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중 출근·오후 퇴근…급락장 맞은 '시황 연구원'의 삶 [하루만]

입력 2024-11-21 06:30
수정 2024-11-21 15:21
금융권 직업은 수두룩하다. 접근 난이도는 어려운데 막상 주어진 정보는 많지 않다. [하루만]은 이들이 어떤 하루를 보내는지 베일을 걷어보려 한다. 증권·운용사부터 정부 부처까지, 또 말단 직원부터 기업체 사장에 이르기까지 직종과 직급을 가리지 않고 누군가의 '하루'를 빌려 취재한다. [지난 기사 보기 <<a href="https://www.hankyung.com/article/2024110524946">"돈 대신 보람"…MZ 금융위 사무관 밤 10시까지 동행기 [하루만]>]
"주식시장은 한 번 제대로 푸는 것도 힘든 고차방정식이죠. 그렇지만 하루도 빠짐없이 시장을 모니터링하면서 문제 풀듯 이유를 고민하니 정답률, 적중률은 높여갈 수 있더군요. 앞으로도 힘닿는 데까지 시장을 푸는 데 매진할 거예요."

'새벽'이란 표현이 더 어울리는 오전 12시50분. 많은 사람이 깊은 잠에 빠졌을 이 시간에 눈을 떠 출근 채비를 서두르는 사람이 있습니다. 30분 만에 집 밖을 나와 회사로 향하는 택시를 탔는데요. 국내외 주식 시황(시장 상황) 분석을 전담하는 서상영 미래에셋증권 리서치센터 상무(애널리스트·사진)의 출근 풍경입니다.

서 상무는 다른 증권사 시황 애널리스트들도 팬을 자처하는 '스타 시황 애널'입니다. 2007년 대우증권을 시작으로 약 10년 동안 지점 프라이빗뱅커(PB)로 근무하다 2016년 키움증권으로 적을 옮겨 본격 시황 애널 업무를 시작했습니다. 현 직장 미래에셋증권에는 2021년 초에 왔습니다. 증권가에 발을 들인 지 18년, 시황 전담만은 9년째인 셈인데요. 남들 잘 때 일어나고, 남들 일할 때도 일하는(?) 독특한 그의 하루를 함께 했습니다. 올 8월 '블랙먼데이' 이후 처음으로 코스피 2500선(종가 기준)이 붕괴됐던 지난 12일의 기록입니다. 새벽 2시 출근…깜깜한 회사 1등으로 밝힙니다
12일 오전 2시께. 서울 수하동 미래에셋증권 빌딩 앞에서 막 서 상무가 택시에서 내렸습니다. 차에서 내리는 순간에도 그의 눈은 휴대전화 속 미 경제매체 CNBC 기사로 쏠려 있었습니다. 깜깜한 하늘 아래 명함을 주고받고는 곧바로 건물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23층에 마련된 개인 사무실에 들어가자마자 그는 컴퓨터 전원부터 켰습니다. 미국 밴드 크루앙빈의 'White Gloves'를 배경음악으로 켜둔 채, 즐겨찾기해 둔 사이트들을 열어 바쁘게 살피기 시작합니다. 서 상무는 "출근 이후 한참 동안은 온갖 자료와 수치를 동원해서 '간밤 미 증시가 왜 빠졌고 왜 올랐는지' 이유를 찾는 데 시간을 투자한다"고 말했습니다.

미국 주식 실시간 시세를 직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핀비즈'(Finviz), 미국 주식·가상자산 등 모든 자산시장 관련 실시간 속보기사를 요약해 읽을 수 있는 수 있는 '파이낸셜 주스'(Financial Juice), 각국 경제지표를 실시간으로 확인하는 '트레이딩 이코노믹스'(Trading Economics) 등이 그가 매일 필수로 찾는 사이트들입니다. 최근에는 미 대선 결과를 소화하기 위해 정치 전문 웹사이트인 '리얼 클리어 폴리틱스'(Real Clear Politics)도 틈틈이 읽어야 합니다.

"영어를 술술 구사할 정도가 돼야 시장을 분석할 수 있나요?" 외신 사이트를 잔뜩 열어놓은 서 상무에게 물었습니다. 그는 여전히 영어 울렁증이 있다면서 "요즘엔 실시간 영문 번역이 잘 돼 있어서 증시 배경지식을 쌓는 것을 게을리하지 않는다면 충분히 영문 통계와 기사들을 이해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다만 영어를 수시로 접해야 하는 업무인 만큼, 외신을 꾸준히 접하면서 감각을 익히는 것은 중요하다고 조언했습니다.

