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법 개정'을 놓고 뚜렷한 입장을 밝히지 않아 온 김병환 금융위원장이 24일 답을 내놓았다. "법 개정은 부작용이 많아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으로다. 사실상 상법 개정에 대한 반대 의사를 밝힌 셈이다. 상법 개정은 회사 이사의 충실의무를 다해야 하는 대상을 기존 '회사'에서 '주주'로 확대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24일 오전 KBS 일요진단 라이브 방송에 출연한 김 위원장은 "민주당이 상법 개정안을 낸 취지는 기업 지배구조에서 소액주주를 보호하지 못한 측면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위원장 입장에서도 기업 지배구조가 보다 투명하게 가야겠다는 데 동의한다. 다만 그 방법이 상법 개정이어야 하는가에 대해선 짚어봐야 할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상법 전문가들이 이야기하는 법리적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기업 경영이나 자본시장에 미칠 부정적 영향도 돌아볼 필요가 있다"면서 "이사가 회사에 대해 충실의무 다하도록 돼 있는데 주주까지 포함되면 의사결정이 지연될 수 있다. 불확실성이 높아지는 것도 덤"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재계에선 소송도 많이 일어날 것이라는 우려도 있고, 상법이 개정되고 주주 충실의무를 다하게 되면 이를 빌미로 외국의 투기자본이 과도하게 요구하거나 경영권 위협할 사례도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경우 자본을 쓸 수밖에 없고 그게 기업가치에는 '마이너스'(-)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주가에도 악영향을 주게 된다"며 "이처럼 자본시장 측면에서 상법 개정이 반드시 바람직한 부분만 있는 건 아니기에 소수의견도 귀담아 들어야 할 것"이라고 부연했다.
때문에 김 위원장은 상법을 손질하기보다는 우려됐던 지점들에 대한 맞춤식 개정이 필요하다고 봤다.
그는 "정부로서는 '지배구조' 관련해 말이 많았던 케이스들이 합병, 분할 등에서의 문제제기였단 점에서 착안해, 관련 제도를 개선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합병의 경우 합병비율을 기준주가로 산정하던 부분을 폐지하고, 이사회가 주주의 정당한 이익이 보호될 수 있도록 고정한 합병가액을 정하고 외부 평가를 받고 공시하도록 하는 식이다. 분할의 경우 우량한 부분을 자회사로 분할해서 상장시키면 기존 주주들이 피해를 보게 되는 만큼, 자회사를 상장할 때 기존 주주에 대해 자회사의 주식을 우선적으로 일정 부분 배정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하려 한다고 설명했다.
김 위원장은 "이렇게 문제됐던 부분을 맞춤식으로 먼저 개정하고 개선하는 게 상법의 부작용을 피해가면서도 투자자 보호 등 실효적인 조치가 가능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김 위원장이 공개적인 자리에서 상법 개정에 대한 입장을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취임 이후 줄곧 기자들과의 간담회에서 상법 개정에 대한 정부 입장을 묻는 질문이 나올 때마다 답을 피해 왔다. 불과 지난달 30일 정부서울청사 합동브리핑실에서 열린 금융위원장 월례 기자간담회에서도 "상법 개정은 고민이 깊은 사안이라 결론적으로 말하면 좀 더 논의해야 한다"며 "주무부처인 법무부를 포함해 부처 간의 논의가 한창 진행 중이기 때문에, 금융위 입장을 말하는 게 지금 단계에선 적절치 못하다"고 말한 바 있다.
신민경 한경닷컴 기자 radi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