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11월 25일 08:30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고려아연이 신생 사모펀드(PEF)운용사인 원아시아에 막대한 수수료를 책정한 배경에는 SM엔터테인먼트 시세조종이 연관됐던 것으로 확인됐다. 하이브의 공개매수가 시작된 직후 카카오의 자금 투입 요청을 받은 원아시아는 '실탄'을 하루만에 입금받을 수 있도록 정관 개정을 요청했고 고려아연은 이를 수용했다. 고려아연은 원아시아가 수익의 30%를 받아야한다는 전례 없는 조건도 받아들였다.
투자업계에선 고려아연이 카카오 측의 추가 공개매수 등으로 향후 막대한 수익이 돌아올 것을 사전에 인지하고 이같은 조건을 수용한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긴급 정관개정 나서...캐피탈콜, 성과보수 조정22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원아시아는 2023년 2월 14일 보유한 PEF인 하바나 제1호의 정관을 일부 개정했다. 총 1112억원 규모로 만들어진 하바나제1호엔 고려아연이 1016억원을 투입하고 조선내화가 나머지 금액을 대면서 두 곳의 출자자(LP)로 조성됐다.
이날 정관 개정으로 하바나제1호엔 운용사의 요청시 출자자가 1영업일 전까지 캐피탈콜 출자 이행 통지를 해야한다는 조항과 기준수익률(허들레이트)과 무관하게 향후 수익의 30%를 운용사가 성과 보수로 수령한다는 두 조항이 추가된 것으로 알려졌다.
두 조항 모두 PEF업계에선 전례없는 운용사에 유리한 조항으로 회자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PEF운용사는 LP들에게 충분한 검토 시간을 주기 위해 10일에서 14영업일까지 캐피탈콜 기한을 둔다. 성과보수의 경우에도 연평균 6~8%의 기준수익률을 두고 이 이상 초과분에 대해 최대 20%의 성과보수를 지급하는 게 일반적이다.
고려아연 측은 "운용사의 충분한 설명을 듣고 투자 수익성과 정관 변경 내용이 합리적이라고 판단해 의사결정했다"고 말했다.
카카오 SM엔터 시세조종, 고려아연도 사전 인지 가능성원아시아가 조성하고 고려아연이 출자한 8개의 펀드 중 하바나제1호만 이날 긴급히 정관이 변경된 점을 두고 업계에선 'SM엔터 시세조종'과 연관성을 의심하고 있다.
하바나1호는 정관개정 다음날인 2월 15일 고려아연과 조선내화 측에 곧바로 캐피탈콜을 행사해 각각 496억1900만원과 9200만원을 투자받았다. 이후 2월 16일 하바나제1호는 SM엔터 투자를 위해 조성된 특수목적회사(SPC)인 헬리오스제1호에 출자해 이날과 17일 양일간 SM엔터 주식을 대량으로 사들이기 시작했다.
업계에선 원아시아의 긴급한 행보가 카카오 측의 요청에 의해 이뤄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카카오의 시세조종 관련 재판 기록에 따르면 카카오엔터의 A 투자전략부문장은 2023년 2월10일 지창배 원아시아 회장 사무실에서 자신의 휴대폰으로 B 카카오 투자총괄 대표와 지 회장 간 전화통화를 연결해줬다고 진술했다. 그는 "당시 하이브의 공개매수 공시가 나오며 다급한 상황에서 B 대표가 (지 회장에게) 먼저 SM엔터 주식을 사줄 수 있냐고 이야기했다"며 "금액으로는 1000억원이 언급됐다. 지 회장은 ‘제가 도와드리겠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정관 개정이 이뤄지기 4일 전이다.
당시 하이브는 2월 10일부터 28일까지 SM엔터 주식 25%를 공개매수해 경영권 지분을 확보하려 했다. 하지만 주가가 공개 매수가인 12만원 이상으로 올라가며 실패했다. 공개매수 초반 원아시아가 장내에서 지분을 매집해 주가를 끌어올린 것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업계에선 고려아연 등 LP들의 동의 없이 정관개정이 이뤄지지 못했다면 16일과 17일 원아시아의 즉각적인 자금 투입도 불가능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성과보수 분배와 관련해서도 카카오 측이 지 회장 측에 대가를 약속했거나 지 회장이 카카오의 추가 공개매수 등 향후 행보를 사전에 알고 있었을 것이란 게 업계의 관측이다. 또 운용사에 철저하게 유리한 정관 개정을 통과시키기 위해서라도 고려아연 등 LP들에 충분한 설명이 이뤄졌을 것이란 설명이다.
한 자본시장 관계자는 "카카오가 막대한 수익을 약속했다는 확약 없이 신생 PEF에 이같이 전례없는 유리한 조건의 성과보수계약을 체결해 주는 LP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업계에선 그간 수사당국이 직접적인 접점을 찾지 못했던 고려아연과 SM엔터 시세조종간 연결고리가 정관 개정을 통해 드러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고려아연 측은 "SM엔터 시세조종 의혹 사건의 경우 이미 관련자들에 대한 수사 및 재판이 진행 중이나 당사에 대해서는 기소나 재판이 진행 중인 바가 없다"고 말했다. 이어 "정상적인 경영판단에 따라 사모펀드에 LP로서 투자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차준호 기자 chac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