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 중국 선전시 비야디(BYD) 선산 공장. 거대한 주황색 로봇 팔이 BYD의 대표 전기세단 ‘한(漢)’의 차체를 들어 올리자 노란색 용접 로봇 2개가 따라붙어 문짝을 이어 붙였다. 로봇 팔은 그다음 작업 차량으로 전기세단 U7을 집었다. 하나의 라인에서 여러 차종을 생산하는 혼류(混流) 생산이다.
부지면적 40만㎡에 달하는 선산 공장의 용접 라인에는 로봇 1740대가 설치돼 있다. 용접 공정 자동화율은 87%에 이른다. 58초에 한 대씩 용접을 끝낸 차체가 출고됐다. BYD 관계자는 “24시간 돌아가는 선산 공장에선 10개 차량을 혼류 생산한다”며 “시장 상황을 봐가며 잘 팔리는 차량은 더 많이 만들어 효율성을 끌어올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선산 공장에서 제조하는 차종은 혼류 생산의 원조 격인 도요타(일본 모토마치 공장의 9개)보다 많다. 용접 공정 자동화율 등은 폭스바겐(독일 츠비카우 공장 90%·76초에 한 대)과 비슷하거나 조금 앞선 것으로 평가된다.
세계 1위 전기차 기업 BYD가 전기차 공장과 배터리 공장, 연구개발(R&D) 시설을 국내 언론에 처음 공개했다. 연구소는 젊은 엔지니어 10만여 명이 내뿜는 열기로 가득했다.
BYD는 뛰어난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를 앞세워 2009년 첫 전기차 e6를 내놓은 지 13년 만인 2022년 미국 테슬라를 꺾고 세계 1위 전기차 기업이 됐다. 올 1~3분기 판매량은 261만5000대로 테슬라(129만6000대)의 두 배를 넘는다. BYD는 올해 400만 대를 판매할 전망이다. 지난해(302만 대) 대비 32% 늘어난 수치다. 이렇게 되면 BYD는 일본 혼다(2023년 395만 대·8위)와 미국 포드(397만 대·7위)를 제치고 세계 7위 자동차 기업 자리에 오른다.BYD의 '기술집착'…"공장·특허·주식 없어도 엔지니어만 있으면 돼"3년6개월. BYD가 전기차(플러그인하이브리드카 포함) 누적 생산량 100만 대(2021년 5월)에서 1000만 대(2024년 11월)를 기록하는 데 걸린 시간이다. 글로벌 자동차산업에서 ‘가장 빠른 추격자’로 불린 현대자동차도 이를 달성하는 데 10년(1986~1996년)이 걸렸다. BYD의 성장세가 기존 자동차산업의 문법으론 설명이 안 될 정도로 빠르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다.
최근 방문한 BYD 본사와 공장, 연구소의 가장 큰 특징은 ‘기술에 대한 집착’과 ‘엔지니어 우대 문화’다. BYD가 가격과 성능을 모두 잡은 1000만원대 전기차를 선보이고, 한 번 기름을 채우면 배터리 힘까지 보태 최대 2100㎞를 달릴 수 있는 플러그인하이브리드카를 개발한 배경이다. BYD는 앞으로 자율주행차 연구에 본격 나서 미래차 시장도 휩쓸겠다는 야심을 드러냈다.
“기술이 왕이다”, BYD의 신조지난 19일 찾은 중국 선전 선산 공장 곳곳에는 붉은 글씨로 ‘기술은 왕이고 혁신은 기본이다’란 표어가 걸려 있었다. 이곳은 BYD가 250억위안(약 4조8397억원)을 투자해 지난해 12월 완공한 제조 시설이다. 선산 공장에선 BYD의 플래그십 전기세단 ‘한(漢)’ 등 10개 모델을 연간 30만 대 혼류 생산한다. BYD가 전 세계에 보유한 77개 공장 중 최신식 설비를 갖췄다.
금형 라인에서는 최대 2500t의 프레스가 고강도 철판에 도장을 찍어내듯 문짝 등 차체 부품을 100% 자동으로 만들었다. 이어진 용접 라인에선 정밀 전자제품 제조에 주로 활용하는 레이저 용접을 볼 수 있었다. 아르곤 용접과 달리 열이 퍼지는 범위가 좁고 강해 보다 정밀한 용접이 가능한 최신 기술이다. 차체 한 개를 제조하기 위해선 669개의 크고 작은 부품을 용접해야 한다. 정밀한 레이저 용접 덕분에 용접 오차는 최대 0.15㎜에 불과했다.
도장 공정을 거쳐 완성된 차체에는 근로자 여섯 명이 동시에 달라붙었다. 각종 케이블과 호스류를 결합하는 의장 공정이다. 무인운반차량(AGV) 100여 대는 각 공정에 맞춰 크고 작은 부품을 자동으로 실어 날랐다.
