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최대 여행사인 트립닷컴이 한국 내 항공권 판매시장에서 급격히 덩치를 키우고 있다. 알리익스프레스, 테무 등 중국 e커머스가 초저가 공세로 한국 온라인 쇼핑 시장에 안착한 것과 비슷하게 가격 경쟁력을 내세워 하나투어, 인터파크트리플 등 한국 여행사들이 장악한 이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트립닷컴은 스카이스캐너, 씨트립 등을 보유한 글로벌 3대 온라인여행사(OTA) 중국 트립닷컴그룹의 자회사다.
24일 여행업계에 따르면 올 7~10월 트립닷컴의 항공권 발권시장 점유율 순위가 6위까지 상승했다. 2022년까지만 해도 항공여객판매대금 정산제도(BSP) 기준 발권액 순위가 13위(시장 점유율 2.52%)로 10위권 밖이었지만, 지난해 8위(3.64%)로 올라선 데 이어 올 하반기 6위(5.29%)로 뛴 것이다. 상위 10개 업체 중 해외 기업은 트립닷컴이 유일하다. 현재 추세를 고려할 때 트립닷컴이 곧 ‘톱 5’에 안착할 것으로 업계는 예상하고 있다.
BSP는 여행사가 항공권을 사고팔 때 사용하는 국제항공운송협회(IATA)의 정산 프로그램이다. 국내에서 유통되는 해외 항공권의 80~90%가 BSP를 통해 거래된다. 이 때문에 BSP는 여행사의 항공권 판매 실적을 가늠하는 기준이 된다. 올 하반기 기준 1위는 하나투어(15.51%)였고, 인터파크트리플이 뒤따랐다.
트립닷컴이 빠르게 점유율을 늘릴 수 있었던 것은 저렴한 가격 때문이다. 트립닷컴은 업계 최저가 수준으로 항공권을 판매 중이다. 항공권 시장은 가격비교 사이트가 활성화돼 있고, 이 때문에 작은 차이만 나더라도 소비자들이 쉽게 이동한다. 트립닷컴이 항공권 가격비교 사이트 스카이스캐너와 연계해 항공권을 판매하는 것도 강점으로 꼽힌다. 이들 사이트와 모바일 앱에서 트립닷컴을 상위에 노출해주는 식으로 우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트립닷컴이 국내 시장에서 입지를 넓혀가자 업계에선 장기적으로 글로벌 OTA에 국내 여행시장의 주도권을 빼앗길 수 있다고 우려한다. 트립닷컴이 항공권과 숙박·현지투어 등을 연계한 결합상품 판매를 늘리면 국내 여행사들의 급격히 위축될 수도 있다. 해외 숙박 예약 시장에선 트립닷컴, 아고다 등 글로벌 OTA 비중이 이미 3분의 2를 훌쩍 넘어섰다.
코로나 사태 이후 해외여행 수요가 회복되면서 글로벌 OTA의 시장 장악력은 더욱 커지고 있다. 소비자리서치 연구기관인 컨슈머인사이트가 이달 발표한 2024 여행상품만족도 조사에서 세계 최대 여행 OTA인 부킹홀딩스 소속 아고다가 ‘OTA 이용경험률 추이’에서 한국의 네이버여행을 제치고 야놀자, 여기어때에 이어 3위를 기록했다. 호텔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OTA는 수수료율이 20% 이상으로, 국내 OTA보다 높다”며 “이들에 대한 의존도가 커질수록 국내 업체의 수수료 부담이 커진다”고 말했다.
양지윤 기자 y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