간밤 미국 증시는 '트럼프 트레이드' 광풍 속에서 상승했습니다. 트럼프 최측근인 일론 머스크가 최고경영자(CEO)인 테슬라가 9%대 뛰고 비트코인 시세도 급등했습니다. 테슬라와 함께 서학개미들의 양대 '톱픽'(최선호주)이었던 엔비디아는 1.61% 하락했습니다.

"트럼프가 이길 줄 알았으면서도 코인도, 테슬라도 사두지 않았다"는 기자의 한탄에 서 상무는 웃으면서도 진지한 표정으로 "정말 조심해야 하는 장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시장이 '트럼프' 효과에 취해 기업의 가치와 상관없이 천장을 모르고 치솟고 있다"며 "야성적인 충동은 큰 수익을 거둘 수도 있지만, 끝이 어딜지 아무도 몰라 자칫하면 큰 손실을 볼 수도 있다"고 조언했습니다.



약 4시간이 흘러 오전 6시를 막 넘겼습니다. 미 증시 분석을 끝낸 서 상무는 서둘러 글을 작성하기 시작합니다. 그는 오전 6시 안팎으로 미 증시가 오르내린 이유, 주요 요인, 특징 종목, 국내 증시 전망 등을 정리해 매일 개인 채널에 올리는데요. 어떤 시황 애널보다도 빠르게 올라오는 그의 분석은 국내 장을 대비하는 투자자들에게 큰 도움이 됩니다.

오전 6시23분. 분석글을 올린 서 상무는 이제야 긴장이 풀린 듯 크게 숨을 내쉬었습니다.

서 상무는 커피 한 잔을 끓여 온 뒤 '기합' 소리와 함께 다시 자리에 앉았습니다. 옆에서 꾸벅꾸벅 졸던 기자는 겨우 정신을 차렸는데요. 새벽 업무가 단련이 된 듯 그의 눈빛은 말똥말똥했습니다. 개장 전 남은 약 2시간 동안은 분석글 작성 중 놓친 주요 소식은 없는지 각종 사이트들을 모니터링하는 데 쓴다고 합니다. 또 오후 증권사 영업점 직원들을 위한 세미나가 예정돼 있어, 관련 자료도 만듭니다.

"왜 내리나요" "어떻게 대응할까요"…급락장에 불붙은 전화오전 9시, 장이 열렸습니다. 지지될 것만 같았던 코스피 2500선마저 장 초반 붕괴됐고 지수 낙폭이 점점 커집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2~3%대 하락 중입니다. 개장 이후 한 시간 동안 서 상무의 전화는 끊어질 새가 없었습니다.

보유 중인 삼성전자를 어떻게 해야 하냐는 고객의 전화에 '신중 모드'를 권한 서 상무는 휴대전화를 내려놓자마자 영업점 직원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증시 변동이 큰 만큼 어떻게 대응하는 게 좋겠느냐며 서 상무의 조언을 구하는 전화였습니다. 시황 기사를 쓰는 언론사 기자들의 연락도 이어졌습니다.

다른 직원들이 한창 바쁠 오전 10시, 서 상무는 비로소 여유를 찾습니다. 회사 근처 카페로 가 동료들과 만나 시장과 회사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이날은 미래에셋그룹 인사가 발표된 직후여서 카페가 온통 '인사' 후일담으로 가득합니다.


오전 11시30분, 회사 옆 오래된 국수집에서 인턴십 중인 두 명과 함께 식사를 했습니다. 서 상무는 음식이 나오고도 휴대전화에 불이 붙는 바람에 20분을 나가 있었습니다. 시장이 불안할수록 시황 담당 연구원의 어깨는 더 무거워지는 듯합니다.

점심을 먹은 뒤 사무실에서 세미나 자료를 보강한 서 상무는 경기도 수원으로 이동합니다. 외국인 매도세가 이어지는 가운데 원·환율이 1400원을 돌파했고 글로벌 주요 증시 가운데 코스피만 유독 급락세입니다. 이럴 때일수록 고객들을 상대하는 증권사 지점 PB들도 애널리스트 등 시장 전문가와 머리를 맞대고 대응방안을 고심합니다.

