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도지구 발표를 앞둔 1기 신도시에서 아파트 매물이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선도지구 발표 이후 구체적인 분담금이 산정되면 사업성 논란이 불거질 것을 우려한 집주인들이 출구전략을 모색하고 나선 여파다.
23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다음주 분당·일산·평촌·중동·산본 등 1기 신도시에서 지자체별로 선도지구를 발표한다. 국토교통부는 1기 신도시가 있는 성남·고양·안양·부천·군포시 등 지자체와 선도지구 발표일을 협의하고 있다. 1시 신도시 선도지구는 적게는 2만6000가구에서 많게는 3만9000가구까지 지정된다.
정부는 신도시별로 △분당 8000가구 △일산 6000가구 △평촌 4000가구 △중동 4000가구 △산본 4000가구 등 총 2만6000가구를 기본으로 제안서를 접수했다. 선도지구에 선정되면 다양한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선도지구 혜택으로는 △안전진단 완화·면제 △용도지역 변경 △용적률 상향 △인허가 통합심의 △리모델링 가구 수 증가 △도정법 등이 꼽힌다. 이에 지난 9월 1기 신도시 162개 특별정비예정구역 중 61%에 해당하는 99개 구역이 제안서를 제출했다. 선도지구 지정 코앞인데…1기 신도시 매물 급증경쟁이 치열했던 만큼 선도지구 지정 이후 재건축 추진을 준비하는 단지가 많을 것 같지만 실상은 조금 다르다. 부동산 빅데이터 업체 아실에 따르면 성남시 분당구 아파트 매물은 전날 기준 4620건으로 3개월 전 4303건 대비 7.3% 증가했다. 선도지구 기대감이 높아진 사이 집을 팔고 떠나겠다는 집주인이 늘어난 것이다.
다른 1기 신도시 상황도 비슷하다. 같은 기간 고양시 일산서구 매물은 4253건에서 4727건으로 11.1% 증가했고 일산동구도 4063건에서 4288건으로 5.5% 늘었다. 두 자치구를 합산하면 일산 아파트 매물은 8316건에서 9015건으로 8.4% 많아졌다.
평촌이 자리한 안양시 동안구는 매물이 3683건에서 4165건으로 13.0% 증가했다. 중동신도시가 있는 부천시 원미구도 매물이 3651건에서 3795건으로 3.9%, 산본 신도시가 있는 경기 군포시는 매물이 2699건에서 2974건으로 10.1% 늘었다.
선도지구 발표가 다가오면서 집주인들이 호가를 낮추는 지역도 늘어나고 있다. 한국부동산원 주간 아파트 가격 동향에 따르면 지난달까지 상승세였던 군포시 집값은 이달 들어 0.03% 하락했다. 고양시 일산동구는 11월 셋째 주 0.01% 하락하며 이달 0.00% 보합세를 보였고, 일산서구는 이달에만 0.16% 내렸다. 한국부동산원 주간 아파트 가격 동향은 호가를 반영하기에 집주인들의 움직임을 엿볼 수 있는 지표로 꼽힌다.
매물이 늘어나는 이유는 재건축 사업성에 대한 우려가 커졌기 때문이다. 분당의 경우 치열한 경쟁으로 주민동의율의 변별력이 사라지면서 공공기여와 이주대책 지원 등 기부채납 가점에 따라 선도지구 지정 여부가 갈릴 전망이다. 기부채납은 재건축 사업성을 떨어뜨리기에 선도지구로 지정되고 정작 재건축은 하지 못하는 '승자의 저주' 우려가 확산했다. "선도지구되고 재건축 좌초할라…가격 낮춰도 지금 팔아야"선도지구 지정에는 동의했지만, 기부채납을 반대하는 주민들이 많아 향후 법적 분쟁에 휘말릴 수 있다는 점도 부담 요소로 꼽힌다. 분당의 한 개업중개사는 "기부채납을 제대로 설명하지 않고 동의를 구한 추진위가 상당수"라며 "선도지구로 지정되더라도 자신이 몰랐던 기부채납이 강제된다면 재건축에 반대하겠다는 주민들이 적지 않다"고 귀띔했다.
일산은 기준용적률이 169%에서 300%로 1.78배 늘어 1기 신도시 가운데 용적률 증가 폭이 가장 크지만, 낮은 집값으로 인해 사업성을 확보할 수 없을 것이라는 비관론이 확산하고 있다. KB부동산에 따르면 지난달 일산서구 아파트 평균 매매가는 ㎡당 548만2600원으로 1기 신도시 자치구 가운데 가장 낮았다. 일산동구가 ㎡당 638만3300원으로 그 뒤를 이었다.
일산서구의 한 개업중개사는 "일산은 집값이 낮아 용적률 300%로는 재건축이 어렵다"며 "지금 상태로 구체적인 분담금이 산정되면 사업을 포기하는 단지가 늘어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분담금 이야기가 나오기 전에 집을 처분하겠다는 집주인도 점차 늘어나고 있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도 선도지구가 실제 재건축을 추진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한준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장은 최근 국토교통부 출입기자를 대상으로 열린 간담회에서 "1기 신도시 중 지정 후 정상적으로 굴러갈 선도지구가 얼마나 될까 싶다"고 지적했다. 이어 "냉정히 생각해야 한다"며 "지금은 여기저기에서 손을 들지만, 자기부담금 규모에 따라 추진이 굉장히 제한적일 수 있다"고 내다봤다.
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ses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