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아파트값이 반년 만에 하락 전환하는 등 부동산 침체 조짐이 나타나자 많은 한국 직장인이 불안해하고 있다. 자산의 80%가 부동산에 묶여 있는 탓이다. 부동산 비중이 30~40%인 미국 일본 등 선진국에 비해 두 배 이상 높은 수치다. 직장인들은 퇴직연금을 비롯한 노후를 뒷받침할 재원까지 헐어 부동산에 쏟아붓고 있다. 저출생·고령화로 인한 구조적 문제가 부동산 둔화로 이어질 경우 국민의 노후가 한순간에 흔들릴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온다.
24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 주택 구입을 위해 퇴직연금을 중도인출한 가입자는 1만6545명으로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 1년 만에 36.9% 증가했다. 주택 구입으로 인한 중도인출 금액도 7385억5300만원으로 사상 최대였다. 이는 전년(4954억1600만원) 대비 49.1% 증가한 수준이다.
가계자산의 부동산 쏠림이 완화되기는커녕 점점 더 심해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해 3월 말 기준 한국 가계의 평균 자산은 5억2727만원이었다. 이 가운데 부동산 자산은 4억1424만원으로 전체 자산의 78.6%를 차지했다. 부동산(3억7677만원)과 전·월세 보증금(3747만원) 합계액이다.
나머지는 예·적금과 주식 등 저축액(8840만원·비중 16.8%), 자동차와 가구를 비롯한 기타 실물자산(2463만원·4.6%) 등이다. 한국 가계의 부동산 쏠림은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수준이다. 미국은 2021년 기준으로 가계 자산에서 부동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28.5%에 불과하다. 일본(37.0%) 영국(46.2%) 등도 한국의 절반 수준이다.
‘아파트는 무조건 오른다’는 부동산 불패 신화가 이 같은 기형 구조를 만들었다. 하지만 3040세대는 저출생·고령화로 부모세대에 비해 부동산 상승 효과를 누릴 가능성이 작다. 국민연금의 혜택도 온전히 받지 못할 수 있다.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을 각각 현행 9%, 40%로 유지하면 연금 기금은 2055년 고갈된다. 2055년 수령 자격(만 65세)을 갖추는 1990년생부터 아예 연금을 못 받을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퇴직연금까지 깨서 집 한 채에 모든 노후를 걸고 있는 것이다.
이채원 라이프자산운용 의장은 “일본도 과거 한국처럼 부동산 비중이 높았지만 버블 붕괴 이후 크게 낮아졌다”며 “부동산이 계속 오르면 괜찮지만 일본처럼 장기적으로 하락할 경우 국민노후가 위험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최만수 기자 beb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