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초마다 반복적으로 나오는 “쿵” 소리. 윗집에서 아이들이 뛸 때마다 나오는 소음이다. 이른바 ‘발망치 소리’로 불리며 이웃간 갈등 유발 원인 1위로 꼽히는 층간소음이다. 그런데 반복되던 소리가 갑자기 들리지 않았다. LH가 적용한 소음 1등급 기술을 적용하자 귀 기울여 들어야만 겨우 들릴 수준으로 소음이 줄어든 것이다.
LH가 ‘도서관에서 속삭이는 소리’ 수준으로 소음을 낮춘 층간소음 없는 주택공급에 나선다. 내년 하반기 설계에 들어가는 공공주택부터 층간소음 1등급 기술을 전면 적용하고, 우수 기술은 건설업계 전반으로 확산되도록 민간과의 기술협력 체계도 강화한다.
지난 21일 세종에 마련된 국내 최대 규모의 층간소음 시험시설 ‘데시벨 35 랩’에선 LH의 층간소음 감소 기술을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겉보기에 작은 아파트처럼 보이는 5층 높이 건물로 들어서자 어디서나 볼 수 있을법한 아파트 내부가 나왔다. 복도부터 현관, 거실, 방까지 기존 아파트와 똑같았다.
거실에 들어서자 TV 화면에선 바로 위층의 모습이 실시간 중계됐다. 위층에서 내는 소음을 아래층에서 직접 확인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먼저 시뮬레이션을 통해 기존 아파트에서 들을 수 있는 층간 소음을 들었다. 기존 아파트에 흔히 쓰이는 ‘소음 4등급 기술’이 적용된 가구에서 들을 수 있는 소리였다. 소음 측정기에선 45㏈이란 숫자가 나왔다. 발자국 소리가 계속되자 듣는 사람들 사이에선 짜증 섞인 반응까지 나왔다.
이번엔 실험시설에서 직접 위층에서 내는 소음을 확인했다. LH의 소음 1등급 기술이 적용된 소리였다. 화면으로 위층에서 성인이 뛰어다니는 모습을 봤지만, 정작 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았다. 측정기에선 32㏈이 표시됐는데, 직접 체험한 13㏈의 차이는 컸다. 귀를 기울이자 그제서야 작은 진동을 느낄 수 있었다.
LH 관계자는 “한 자리에서 4등급의 소음과 1등급의 소음을 바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이 실험동의 특징”이라며 “자체 층간소음 시험시설이 없는 중소기업이 여기서 직접 소음을 확인하고 기술개발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LH는 한 자리에 그간 기업들이 제시한 각종 소음 방지 기술을 소개했다. 흡음재와 철망, 고밀도 몰탈이 섞여 소음과 진동을 예방하는 식이었다. 일반적으로 아파트 바닥 콘크리트 슬래브 위에는 소음을 흡수하기 위한 완충재와 난방배관을 설치하기 위한 몰탈이 시공된다. LH는 바로 이 완충재와 몰탈의 성능을 높여 바닥으로 전해지는 층간소음을 줄이는 방안에 초점을 두고, 2022년부터 지속적으로 관련 기술과 공법을 연구해 왔다.
LH는 층간소음 1등급 기술개발을 목표로 총 9차례에 걸친 기술 실증 끝에 복합완충재와 고밀도 몰탈의 핵심 기술요소와 층간소음 저감 공법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총 1347회의 현장 테스트를 거쳐 자체 1등급 기술 모델을 정립했고, 2025년부터 주택설계에 본격 적용할 예정이다.
LH는 바닥에서 발생하는 층간소음에 국한하지 않고 옆세대와의 벽간소음, 화장실 배관 소음 등 공동주택에서 발생하고 있는 다양한 생활소음 저감방안도 마련한다. 벽간소음을 저감하는 소음차단 성능 1등급 벽체구조는 2019년 11월부터 이미 설계에 반영한 바 있다. 내년부터는 화장실 배관이 아래층을 통하지 않고 당해 세대 내에서 설치되는 당해층 배관을 적용하여, 배관을 통해 전달되는 소음도 줄여나갈 계획이다.
또한, 내구성이 좋은 장수명 주택, 수요자의 취향에 맞게 가변형 평면구성이 가능한 라멘구조 주택, 레고처럼 조립·건설하는 모듈러 주택 등 주택건설의 새로운 대안으로 부상하는 주택 유형에도 층간소음 1등급 접목 방안을 모색하여 적용 범위를 지속 확대해 나갈 예정이다.
한 발 더 나아가 LH는 층간소음 저감 기술 저변을 민간으로 확산해 나간다는 방침이다. 우선, 민간의 고성능 신기술을 발굴하고, 다양한 1등급 기술 요소의 시장화를 지원한다. 올해에는 층간소음 기술마켓을 통해 6개의 고성능 기술을 발굴했으며, LH 공공주택 현장에서 그 성능을 검증하여 상용화를 추진하고 있다.
무엇보다 국내 최대 규모의 층간소음 시험시설(데시벨 35 랩)을 건립해 내년 3월부터 전면 개방한다. 자체 층간소음 시험시설이 없는 중소기업에 데시벨 35랩을 테스트베드로 제공해 기술개발을 지원하는 것이다.
데시벨 35 랩은 건물 구조·환경에 따라 최적화된 고성능 소음저감 기술 개발이 이뤄질 수 있도록 시험 공간의 구조(벽식·라멘)와 슬래브 두께(15~25㎝)가 다양하게 구성된다. 데시벨 35랩 완공 시 1년 이상 걸렸던 신기술 인증은 6개월 내외로 단축되어, 기술 검증 및 확산이 빨라질 것으로 기대된다.
향후 LH는 그간 개발해 온 층간소음 저감 기술요소와 시공법, 실증 결과를 중소 민간 건설사들과 공유할 계획이다. 더불어 자체 기술개발과 층간소음 저감 시공·품질관리에 어려움을 겪는 건설사들에 대한 기술지원도 이어 나갈 예정이다.
이한준 LH 사장은 “층간소음은 대한민국에 아파트 문화를 처음 들여온 LH가 해결해야 하는 최우선의 당면과제”라면서 “아이들이 까치발로 다니지 않아도 되고, 아랫집 옆집 눈치 보지 않고 마음 편히 지낼 수 있는 아파트 주거문화를 만드는 데 LH가 앞장서겠다”라고 말했다.
유오상 기자 osy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