 재료 사용을 강조하지 않는다. 한방 화장품이라는 점이 부각될 경우 젊은층을 유입시키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해외에서는 달랐다. 한방 화장품에 대한 고정관념이 없었고 오히려 신선하다는 인식이 생기면서 MZ세대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용기에 적힌 한국적인 폰트도 해외에서는 ‘동양의 아름다움’으로 느껴지기 충분했다. 그러면서도 주요 타깃인 젊은층이 쉽게 접할 수 있도록 가격은 낮췄다.
조선미녀를 인수한 첫해 구다이글로벌 매출은 ‘1억원’이었다. 이듬해 30억원 수준으로 늘어났지만 ‘대박’은 아니었다.
기회가 온 시점은 2021년 11월 한국콜마와 협업해 제작한 맑은쌀선크림을 출시한 이후다. 이 제품은 한국콜마의 기술력으로 완성됐다. 맑은쌀선크림에는 자외선 차단 성분을 수분층과 오일층에 이중으로 안정화시키는 한국콜마의 ‘피팅 SPF 부스팅(Fitting SPF Boosting)’ 기술이 적용됐다. 기존 선크림은 물이 닿으면 얼룩이 진 것처럼 지워지지만 한국콜마의 기술이 들어가면서 물이나 유분에도 쉽게 지워지지 않는 효과가 생겼다.
선크림이 미국을 중심으로 해외에서 흥행하면서 매출이 크게 뛰었다. 이 제품은 2022년 아마존 선크림 부문 1위를 기록했고 2023년에는 올리브영 글로벌몰 1위도 차지했다. 2022년 413억원에서 지난해 1396억원으로 늘어났고 올해 증권업계에서는 구다이글로벌이 3000억원에 달하는 매출을 기록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조선미녀로 인해 미국에는 ‘한국 선크림 붐’까지 일고 있다”며 “맑은쌀선크림은 없어서 못 팔 만큼 인기다. 조선미녀가 성공하면서 실리콘투, 한국콜마 등 관련 기업까지 수혜를 얻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조선미녀 제품이 판매되는 곳은 미국, 호주, 인도 등 58개국에 달하며 요즘도 맑은쌀선크림은 한 달에 200만 개씩 판매되고 있다.
조선미녀의 인기는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박현진 신한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구다이글로벌의 조선미녀는 한국 브랜드 가운데 넥스트 히어로 상품 육성이 잘되는 기업”이라며 “타 브랜드와 달리 다수 품목이 아마존 내 매출을 꾸준히 올리고 있다. 다시 말해 매출 포트폴리오 구성이 한쪽에 치우치지 않게 관리되고 있다”고 말했다.
최수진 기자 jinny061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