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지방자치단체 10곳 중 7곳 이상이 출산지원금을 현금으로 지급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부 지자체는 한 자녀에 1000만원 안팎 출산지원금을 나눠주기도 했다. 2022년 지방선거를 계기로 전국 지자체들이 경쟁적으로 출산지원금 현금 지원을 대폭 늘린 것이다. 하지만 출산지원금이 출산율 상승에 미치는 영향이 일시적인 ‘반짝 효과’에 그치고 있어 재정 상황만 악화시키는 악순환을 초래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재정난에도 지자체 72%가 지급
20일 보건복지부와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올 상반기 기준 전국 226개 기초 지자체 중 72.1%인 163곳이 출산지원금을 자체 예산으로 지급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들 지자체는 첫째 자녀 기준으로 평균 337만원을 지급했다. 통상 첫째 자녀 대비 둘째, 셋째 자녀를 낳을수록 지원금이 늘어나는 구조다. 정부 예산으로 지급되는 인당 200만원(첫째 자녀 기준)의 ‘첫만남 이용권 바우처’는 제외한 것이다. 지자체 출산지원금은 출산일 기준으로 해당 지자체에 주소가 등록돼 있으면 일시금 혹은 분납으로 받을 수 있다.
첫째 자녀 기준 출산지원금이 가장 많은 지자체는 전남 고흥군으로 1080만원에 달했다. 이어 △전남 진도군(1000만원) △전북 김제시(800만원) △경북 울릉군(680만원) △경북 봉화군(600만원) 등의 순이었다. 서울 25개 자치구 중에서도 강남구, 광진구, 중구, 동작구 등 네 곳이 출산지원금을 지급했다. 전국 최고 ‘부자 지자체’로 꼽히는 강남구는 작년부터 첫째 자녀 대상 200만원을 지급했다. 복지부가 2022년 첫만남 이용권 바우처를 도입하면서 대부분의 서울 자치구가 출산지원금을 중단한 것과 비교되는 대목이다.
문제는 지자체의 파격적인 출산지원금이 출산율 상승과 별다른 상관관계가 없다는 점이다. 실제로 출산지원금 500만원 이상을 지급한 지자체 24곳 중 15곳의 지난해 합계출산율이 전년 대비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출산지원금을 전국에서 두 번째로 많이 주는 진도군은 지난해 출생아 수가 처음으로 두 자릿수인 81명에 그쳤다. 합계출산율도 0.91명으로, 처음으로 1명 이하로 하락했다. ○“5000만원 이상 지급해야 효과”인구 전문가들은 출산지원금을 대폭 올렸을 때 일시적으로 반등하는 효과는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출산율에 미치는 영향이 미미하다고 지적했다. 인구 경제학자인 이철희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출산지원금을 지급하고 있는 지자체는 최소한 5000만원까지 늘려야 출산율 상승 효과를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지자체의 열악한 재정 상황을 감안한다면 출산지원금을 통한 출산율 상승 효과는 사실상 보기 어렵다는 뜻이다. 중앙정부와 광역 지자체도 기초 지자체의 출산지원금 정책이 투입되는 예산에 비해 정책 효과가 미미하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파격 출산지원금을 홍보 수단으로 앞세우는 지자체가 적지 않다. 출산지원금이 본격적으로 늘어나게 된 시점도 2022년 지방선거가 끝난 이후부터였다. 이 때문에 인접한 지자체 간 출산지원금을 통한 인구 뺏기 등 ‘제로섬 게임’도 끊이지 않는다.
특히 재정자립도가 낮은 지자체들이 출산지원금을 경쟁적으로 지원하면서 재정 상황만 악화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예컨대 첫째 자녀 기준으로 500만원의 출산지원금을 지급하는 전남 순천시의 경우 지난해 태어난 출생아는 1389명이다. 모두 첫째라고 가정하면 전국 지자체 중 가장 많은 69억원의 예산이 소요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럼에도 지난해 합계출산율은 0.9명으로 매년 하락하고 있다. 특히 순천시의 올해 재정자립도는 전국 평균(43.3%)을 크게 밑도는 19.6%에 불과하다. 전체 재원 중 지방세와 세외수입 등 자체 재원이 차지하는 비중이 19.6%에 불과하다는 뜻이다. 재정 상황이 열악한 다른 지자체도 연간 수십억원의 예산을 출산지원금에 투입하고 있다.
한국지방세연구원 관계자는 “출산지원금 현금 지급만으로는 출산율을 반등시키기엔 한계가 있다”며 “저출생 관련 서비스와 인프라 정책을 병행해야 출산율을 효과적으로 끌어올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강경민/허세민 기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