공장에서 나와 왕복 2차선 도로를 건너면 줄지어 선 10층 안팎의 아파트가 눈에 들어온다. 하루 12시간씩 2교대로 근무하는 직원 약 5만4000명이 먹고 자는 기숙사다. 월급 1만2000위안(약 232만원)을 받는 직원들의 평균 연령은 30세다. 한국 현대차·기아의 평균 연봉이 1억원을 훌쩍 넘기는 것과 비교하면 4분의 1 수준이다. BYD가 가성비 좋은 전기차를 쏟아낼 수 있는 비결 중 하나다. BYD 관계자는 “직원들이 젊다보니 새로운 차종이 나와도 달라진 조립법을 곧바로 배운다”며 “능력을 검증받으면 후배가 선배보다 먼저 승진하는 문화도 업무 효율화에 큰 힘이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3분기 매출 테슬라 추월시장의 수요에 맞는 빠른 신차 개발과 유연한 생산 방식 덕분에 BYD는 올해 3분기 매출 2011억위안(약 38조9329억원)을 기록했다. 테슬라의 3분기 매출 252억달러(약 35조4186억원)를 넘겼다. BYD가 테슬라를 전기차 판매량에 이어 분기 매출에서까지 추월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BYD는 18일 이곳에서 창립 30주년 및 1000만 번째 전기차 출고 기념행사를 열었다. 회사 내에서 ‘기술에 미친 사람’으로 불리는 왕촨푸 회장은 이 자리에서 “자율주행차와 인공지능(AI) 연구개발(R&D)에 1000억위안(약 19조3600억원) 이상을 투자하고 이공계 졸업생을 대상으로 대규모 채용을 하겠다”고 공언했다.
BYD는 엔지니어에겐 천국 같은 직장이다. 전체 직원 90만 명 중 10만2800명이 R&D 인력이다. 왕 회장은 이날 “공장과 특허, 주식 등 모든 재산이 사라져도 엔지니어가 있는 한 언제든 다시 일어설 수 있다”고 말했다. BYD의 모든 임원도 이공계 출신이라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폭스바겐도 떠는 中 배터리 기술…이젠 韓 정조준BYD를 첨병으로 삼은 중국 자동차의 진격은 폭스바겐그룹 등 ‘엔진의 시대’를 풍미한 글로벌 자동차 시장 강자들마저 위협하고 있다. 폭스바겐은 설립 이후 처음으로 모국인 독일의 10개 공장 중 3곳을 폐쇄하기로 하는 등 초유의 위기에 직면했다. 독일의 제조 노하우를 전수하던 폭스바겐은 이제 전기차에 관한 한 중국으로부터 한 수 배워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핵심은 배터리 기술이다. 휴대폰 배터리 납품업체로 업력을 쌓은 BYD는 ‘블레이드 배터리’(사진)라는 그들만의 독자적인 기술을 창안했다.
지난 21일 중국 충칭시에 있는 BYD 배터리 공장. 지름 5㎜ 두께의 송곳이 리튬·인산철(LFP)로 만든 BYD의 블레이드 배터리를 뚫었다. 그러자 가로 960㎜, 세로 90㎜, 폭 13.5㎜로 칼날처럼 긴 블레이드 배터리 내부에 합선이 생겼다. 하지만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반면 삼원계(NCM) 배터리를 대상으로 한 똑같은 실험에서는 송곳이 배터리에 박히자 화재가 발생했다.
내년 1월 한국 진출을 선언한 세계 1위 전기차 기업 BYD가 꺼내든 핵심 키워드는 ‘안전’이다. 인천 청라아파트 전기차 화재 사건 이후 커진 중국산 배터리에 대한 우려를 정면 돌파하기 위해서다.
충칭 배터리 공장은 BYD의 첫 번째 블레이드 배터리 생산 기지다. 2020년 1월 완공됐다. 이곳에서 생산하는 배터리는 연간 35GWh 규모다. 100% 자동화를 이뤘다. 핵심 공정은 얇은 동박에 흑연을, 알루미늄박에 인산철을 머리카락 두께로 얇게 도포해 양극과 음극을 만드는 것으로 시작됐다. 이렇게 만든 39개 음극과 38개 양극, 78개 분리막을 샌드위치처럼 겹친 뒤 0.3㎜ 두께의 알루미늄 케이스로 감쌌다. 3초에 1개씩 블레이드 배터리가 제작됐다.
BYD는 기다란 철판과 같은 블레이드 배터리의 구조적 특성을 차체 설계에 활용했다. BYD가 한국에 들여올 전기 세단 실은 차체 밑바닥을 블레이드 배터리로 꽉 채운 ‘셀투보디(CTB)’로 제작한 차량이다. 배터리팩을 제작하는 단계를 건너뛰고 블레이드 배터리 200여 개를 차량 밑바닥에 겹쳐 깔았다.
배터리팩이 사라지면서 차체의 무게중심이 1.5㎝가량 낮아졌다. 블레이드 배터리가 레이싱카의 스트럿바(보강재) 같은 역할을 하며 차량의 구조적 강성을 크게 높였다. 비틀림 강성은 4만500뉴턴(N)으로, 메르세데스벤츠 프리미엄 세단 S클래스와 비슷한 수준이라고 BYD는 설명했다.
선전·충칭=김진원 기자 jin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