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X 타고 서울 큰 병원 가는 시대 끝난다? [정영효의 산업경제 딱10분]

입력 2024-11-21 10:58
수정 2024-11-21 11:03

우리나라의 의료 수준은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들 합니다. 그런데 왜 노벨 의학상은 한 명도 배출하지 못한 걸까요? 그렇다고 우리 국민들이 의료 서비스에 만족하냐 하면 ‘그렇지 않다’는 답이 더 많을 것 같습니다.

지금 당장 죽을 거 같아서 예약 전화를 걸면 6개월 뒤에 오라하고, 예약 시간보다 1~2시간을 더 기다려 만난 의사 선생님의 진료시간은 5분을 넘기기 힘들죠.



병원은 무슨 건물이 그렇게 많이 필요한지 해마다 짓고, 또 짓는데 정작 입원실은 맨날 부족하다고 아우성입니다.

도대체 뭐가 문제일까요. 그런데 병원만 탓할 게 아니라 시선을 조금만 돌려보면 어떨까요? 병원은 갈수록 커져 가는데 환자는 병원 가기가 더 힘들어지는 이 불일치의 원인에는 모두가 큰 병원만 찾기 때문은 아닐지요?



통계는 병원에게도, 환자에게도 원인이 있다고 말합니다. 병원이 질적인 측면보다 양적인 측면에서 몸집을 불려가는 건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우리나라 병원의 병상 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1위지만 의사 숫자는 꼴찌입니다.

한편 대형 종합병원의 환자 가운데 중증환자, 즉 정말 병세가 위중해서 큰 병원 신세를 질 수 밖에 없는 환자는 50%에 불과했습니다. 절반은 동네의 작은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도 충분한 경증환자였습니다. KTX 개통으로 전국이 1일 생활권이 되면서 큰 병원만 찾는 추세는 더 심해졌는데요. 2022년 기준 지난 9년간 서울 5대 종합병원을 찾은 지역의 환자는 43% 늘었습니다.



‘병원 한 번 가기 정말 힘들다’는 정확히는 큰 병원 가기가 힘들어진 겁니다. 병원은 병원대로, 환자는 환자대로 힘든 이 상황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이에 대해 정부가 꺼내든 해법이 상급 종합병원 개혁입니다. 유정민 보건복지부 의료체계혁신과장님 모시고 말씀 들어봅니다.

▲상급 종합병원은 용어가 생소한데요. 대학병원을 말하는 건가요.
“네, 상급 종합병원은 우리 국민들께서 이용하시는 큰 대학병원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다만 대학병원이 반드시 상급 종합병원인 것은 아닙니다. 보건복지부는 중증 진료를 잘하는 대형 병원들을 선별해 3년마다 재지정을 하는데요. 현재는 전국에 47개의 상급 종합병원이 있습니다.”



▲1~3차 병원은 어떻게 다른가요.
“통상적으로 감기나 가벼운 질환을 다루는 동네 의원은 1차, 간단한 맹장수술이나 단기간의 입원을 할 수 있는 지역의 대형 병원을 2차 병원이라고 합니다. 3차 병원은 암이나 심근경색, 뇌졸중 같은 중증 응급수술을 담당하는 곳입니다.”

▲하지만 일반 국민들은 증상에 따라 1차, 3차 병원을 나누어서 가지는 않습니다만.,
“현재의 증상을 정확히 모르시니까 일단 큰 병원(3차 의료기관)을 가시는데요. 그러다보니 3차 병원인 상급 종합병원이 1차 병원이 되고 있는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론 상으로는 중증도에 따라 1~3차 병원으로 나누고 있습니다.”

▲영화나 드라마의 단골 소재로 쓰이는 ‘종합병원’이 정확히는 ‘상급 종합병원’인 거군요.
“예, 그렇게 이해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 상급 종합병원은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들었는데요. 왜 의료 서비스에는 문제가 생기는지요?
“암 같은 중증 의료기술은 우리나라가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자평할 수 있습니다. 다만 지나치게 특정 대형병원 위주로 발전하다 보니 균형적으로 발전하지 못한 측면이 있습니다. 환자의 증상이 중증이 되기 전에 지역에 있는 병·의원에서 잘 관리되는 시스템이 같이 갖춰지지 못한 겁니다.”

“그러다보니 경증 환자들까지 상급 종합병원에 몰리고, 그 결과 상급 종합병원이 꼭 필요한 중증 환자가 ‘골든타임’을 지키지 못하고 장시간 대기하는 등의 문제가 생기는 거죠. 의료 전달체계의 이용과 공급에 문제가 생긴 겁니다.”



