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법원 "펀드 판매한 은행, 증권신고서 제출 의무 없어"

입력 2024-11-24 17:27
수정 2024-11-24 22:14


펀드를 단순 중개·판매한 금융사에는 증권신고서 제출 의무가 없다는 첫 상급심 판결이 나왔다. 자본시장법상 증권신고서 제출 의무가 부과되는 대상을 주선인이 아니라 발행인으로 한정한 최초의 법원 판단이라는 점에서 비슷한 상황의 다른 재판에 파급 영향이 있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24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등법원 제7행정부(부장판사 구회근)는 2022년 3월 7일 금융위원회가 하나은행에 과징금 6억4730만원을 부과한 처분을 취소해야 한다고 지난 7일 판결했다. 하나은행의 처분 취소 요구를 기각한 1심 판단을 뒤집은 판결이다.

금융위는 하나은행이 2017년 3~6월 투자자 2566명에게 2617억원 상당의 ‘시리즈 펀드’를 판매하는 과정에서 증권신고서를 제출하지 않았다며 과징금 6억4730만원을 부과했다. 금융위는 신규 발행 펀드의 청약을 권유받은 투자자가 50명을 넘으면 증권신고서를 내야 하는데, 이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재판에서는 옛 자본시장법 제119조 1항 해석이 쟁점이 됐다. 이 조항은 증권 모집·매출 과정에서 증권신고서 제출 의무가 발행인에게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1심 재판부는 “미제출 또는 미수리된 증권의 모집·매출 행위 금지 의무의 수범자가 발행인에 한정된다고 볼 수는 없다”고 봤다. 발행인으로 좁게 해석하면 주선인이 증권신고서 미제출 증권을 판매할 수 있다는 “부당한 결과가 초래된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그러나 2심 재판부는 “과징금 부과 대상자는 어디까지나 발행인이고, 주선인에게는 정정 명령, 모집 금지, 경고 또는 주의 등의 조치를 할 수 있을 뿐”이라고 못 박았다. 2008년 대법원 판례를 인용해 “과징금 부과 등 행정 처분의 제재 요건에 관한 규정은 엄격하게 해석·적용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법조계는 이번 판결이 자본시장법상 ‘증권신고서 제출’ 의무와 ‘증권신고서가 제출되지 않은 증권의 모집·매출 금지’ 의무가 서로 구별된다는 법리를 최초로 제시한 점에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농협은행 기업은행 우리은행 등도 비슷한 이유로 과징금을 부과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법조계 관계자는 “비슷한 집합투자증권 제재에 대한 시장의 관심이 높은 상황에서 이번 판결은 상당한 파급력이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장서우 기자 suw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