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요타 스타디움에 와서 2024 월드랠리챔피언십(WRC)을 봤는데 대단하네요. 많이 배웠습니다.”
지난 24일 일본 아이치현 도요타시에서 열린 WRC 시상식에서 만난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은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본사는 물론 생산공장, 연구개발(R&D) 센터, 스타디움, 박물관에 이르기까지 자신만의 요새를 갖춘 도요타에 대한 부러움이 그의 말에서 묻어났다.
도요타시가 세계 3대 모터스포츠 중 하나인 WRC 최종전을 2022년부터 잇따라 유치한 건 이처럼 모든 인프라를 한 곳에 갖춘 덕분이다. 길거리는 랠리카를 보기 위한 주민으로 가득 찼고, 경기가 열린 도요타스타디움엔 3만여 명이 모여들었다. 현지에서 만난 도요타시 주민은 “도요타는 우리 주민들의 자랑”이라며 “도요타가 벌이는 모든 일을 지지하고 응원한다”고 말했다.
자동차업계에선 도요타시를 빼고 도요타의 ‘세계 1위 완성차 업체 등극’을 설명할 수 없다고 말한다. 상당수가 도요타 직원인 이들 주민의 지지 덕분에 도요타가 경쟁 업체를 압도하는 생산성을 갖출 수 있었다는 이유에서다. ‘74년 무파업’과 도시 이름을 도요타에 내준 게 대표적인 예다. 고로모시였던 이곳은 1959년 주민투표를 통해 자동차 브랜드를 도시명으로 쓰는 1호 도시가 됐다. 도요타시 면적은 약 918㎢로 서울시(약 605㎢)보다 크지만, 인구는 42만 명뿐이다. 도요타는 이처럼 널찍한 도시를 자기 운동장처럼 쓰며 수많은 R&D를 벌이고 있다.
도요타는 시민들의 지지에 지속적인 투자로 화답하고 있다. 올해 3월 문을 연 ‘테크니컬센터 시모야마’에는 목재로 꾸민 고급스러운 로비와 세계 4대 내구 레이스인 뉘르부르크링 피트를 닮은 53㎞의 테스트 트랙을 들였다. 이 프로젝트를 맡은 야하기 마사히코 제너럴 매니저는 “자동차 개발 속도를 끌어올리기 위해 본사와 불과 30분 떨어진 곳에 R&D 센터를 지었다”며 “혹시나 주민들에게 불편을 줄까 봐 5년 넘게 환경 실사를 거쳤다”고 설명했다.
현대차의 상황은 도요타와는 사뭇 다르다. 본사는 서울, R&D센터와 공장은 지방 각지에 흩어져 있어 시너지를 내기 쉽지 않다. 새로운 일을 시도할 때마다 일부 주민을 등에 업은 시민단체의 반발을 맞닥뜨려야 한다. 정부는 각종 규제로 미래차 개발의 발목을 잡는다. 기아가 경기 광명에 있는 기아 오토랜드 광명 공장을 전기차(EV) 생산라인으로 전환했더니 100억원이 넘는 그린벨트 보전부담금을 물린 게 대표적이다. 미래차 경쟁력 확보를 위해 4000억원을 투자했지만, 세제 혜택 대신 돌아온 건 사실상 벌칙이었다. 현대차시, 삼성시, LG시는 언제쯤 나올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