▲상급 종합병원도 현재의 보상(수가) 체계로는 어렵고 힘든 중증 수술을 하는 것보다 고가 장비를 활용한 검사나 간단한 치료를 하면 편이 돈이 더 된다구요? 큰 병원이 경증 환자들까지 다 받다보니 병원은 점점 커지고 환자들은 더 많이 기다려야 하는 거군요. 그렇다면 상급 종합병원의 구조를 어떻게 바꿀 계획인가요.
“그동안은 상급 종합병원부터 의원에 이르기까지 사실상 같은 환자군을 두고 경쟁하는 체계였는데요. 1차, 2차, 3차 병원이 협력 관계가 아니라 경쟁관계였던 거죠. 특히 2차 병원과 3차 병원 사이에는 ‘이 환자를 우리가 맡아야 상대방에게 안 뺏긴다’라는 인식도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건 환자들이 생애 주기별로 중증도에 따라 1차, 2차, 3차 상급 종합병원을 찾을 수 있도록 병원들이 협력하는 구조가 돼야 합니다. 그 첫 걸음으로 상급 종합병원의 구조 전환을 시작하려 합니다.”



“우선 상급 종합병원은 현재 50%인 중증환자 비중을 높여 중증 중심으로 진료하는 체제로 전환하는 한편 중증도가 낮은 환자는 2차 병원 등으로 유도하는 식으로 상급 종합병원과 2차 병원이 진료 협력하는 구조를 만들려고 합니다.

상급 종합병원에는 중증 환자 비율을 70% 이상으로 높이는 등 목표치를 주고, 달성했을때 보상을 추가하는 구조로 바꿔 중증 응급질환에 집중할 수 있는 구조를 설계할 계획입니다. 병상이 많이 필요 없어지게 되는 만큼 병상 수는 10~15% 줄일 방침입니다.”



▲전공의 중심인 병원 구조도 개선을 하나요.
“네, 상급 종합병원은 중증 응급 중심으로 가는 한편 수련의 기능도 좀 높여야 합니다. 전공의들이 밀도 있는 수련을 받기 보다 근로자로서 진료에 내몰려 있던 부분들이 반성의 계기가 됐습니다.”

“상급 종합병원 구조를 전환하면서 진료 자체는 전문의나 진료지원 간호사와 같은 숙련 인력 중심으로 재편할 계획이다. 전공의 수련은 포기할 수 없는 중요한 가치입니다. 수련을 수련답게 해서 전공의들의 만족도도 높이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으려 합니다.”



▲이를 위해 정부가 3년 동안 10조원을 투입할 계획인데요. 제도가 바뀌면 경증환자는 큰 병원을 못 가게 되는 건가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런 부분들을 바로 억제하거나 규제할 수는 없습니다. 그보다 환자들이 큰 병원만 갈 수 밖에 없게 내몰린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어떤 증상이 있을 때 상급 종합병원 같은 큰 병원 이외에 어떤 병원을 가야 되는지 잘 모릅니다. 그러니 무조건 큰 병원으로 가고 보죠.”

“또 병원들의 진료 역량이 어떻게 되는지, 예를 들면 맹장수술을 잘하는 곳인지, 지속적으로 외래 관리를 해 줘야 하는 곳인지 파악하기 어려운데요. 상급 종합병원 구조 전환을 시작으로 종합병원의 진료 역량이 어떻게 되는지 기능별로 특화를 시키려 합니다.”



“상급 종합병원과 2차 병원 간의 진료 협력관계를 잘 맺도록 해 굳이 큰 병원을 안 가도 되는 증상일 때는 지역의 2차병원을 이용을 하고, 문제가 생기면 바로 상급 종합병원으로 옮겨 갈 수 있는 신속진료체계(패스트 트랙)를 도입하려 합니다.”

“지금은 아파도 예약 대기가 6개월씩 걸리는 경우들이 있는데요. 경증일 때는 1~2차 병원을 찾고, 중증일 때는 기다리지 않고 바로 진료 받을 수 있는 체계가 갖춰지는 겁니다.”

▲큰 병원 입장에서도 지금까지처럼 경증 환자들까지 다 받아서 1차, 2차 병원과 경쟁하는 것보다 앞으로는 경증 환자를 1~2차 병원으로 유도하는 편이 보상을 더 받을 수 있도록 제도를 만든다구요.
“예, 그렇습니다.”



▲전공의 집단 사직 사태가 9개월째 계속되면서 국민들 입장에서는 의료 정상화가 간절한데요. 상급 종합병원 개혁이 전공의 집단 사직 사태 해결에도 기여할 수 있을까요.
“네, 현 상황의 주원인 중 하나는 의료 공급비용 체계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전공의들이 과도한 근로에 내몰릴 수밖에 없었던 이유도 큰 대학병원에 환자들이 몰리면서 진료량이 늘어난 결과인데요.”

“그러다보니 전공의들은 고생은 고생대로 다 하고 보상은 제대로 못 받는 불만이 기저에 깔려 있었죠. 응급진료를 했을 때 그동안 너무 낮게 보상됐던 수술 처치 수가를 올리는 등 제대로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3년간 10조원을 투입해 보상구조를 공정하게 바꾸려고 합니다.”

“전공의들도 그동안 원했던 대로 근로가 아니라 정말 수련생으로서 밀도있는 수련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하는 첫걸음을 뗀 것이기 때문에 이른 정상화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정영효 기자 hugh@hankyung.com