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일찍 피어난 발레의 꽃…각양각색의 '호두까기 인형'

입력 2024-11-21 18:26
수정 2024-11-22 01:28

빨간 옷을 입은 왕자와 하얀색 튀튀를 입은 클라라(혹은 마리)가 이끄는 환상 동화 ‘호두까기 인형’은 송년 스테디셀러다. 1892년 12월 18일 러시아 마린스키 극장에서 초연했으니 그 역사만 벌써 132년이다.

호두까기 인형 포스터가 등장하면 많은 이들이 연말을 실감하며 가족, 연인, 친구와 함께 송년 발레를 보러 갈 채비를 한다. 발레 무용수들은 11월 중순부터 환상적인 동화의 세계로 떠난다. 유니버설발레단은 지난 15일 대구를 시작으로 대전, 성남, 군포, 경기 광주에서 국립발레단은 오는 23일 천안부터 대구, 세종, 강릉, 전주 등에서 지방 투어를 이어간다.

12월 서울에서는 양대 발레단뿐만 아니라 작은 발레단들도 호두까기 행렬에 가세한다. 다음달 13일부터 30일까지 4개 단체의 호두까기 인형을 볼 수 있다. 국립발레단은 서울 예술의전당(12월 14~25일)에서, 유니버설발레단은 세종문화회관(12월 19~30일), M발레단은 성동구 소월아트홀(12월 20~21일), 서울발레시어터는 마포아트센터(12월 13~15일)에서 각각 다른 매력의 호두까기 인형을 무대에 올린다.


발레 호두까기 인형은 모두 독일 작가 에른스트 호프만의 동화를 원작으로 한다. 성탄절 전날 밤 주인공 소녀는 대부이자 마술사 드로셀마이어에게 호두까기 인형을 선물받고, 무대는 소녀의 꿈으로 바뀐다. 대부의 마술로 소녀는 아름다운 여성으로 호두까기 인형은 왕자로 변신해 펼쳐지는 환상적인 내용이다. 호두까기 인형은 스타 등용문이라고 불릴 만큼 다양한 등급의 무용수들이 주역으로 캐스팅되는 작품이다. 전막 내내 즐겁고 신나는 분위기가 이어지는데, 드라마 발레와 같은 고도의 연기력이나 카리스마를 상대적으로 덜 요구한다. 그럼에도 가장 대중적으로 알려진 작품이라 일반 관객의 관심을 끌기 쉽다.

그렇다고 다 같은 작품은 아니다. 발레단마다 안무 버전이 달라 비교해 보는 재미가 크다. 국립발레단은 볼쇼이 버전을, 유니버설발레단은 마린스키 버전을 무대에 올린다. 서울시발레단은 현대 발레 안무의 거장 조지 발란신에게 영향받은 버전을 선택해 고전주의에서 벗어나 현대화에 초점을 뒀다. M발레단은 80분짜리 축약 버전을 준비해 가족 단위 관객의 접근성을 높였다.

공연의 큰 줄거리는 발레단마다 비슷하지만 여주인공의 이름이 마리(국립발레단), 클라라(유니버설발레단)로 구별되는 점이 눈에 띈다. 주인공 소녀가 받는 인형은 유니버설발레단은 진짜 목각 인형을 사용하고, 국립발레단은 7~9세 어린 무용수가 인형을 연기한다. 두 발레단이 꾸미는 2막의 디베르티스망도 다르다. 디베르티스망은 기분전환이라는 의미로, 단순 유희와 오락을 위한 춤이다. 이야기의 줄거리와 관계없이 구경거리로 삽입되는 장면인데 스페인춤, 중국춤, 프랑스춤, 러시아춤이 등장하는 것은 같지만 안무와 구성에 차이가 있다.

올해 캐스팅을 비교해 보면 국립발레단이 더 다채롭게 무용수를 편성했다. 군무진인 ‘코르 드 발레’에서 발레리나 3명(안수연, 김별, 정은지)이 주인공 ‘마리’로, 발레리노 2명(곽동현, 양준영)이 ‘호두까기 왕자’로 데뷔한다. 안수연은 올해 초 ‘백조의 호수’ ‘돈키호테’ ‘라 바야데르’까지 빠짐없이 주역 데뷔를 한 무서운 신예다. 김별은 ‘돈키호테’ 지방 공연에서 주인공 키트리로 데뷔해 스타성을 입증했다. 양준영은 ‘라 바야데르’를 연습할 때 입국 전인 김기민을 대신해 파리오페라발레 에투알 박세은의 상대역으로 호흡을 맞추기도 했다. 유니버설발레단은 수석무용수부터 솔리스트, 드미 솔리스트(군무진 바로 위 등급)까지 주역을 기용했다. 역시 올초부터 주역에 빠짐없이 캐스팅된 솔리스트 이유림이 여주인공 클라라가 됐고 그와 호흡을 맞추는 호두까기 왕자 역할로는 임선우가 캐스팅됐다. 이 발레단의 대표 수석무용수 부부인 강미선과 콘스탄틴 노보셀로프의 무대도 예정돼 있다.

이해원 기자 um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