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날 저녁 서울에서 출발해 대전 친척 집에서 하루 묵고, 시험 당일 오전에 여유롭게 출발하려고 합니다."
서울에 거주하는 대학교 2학년 윤모씨(21)는 올해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을 다시 치렀다. 고등학생 시절부터 희망했던 의예과에 진학하기 위해서다. 이번 주 토요일 지방 소재 국립대에서 열리는 논술 고사를 응시하는 윤씨는 "철도노조 태업 때문에 혹시 모르니 부모님께서 직접 운전해주시기로 했다"고 밝혔다.
다가오는 주말 서울 소재 대학을 포함해 전국 주요 대학에서 논술 고사 등 입시 전형이 치러지는 가운데, 수험생들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과거 대학 입시 전형 기간 때마다 전국철도노동조합(철도노조) 파업으로 전국 각지 수험생들이 곤욕을 치른 적이 있는데, 지난 18일부터 철도노조가 준법 투쟁(의도적으로 태업을 벌여 사용자에게 손해를 끼치는 노동 쟁의 방법)에 들어가면서 수도권 전철 일부가 지연되거나 취소돼 과거 악몽이 다시 떠오른 것이다. 수험생·학부모 '긴장'
21일 전국철도노동조합(철도노조)에 따르면, 이들은 현재 서울 지하철 1·3·4호선과 수인분당선 등 수도권 전철 일부에서 태업을 벌이고 있다. 최근 수도권 전철 일부가 20분에서 1시간가량 지연되거나 운행이 취소되는 일이 있었다. KTX와 일반열차는 정상 운행하는 상황이다.
윤씨는 "첫 수능을 치른 2022년에도 비슷한 상황이 있었고 당시에도 큰 불안감을 느꼈다"며 "조금 서두른다고 해결될 거리가 아니다 보니 그냥 속 편하게 자가용을 이용하기로 했다"고 털어놨다.
서울에서 논술 시험을 치를 수험생들도 "지하철 시간표 애플리케이션(앱)대로 운행하지 않는다는 것 자체만으로 공포"라고 입을 모았다. 이번 주말부터 다음 주까지는 경북대·이화여대·한국외대·한양대·중앙대·가천대·인하대·아주대 등 전국 주요 대학에서 논술 시험이 예정돼있는데, 주말에는 2~3시간 간격으로 여러 대학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시험이 진행돼서다.
서울 거주 고3 수험생 박모양은 "당장 이번 주말 이대, 중앙대, 외대 논술 시험을 치른다"며 "특히 일요일은 오전에 중앙대에 갔다가 오후에 외대로 이동해야 하는데, 하필 이때 1호선을 이용해야 한다. 나 같은 학생들이 한둘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부담된다"고 걱정했다.
고3 아들을 둔 서울 거주 학부모 김모씨는 "모든 입시 일정에 자가용을 이용할 것"이라면서 "애당초 대중교통을 고려하지 않았다. 수험생 입장에서는 작은 변수도 크게 다가오는 것이 현실"이라고 푸념했다.
서울 양천구 목동에서 10년 차 논술 강사로 활동하는 이모씨는 "거의 격년 꼴로 논술 기간 철도 파업 소식을 듣는 듯하다"면서 "사실 수도권에 거주하는 학생들은 시험 당일 부모님이 태워주면 되지만 상경해야 하는 지방 거주 학생들은 열차부터 시험 당일 지하철까지 이동하는 기간 내내 불안감을 안고 있어야 한다"고 우려했다. 이씨는 "논술 전형이 열리는 동안 서울 시내에 부모님과 숙소를 잡고 지내다 집으로 돌아가는 지방 수험생들도 많다"고 말했다.왜 해마다 이때 철도 태업으로 인해 수험생들이 불편을 겪은 게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2019년, 2020년, 2022년에도 이 기간 철도노조가 준법 투쟁을 벌여 수험생의 불안감이 가중된 바 있다. 심지어 2022년에는 한국철도공사(코레일) 측이 비상수송대책본부를 운영하며 수험생이 탄 열차가 지연될 경우 경찰과 협조해 도착역에서 시험장까지 이동을 지원하기도 했다.
수능 시험 직후 지난 16일을 기점으로 시작된 대학가 논술, 면접 일정은 내달 8일까지 이어질 전망이다. 이날 철도노조 측이 "정부와 코레일의 입장 변화가 없다면 내달 5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할 것"이라고 공언함에 따라, 만일 이들이 총파업에 돌입하면 현재 정상 운행되고 있는 KTX와 일반열차도 5일부터는 운행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
코레일 관계자는 "KTX와 일반열차의 파업 여부는 내달 5일이 가까워져야 알 수 있을 것"이라며 "가용 인력을 최대로 동원해 이용에 불편이 없게끔 하겠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최근 수년간 비슷한 시기에 철도 노조 파업이 진행되는 것과 관련해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박남기 광주교대 교육학과 교수(전 광주교대 총장)는 "태업을 법으로 막을 수는 없지만, 형편상 교통·숙박편 대비조차 어려운 학생도 있기에 이 기간 파업을 자제하는 등 사회적 협의가 필요해 보인다"고 강조했다.
김영리 한경닷컴 기자 smart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