인계동 미래에셋증권 수원WM지점에 도착한 서 상무는 직원들을 대상으로 '2025년 혼돈의 한해'를 주제로 각 자산별 전망과 대응 방안을 강연했습니다. 퇴근이 임박한 시간임에도 직원들은 저마다 수첩에 필기해 가며 열중한 모습이었습니다.

서 상무는 이런 세미나를 거의 매일 참석합니다. 전국 지점을 돌며 불러주는 곳에 달려가는 것이죠. 지점의 고액 자산가들을 대상으로 일대일 상담을 하는가 하면 고객들이나 직원들을 모아 전체 세미나를 여는 식입니다.

3시간도 못 자도 거뜬 "책임감에서 에너지 나와요"오후 5시. 드디어 모든 일정이 끝났습니다. 밤샘으로 녹초가 된 기자와 달리 서 상무는 여전히 쌩쌩했습니다. 밤 10시에 잠들어 3시간도 못 채워 자면서도 기운이 넘치는 그를 보며 궁금했습니다. 도대체 그 에너지가 어디서 나오는지를요.

"책임감과 부담감 때문이죠." 서 상무의 대답은 싱겁지만 묵직했습니다. "시장을 전망하는 애널리스트들은 신뢰를 먹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제 전망 하나로 투자자들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칠 수도 있기 때문에, 정확하게 시장을 짚어내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죠. 책임을 무겁게 느끼다 보니 자발적으로 일찍 일어나게 되고, 더 많은 자료를 보고, 발품도 더 많이 팔게 되는 것 같습니다."
하루 동안 지켜본 서 상무는 '노력하는 애널리스트'였습니다. "발품을 많이 팔수록 보는 눈이 생긴다"면서 틈날 때마다 기자에게도 투자 조언을 아끼지 않았는데요. 그는 "우리가 매일 내놓는 전망 속에는 치열한 고민이 담겨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사람이기에 실수를 할 수 있겠지만, 적어도 시황 애널리스트들에겐 실수는 없어야 한다. 때문에 그 실수를 최대한 줄여가는 게 나의 영원한 과제일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미니인터뷰]

코스피지수가 불안한 흐름이다. 지난 15일 장중에는 2400선도 깨졌다. 지수가 최근 하락분을 소폭 만회한 가운데 추세적인 반등세를 보일지 관심이다. 다음은 서 상무와의 일문일답.

▷코스피 부진 원인은.

"지수 하락은 글로벌 경기 둔화세를 반영한 영향이다. 우리나라처럼 수출 의존도가 높은 국가는 이런 국면에서 악영향을 받는다. 수출이 줄면 기업이익도 타격을 받기 때문. 또 반도체 대장주이자 유가증권시장 대장주인 삼성전자가 업황이 꺾이면서 주춤한 점도 부담이다. 바닥은 확인했지만 주가 회복까지는 시간이 많이 걸릴 것."

▷최근 며칠간은 조금 반등했다.

"최근 코스피지수의 주가순자산비율(PBR)이 과거 금융위기 수준인 0.85배까지 하락했다. 기업이든 지수든 본래 가치 이하로 한참 떨어지면 바닥을 형성하기 마련. 코스피의 경우에도 역사적으로 보면 PBR 0.88배 미만으로 밀리면 반발 매수세가 들어오는 경향이 있다. 이런 가운데 삼성전자 자사주 매입 소식이 들리면서 지수가 올랐다."

▷추세적 상승세로 이어질까.

"어려워 보인다. 한국 주식시장은 글로벌 경기와 동조화되기 때문. 글로벌 경기가 좋아야 우리도 오른다. 하지만 트럼프의 관세 등 경제정책 기조, 중동 불안 등으로 인해 여전히 불확실성이 짙은 상황이다. 미국 증시는 장 분위기가 탄탄하다기보다는 테슬라와 엔비디아 등 개별종목들이 시장을 끌어올리고 있다.

국내 증시도 애매한 움직임을 보이면서 테마 장세를 띨 것으로 보인다. '주식하기 힘든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경기가 안 좋은 만큼 테마도 단기로 움직일 전망이다. 테마주 대응을 한다면 방망이를 짧게 잡기를 권한다. "
신민경 한경닷컴 기자 radi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