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연금을 받아야 할 근로자가 사망한 경우 나오는 일실 퇴직연금을 유족들에게 먼저 상속하고 나서 유족연금을 공제해야 한다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단이 나왔다. 일실 퇴직연금에서 먼저 유족연금을 공제하고 나머지를 유족들에게 상속해야 한다는 종전 판례가 30년 만에 변경됐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1일 교통사고로 사망한 카이스트 교수 A씨의 배우자 B씨와 두 자녀가 가해자 측 공제사업자인 전국택시운송사업조합연합회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두 자녀에게 패소 판결한 원심을 취소하고 사건을 서울중앙지법으로 돌려보냈다. 전원합의체는 “원심 판단에는 일실 퇴직연금 상당의 손해배상채권에서 직무상유족연금 등의 공제 순서와 그 인적 범위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판시했다.
A씨는 2016년 9월 오토바이를 운전하던 중 중앙선을 넘어 유턴을 시도하는 택시와 충돌하는 사고로 사망했다. B씨와 두 자녀는 배상 책임이 있는 전국택시운송사업조합연합회에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사학연금법은 직무상유족연금을 지급받을 수 있는 유족과 공동상속인과 달리 정하고 있어 공동상속인이더라도 유족연금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 이에 따라 전체 퇴직연금 손해배상 채권액에서 유족연금액을 공제한 나머지 금액을 상속 비율에 따라 나누는 ‘공제 후 상속’과, 퇴직연금 손해배상 채권액을 먼저 나누고 이후 유족연금 수급자에게서만 유족연금액을 공제하는 ‘상속 후 공제’ 중 어떤 방식을 택하는지에 따라 손해배상액의 계산이 달라지게 된다.
B씨는 사학연금공단에서 유족연금으로 1억4900만원을 일시금으로 지급받았고, 2050년까지 매월 640만원씩 받을 예정이었다. 이에 A씨의 두 자녀는 소송에서 “모친만 유족연금을 수급했기 때문에 퇴직연금 상당의 손해배상 채권액도 모친에게서만 공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회사 측은 ‘유족연금을 먼저 제외하고 나머지 퇴직연금 손해배상 채권액을 나눠야 한다’는 1994년 대법원 판례를 근거로 ‘공제 후 상속’ 방식에 따라 유족연금액을 공제하면 잔액이 없어 손해배상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맞섰다.
1심은 두 자녀 손을 들어줬지만, 2심은 ‘공제 후 상속’이 맞다고 봤다.
대법원은 종전 판례를 변경해 ‘상속 후 공제’에 따라 유족들에게 손해배상액을 지급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전원합의체는 “공제 후 상속’ 방식과 같이 손해배상채권에서 유족연금의 공제 범위를 넓게 인정한다면 사회보장제도를 유지하는 재원으로 가해자의 책임을 면제시키는 결과가 된다”며 “수급권자의 생활안정과 복지향상을 위한 사회보장법률의 목적과 취지가 무시된다”고 지적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종전 판례에 따르면 실제로 유족연금으로 손해회복을 받지 못한 상속인들의 손해배상채권을 전부 또는 일부 침해하는 결과가 나올 수 있었다”며 “이번 판례 변경으로 상속인들의 권리를 더욱 보호하게 됐다”고 밝혔다.
민경진 기자 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