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하는 마음으로 산다. 반복되는 삶에서 무감각해지지 않으려고 일부러 이방인 시선으로 주위를 살핀다. 그렇게 하면 변화가 보인다. 긍정을 느끼는 빈도가 잦아진다. 삶이 풍요로워진다. 사실 일상은 반복되지 않는다. 반복된다고 느낀다는 건 익숙함에 환경 변화에 감각이 아둔해졌기 때문이다.
필자가 대표로 있는 회사는 2019년 설립된 인공지능(AI) 데이터 파운드리 기업이다. 그래서 주변 지인들 가운데는 더러 “AI 시대가 되면 모든 게 자동화되니 인간이 할 일이 없어지는 것 아닌가요?”라고 묻는다. 그런데 AI 기술에 ‘인지하지 않은 문제를 미리 발굴하는 능력’은 없다. 일상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능력은 AI가 인간을 대체하기 어렵다.
사실 AI도 기존 정보기술(IT) 능력의 부족함을 채우려는 인간의 욕구 때문에 발견된 것 아닌가. 일상을 무감각하고 지루하게 바라보기만 한다면 AI도 인간의 삶을 도와줄 수 없을 것이다. 문제를 발견하고 큰 방향을 제시하는 것은 아직도 인간의 영역이다. 중용 제23장에는 인간의 본성을 다루고 있는데 ‘작은 일도 무시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하면 정성스럽게 된다’는 문구가 있다. 그만큼 반복된 일상에서도 지루함을 떨치고 성실하게 새로운 것을 찾고자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요즘 각종 분야에서 젊은 인재가 두각을 드러내기 좋은 이유는 ‘아직 인생을 덜 살아봐서’일 수 있다. 반복되는 일상을 길게 경험하지 못했으니 그만큼 새로운 것에 반응하는 민감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 새로운 문화, 새로운 지식, 새로운 풍경에 열광하거나 혹은 문제를 느끼고 고쳐나가는 과정이 행복과 연결된다.
그렇기에 행복은 순간의 감정 상태가 아니다. 행복은 세상과 상호작용하는 방식에 달려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일상에서 세상과 어떤 여운을 주고받으며 살아가야 할까.
일본 작곡가 류이치 사카모토는 인간의 삶은 유한하지만 예술은 영원하다는 라틴 격언을 자주 인용했다. 그는 인터뷰에서 “만약 베토벤이 현존했다면 인터넷과 증강현실(VR)을 활용해 조화로운 작품을 만들어냈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전문 영역과 밀접하지 않더라도 모든 변화에 예민하게 반응해야 새로운 창작물이 나온다는 의미일 게다.
‘여백(餘白)의 미’는 덜어냄으로써 무한한 확장성을 만들어내는 아름다움을 뜻한다. 채색하지 않음으로써 넓은 공간감이 나타난다. 암시적인 표현으로 독자나 관찰자가 스스로 해석할 수 있는 무한한 상상의 나래가 펼쳐진다. ‘낯섦’이 삶을 지탱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